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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lim Feb 26. 2017

일생의 선물이 되어줄 사람, 사랑

영화 <캐롤> Review

  다소 늦은 글이다. <캐롤>은 일 년 전 겨울에 개봉한 영화였다. 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는 개봉 당시 잔잔히 입소문을 타고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꽤나 흥행에 성공했다. 수많은 리뷰들이 쏟아져 나왔고 오늘 다시 캐롤을 꺼냈다. 영화는 분명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여성, 동성애 등과 같은 민감한 이야기들을 강력하게 던지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위대한 이유는 그 말을 던지지 않고 보여준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는 그들의 '사랑' 자체를 전달하는 영화로서 캐롤을 이야기하고 싶다.


                                                                                                          

영화는 벨리벳의 성장 이야기와도 같다. 영웅 신화 등에서 보이는 인물에 대한 변화 구도가 서사에 분명하게 드러난다. 루니 마라는 그 변화를 잘 포착하여 표현하고 있다. 극 초반의 그녀는 시종일관 지루하고 우유부단한 사람이다. 생기는 없고, 흥미도 없다. 캐롤에게 그녀는 그저 좋음밖에 보일 수 없어 거절을 못 하는 사람이라면, 캐롤이 아닌 약혼자 등에게 그녀는 거절을 못해서 우유부단한 사람이다. 이는 마치 '분별'을 배우기 전 아이와도 같다. 그녀는 장난감 코너에서 일을 하고, 사랑을 잘 알지 못하며 경험도 많지 않다. 사진을 찍는 그녀가 사람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점도 그러하다. 그녀는 아이처럼 세상과 사물을 흥미롭게 보며 삶과 인간에 대해 흥미를 갖지 않는 것이다.

  그런 그녀가 사랑을 한다. 사랑인지도 알기 전에 빠진다. 이유도 이성도 납득이 불가능한 영역으로 빠지며 비로소 어른으로서 성장통을 겪어낸다. 사랑은 그녀를 송두리째 바꾼다. 신혼여행은 그토록 미루던 그녀가 "여행을 떠날 생각인데. 함께 가줄래요?"라는 캐롤의 질문 하나에 고민 한 순간 없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좋아요. 좋아요." 캐롤을 계속 찍는다. 그녀가 담긴 사진들을 인화하며 마음에 품고 새긴다. 


 

그런 그녀를 진정으로 성장하게 하는 것은 아픔과 이별이었다.  사랑이 그러하듯. 사랑을 하면 가장 가까이 만나게 되는 것은 상대보다도 나 자신이다. 내가 몰랐던 나.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는 나를 만나며 우리는 변화한다. 그것을 성장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앞으로 나아가는 것, 커 간다는 것 등의 방향성을 부여하고 싶지 않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벨리벳이 하지 못하던 분별을 하게 되는 것. 내가 하는 선택이 어떤 결과와 책임을 나에게 줄지 생각하는 것. 그리하여 신중해지는 것. 다르게 말하면 겁쟁이가 되고 남에게 피해를 덜 끼치고 서로 덜 아프게 되는 것. 사랑 후에 우리는 변한 자신의 모습만을 가지고 남는다. 사랑 후의 모습들이 쌓이면 쌓일수록 변화해온 우리들의 자취가 늘어 갈수록 설명은 적어지고 열정을 다 하는 납득도 잦아든다. 


  그러나 벨리벳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그토록 아파도 캐롤을 만나고 그녀와 함께 했던 모든 것들을 후회하진 않을 것이다. 그녀는 성장했다. 자신과 꿈을 찾아 길을 나선다. 노란 풍의 벽을 푸른색으로 새롭게 페인트 칠한다. 화장을 하고 스타일을 바꾸며 눈빛과 표정까지 달라진다. 상황이 허락되고 캐롤이 그녀를 다시 찾을 때 그녀는 달라져있다. 똑같이 행동하지 않는다. 담배도 거절하고 함께 살자는 제안도 거절한다. 맨 정신으로 자신이 원래 가야 할 파티에 가서 시간을 보내다가 이성적인 상태에서 캐롤에게 간다. 더욱 깊고 단단한 사랑일 것이다. 스스로의 어림에 주눅 들지 않고, 상대방의 아픔도 보듬을 수 있는. 조금 더 상대를 위해 무언가가 되어줄 수 있는 혹은 자신이 해줄 수 없는 일을 아파하지 않고 기다려줄 수 있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그저 받는 순진을 이기심이라 자책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랑이 변화한 그녀 앞에 놓여 있다.



