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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난달 Jan 06. 2021

게임의 주인은 과연 유저일까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생각

해가 넘어가고 게임회사에 몸을 담은 지 햇수로만 3년이 되었다. 그동안 나는 QA로 일하는 한편 여전히 게이머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QA의 습관 때문인지 평소 게임을 즐기면서도 버그가 눈에 잘 보이곤 했다. 이따금 해당 회사에 제보를 해줄까 하다가 괜스레 일하는 것 같아 피하기도 했다. 이렇듯 일상에서 QA와 게이머를 넘나들곤 한다.


항상 게임에 있어서 소비자 입장이었던 나는 이제 생산자이기도 하다. 나는 QA로서 개발 과정 중 버그를 제보하고 피드백을 제공한다. 궁극적으로는 더 나은 게임을 만들기 위해 일한다. '유저들의 변호사'와 같은 역할을 한다며 스스로 자부하지만 마음 한 켠에는 정말 순수하게 그런가라는 생각도 든다. 달마다 내 통장에 찍히는 월급이 더 중요하고 반가운 건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임의 주인은 줄곧 개발자도 기획자도 아닌 유저들이다. 아무리 잘 만들어도 즐기는 사람이 없으면 그 게임은 가치를 잃는다. 누군가 "책이 출판되어 나가면 그 책은 더 이상 작가의 것이 아니라 독자의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QA가 아무리 개발 과정에서 수많은 버그를 잡는다 한들 수많은 유저의 다양한 플레이를 모두 할 수는 없다. 스타크래프트가 이렇게 장수하며 지금도 새로운 빌드와 개념이 생길 줄 블리자드는 개발 과정에서 예상치 못했을 거다. 


그런데 과연 게임의 주인공은 유저일까? 일정 주기로 회사로부터 매출에 관련된 메일을 받는다. 국가별 월간 수익, 동시 접속자, 유저 동향 등이 적혀있다. 여기엔 '고래형'이라 불리는 소위 말하는 vvip 들에 대한 정보도 적혀있다. 이들은 마치 백화점의 vvip들처럼 대우를 받는다. 사실 대우라 할 것도 의견을 반영하거나 행사에 초대하는 정도지만 이마저도 그렇지 못한 다른 유저에겐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이들은 다른 유저의 부러움을 먹고 산다. 그만큼 많은 돈을 게임에 투자하고 얻는 것이다. 누가 욕할 것은 아니다. 그 사람에게는 수백수천의 가치가 있기 때문에 게임에 그만큼 돈을 쓰기 때문이다. 게임 회사는 덕분에 매출을 유지하고 직원들에게 월급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유저들이 게임에서 할 일은 부러워하는 것뿐이다. 각자 게임을 즐기는 이유는 천차만별이지만 대부분의 온라인 게임이나 모바일 게임들은 이런 형태를 가지고 있다. 


돈을 주고 구매해야 플레이할 수 있는 패키지 게임은 이런 경우가 비교적 적다. 온라인 게임이나 모바일 게임과는 다른 구조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패키지 게임의 주인은 온전히 나다. 나는 그 게임 속에서 위촉오 삼국을 통일할 수도 있고, 도시를 만들거나 뛰어난 축구 감독이 될 수 있다. 게임을 구매하고 나면 추가적인 과금 요소는 있지만 한 사람과 안 한 사람의 차이가 크지 않다. 


게임의 주인공들은 분명 게이머들이다. 그런데 가끔 그 게이머가 '나'인지 아닌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재밌는 게임만 하기로 했다. 만드는 게임은 선택할 순 없어도 하고 싶은 게임은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그저 본인이 좋아하는 게임을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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