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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랫화잍 Apr 29. 2024

너와 나, 서로 다름을 인정할 것.

<사람을 목격한 사람> 저자 북토크

첫 아이를 낳고, 첫 외출을 경험하며 세상의 바닥이 평평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치 차곡차곡 쌓인 인류의 역사를 상징하듯 세상은 온통 계단이었다. 유아차가 올라갈 수 있는 경사로를 찾으려면 멀리 돌아야 했다. 아기와의 외출은 아기띠로 아기를 안거나, 유아차를 함께 들어 옮겨줄 도움이 필요했다. 그마저도 남편이 없는 경우에는 도움을 청하기 어려웠다. 매사 누군가에게 부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므로. 그러다 외출을 포기하게 되었다.


지하철 외출은 언감생심, 역사마다 설치되었다는 엘리베이터 앞에는 늘 사람들로 줄이 길게 늘어섰다. 엘리베이터를 탔더라도 내부가 협소하여 유아차 하나만으로 공간은 꽉 찬다. 싸늘한 어른들의 시선을 견디거나, 유아차를 함께 들고 지하철 계단을 올라가거나, 아이를 옆에 태우고 불안한 운전을 하거나, 포기하거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포기’는 빠르고 손쉬운 선택지가 되곤 한다.


육아와 장애의 경험을 나란히 두고 생각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전혀 관계없는 듯 보인다. 허나 보도블록의 단차, 지하철 엘리베이터의 예시만 보더라도 육아의 경험과 장애의 경험은 일치하는 구석이 많다. ‘숭고’, ‘기쁨’,  ‘보람’의 탈을 쓴 채, ‘부담’,  ‘고통’, ‘의무’가 강조된다는 점, 돌봄의 영역에 속한다는 점, 그러므로 기본권의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해결의 여지가 보인다는 점에서 같다.


훌륭한 어미의 표상을 대한민국 최고액권에 박제해 둔 세상이다. 나는 모든 엄마가 육아를 잘 해내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비슷한 맥락에서 K-미디어가 보여주는 장애인은 하나같이  ‘슈퍼장애인’이다. 우리는 장애를 이기고 비장애인 못지않은 성취를 이룬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지만, 사실 ‘비장애의 우월성‘을 재확인한 것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다양한 장애 서사 중 우리에게 우세하게 도달하는 장애 당사자의 목소리는 장애 남성의 목소리다.


장애도, 육아도, 결국 사람의 일이다. 잘 감각하는 영역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서로의 감각을 존중하고, 타인이 나와 다르게 감각할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존중’의 경험이다. 책방 이음 주최로 열린 북토크에서 <사람을 목격한 사람>의 저자 고병권은 세상의 작은 목소리를 크게 울려주는 ‘작은 앰프’로 살아온 지난 시간을 이야기했다. 두시간 내내 그의 묵묵함에 먹먹했고, 춤추듯 글 쓰고 싶다는 말에 함께 일렁였다.

* 자리를 마련해 주시고, 늘 소원책담을 위해 물심양면 지원해 주시는 책방 이음 대표(@books_eum)님, 차분하게 긴 시간 같이 이야기를 나누어 주신 고병권 선생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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