                                                                                                              

  캐롤은 케이트 블란쳇을 위해 탄생한 캐릭터 같다. 정말이지 벨리벳이 왜 그토록 매혹되었는지 영화를 보고 나면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녀는 아름답고 아름답고 또 아름다우며 그녀는 어머니이다. 사실 영화 전반적으로 순진하고 어린 벨리벳과 캐롤은 대조적이다. 그녀는 성숙하며 어른이고, 부유하고 강하다. 메뉴판을 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주문하며 벨리벳을 리드한다. 그러나 이 관계가 단순히 마초적 남성을 여성화한 평면적인 인물에 그치지 않는 것은 바로 그녀가 어머니이기에. 그리고 분명히 여성으로서 여성을 사랑하기에. 

  캐롤은 한 사람이다. 그녀가 여성이기 전에 사람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자신이 낳은 딸이 있는 사람이다. 그녀에게 주어진 사실들을 그대로 봐주지 않는 시선들이 영화 내내 깔려 있다. 섬세하게 보면 캐롤과 벨리벳은 늘 익명적이고 무작위적인 시선들에 노출되어 있다. 이 시선들은 특정한 인물에 의해 제시되지 않지만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인물들에 이입할수록 시선들은 낯설게 꽂힌다. 영화가 강력하게 말하지 않는 대신 우리에게 보이는 방식이다. 



                                                                                                            

   그녀가 낳은 사랑하는 아이를 강제로 만나지 못하게 하는 남편은 되려 윤리적 잣대를 무기로 캐롤을 공격한다. 이 엄청난 모순은 캐롤이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사랑하는 벨리벳과 이별하도록 몰아세운다.  그녀가 남편과의 합의 과정 중 마지막으로 울음을 삼켜가며 내뱉는 대사가 먹먹하다. 어머니로서 그녀는 자신의 딸을 위해 무엇이 가장 좋은 것인지 안다. 그렇기에 자신을 부정하며 살지도 않을 것이며 다만 딸을 만나게만 해달라고 애원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어머니로서 딸을 만나는 일이 가로막혀야 하는 비극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문제적인 지점을 짚어내는 사건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영화가 영화의 감성과 두 주인공의 사랑을 시궁창에 떨어지도록 만들지 않는다.


                                                                                                             

  영화는 영화답다. 치졸한 법정싸움 가득한 막장 드라마로 전락하지 않는다. 말로 우리에게 그들의 사랑을 납득시키고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 그저 그들의 감정과 시선을 따라가도록 유도한다. 영상은 아주 감각적이며 함축적이다. 우리는 캐롤과 벨리벳의 사랑을 이해하기보다 느낀다. 그것이 감독이 택한 스토리텔링 방식이며 이는 탁월하다. 보여주기 식의 전달 방식으로도 충분히 그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내뱉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으며 시대적 감성 위에 강렬한 사랑의 감정을 덮어 영화적 체험을 완성하고 있다.

  앞서 설명한 익명적 시선들에 주인공들이 노출되는 방식은 주인공에 이입한 관객들이 그 시선을 함께 느끼도록 유도한다. 영화 중, 캐롤의 남편이 지네트라는 인물에 대해 남편의 친구 아내라 표현하자 캐롤은 단호하게 말을 끊고 그녀의 이름을 짚어준다. 그녀는 누군가의 아내가 아닌 지네트라고. 영화는 이렇듯 흘러가며, 그리고 감각적으로 여성과 그들의 사랑을 말한다. 영화의 제목이 캐롤인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들이 있다. 평생을 잊지 못할 순간들. 카메라는 벨리벳의 시선을 정확히 따라 움직이며 그 순간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우리는 벨리벳과 함께 캐롤을 처음 보고, 군중 속에서 그녀를 찾아내고 그녀와 눈을 맞춰 그 미소를 보게 된다. 

  사랑 이야기이다. 세상 가장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만나 서로에게 단 하나의 존재가 되어준다. 삶이 바뀌고 내가 바뀐다. 영화 속에서 캐롤은 벨리벳에게 하늘에서 떨어진 천사와 같은 존재라 칭한다. 그렇게 어느 날, 내 눈 앞에 툭 떨어진 일생의 선물.



영화를 읽어내어 써 내려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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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l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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