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FilUm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Ulim Nov 29. 2018

사랑에 대한 새로운 환상, 섹스하는 친구 사이

<친구와 연인사이>, <프렌즈 위드 베네핏> 리뷰

  


<프렌즈 위드 베네핏>의 제이미(좌)와 딜런(우)

  <친구와 연인사이>(2011)의 두 주인공 엠마(나탈리 포트만)와 아담(에쉬튼 커쳐)은 섹스 파트너이다. (일반적인 '섹스 파트너'라는 용어는 친구 사이를 전제하지 않지만, 여기서는 편의 상 섹스하는 친구 사이를 섹스 파트너라고 부르겠다.) <프렌즈 위드 베네핏>(2011)의 딜런(저스틴 팀버레이크)과 제이미(밀라 쿠니스) 역시 마찬가지이다. 두 쌍의 친구 모두 기존의 연애 관계에 수반되는 감정이나 의무 없이 오로지 섹스만을 함께 하는 사이에서 연인으로 발전된다.


<친구와 연인사이>의 아담(좌)과 엠마(우)

  두 영화의 시놉시스나 제목에는 '친구'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그렇다고  "이성애자인 두 남녀 사이에 친구가 가능한가요?"가 영화의 전부를 말해주진 않는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점은 따로 있다. 현시대 우리가 원하는 사랑의 양상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영화는 사랑에 대한 새로운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시작점을 살펴보자. <친구와 연인사이>의 엠마와 아담은 대학 시절 처음 만난다. 그들은 첫눈에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다. 아담은 엠마에게 대시하고 엠마도 이를 거절하지 않는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감정이 발전되려 하자 엠마는 관계를 단절시킨다. 사회인이 되어 재회한 그들은 여전히 서로에게 끌리고 잠자리를 하게 된다. 여전히 상처 받는 것이 무서운 엠마는 아담에게 제안한다. 복잡할 것 없이 그냥 이렇게 잠만 사는 사이로 지내면 어떠하냐고. 아담은 흔쾌히 승낙한다. 그는 이미 자신이 엠마를 좋아하게 된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결국 이들은 단 한 번도 완벽히 '친구'인 적이 없다.


 <프렌즈 위드 베네핏>의 경우를 보자. 헤드헌터인 제이미의 제안으로 딜런은 뉴욕으로 이사와 새로운 직장에 입사한다. 비즈니스 관계로 만난 딜런과 제이미는 서로의 집에서 편하게 영화를 볼 만큼 친해진다. 왜 섹스를 테니스처럼 생각할 수는 없는 건지, 연애에는 왜 그렇게 많은 감정과 의무가 수반되는지 함께 이야기한다. 그러다 딜런이 가만히 제이미를, 정확히 말하면 그녀의 엉덩이를 바라본다. 그리고 섹스 파트너가 되자고 제안한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그들이 서로에게 분명한 호감이 있음을 인정한다. "단 한 번이라도 날 이성으로 느낀 적이 있어?"라는 제이미의 질문에 그들은 서로의 신체를 칭찬하고 감정적인 교류가 일어난다. 결국, 이들의 섹스 파트너 관계는 최소한으로라도 사랑의 감정을 동반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두 커플은 일반적인 로맨틱 코미디 영화와 달리, 서로에게 충분히 매력을 느끼는 두 남녀 주인공을 섹스 파트너로 이끌고 갈까? 널 알아가고 싶다고 얘기하고, 함께 데이트를 하고, 좋아하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그렇게 단 하나뿐인 사랑으로 발전할 수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큰 걸림돌이 있다. 이 현실적인 걸림돌의 이름은 '상처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이 마음은 거듭된 연애의 실패로, 혹은 엠마와 딜런처럼 부모님의 이혼 등 살면서 겪는 많은 일들로 더욱 강한 힘을 얻는다.


  기존 연애에 대한 거부감, 나아가 그것이 주고야 말 상처에 대한 거부감이 섹스 파트너라는 관계를 지향하게 한다. 영화에서 뿐만 아니라, 사랑에 실패한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이해해볼 수 있다. 사랑이 마음을 산산조각 냈을 때, 거뜬히 그 아픔을 이겨낼 사람이 지구 상에 몇 명이나 될까. 이별의 위대한 영향력을 알면서도 다시금 새로운 사랑에 자신을 걸어 볼 용기는 결코 쉽지 않다. 두 번은 없을 사랑이라 여겼던 연인이 오늘 밤 냉정하게 관계를 끝내버려도, 내일 아침 멀쩡한 모습으로 출근하여 최대의 역량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사랑으로 구원받을 수 없음을 깨닫지 않는가.


  그렇지만 영화는 여기서 한 번 더 솔직해지기를 요구한다. 당신이 정말 사랑 없이 살기를 원하는 걸까? 경우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일단 영화는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싫은 건 상처이지, 사랑 그 자체가 아니라고. <친구와 연인사이>에서 엠마는 온갖 규칙을 만들며 감정이 생기지 않기를 노력하지만, 결국 그녀는 아담을 사랑하게 된다. 그의 체취를 맡고, 성적 욕망이 없어도 그를 보고 싶어 한다. <프렌즈 위드 베네핏>의 딜런 역시 자신이 두려움 때문에 제이미를 놓쳐 버릴 수 있음을 깨닫고, 사랑을 인정한다.


  두 영화가 섹스 파트너라는 소재를 통해 형성하는 환상은 바로 '자연스러운 친밀감'이다. "아픔이 싫어 연애가 거추장스러워진 당신, 그렇다면 이렇게 사랑에 빠지는 건 어떠한가?"라고 슬며시 다가온다. 섹스하는 친구 사이는 깊고 탄탄한 관계가 자연스럽게 쌓일 수 있는 돌파구로 기능한다. 서로에게 호감이 있는 두 남녀가 주기적으로 만나 전신의 민낯과 내밀한 욕망을 주고받는 관계. 섹스는 깊은 친밀감을 형성하도록 작용한다. 이빨에 고춧가루가 끼지 않을까 하는 걱정 없이, 자신도 모르게 방귀를 뀌어버린 창피함 없이. 3시간 만에 온 답장에 1분 만에 답장해서는 안 된다는 계산 없이.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친밀한 사이. 


  서로에게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주는 연인이 이상적이라면, 두 영화는 친구와 사랑 모두를 쟁취하게 한다. <프렌즈 위드 베네핏>에서 딜런은 제이미에게 고백한다. "일 하다가 재밌는 일이 생기면 바로 널 생각해. 아 얼른 제이미한테 말해줘야지." 딜런과 제이미, <친구와 연인사이>의 엠마와 아담은 이제 서로에게 가장 좋은 친구이자, 섹스 상대이자 연인이다.


  환상이라는 단어가 꼭 공허한 것은 아니다. 두 영화의 커플들은 사랑으로 발전하기 위해 결국 노력하고 용기를 낸다. 그들이 환상을 쟁취하는 과정은 단지 우연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섹스하는 친구 사이라는 가면을 쓴 또 하나의 환상일 뿐일까? 영화는 영화일 뿐, 섹스 파트너를 지향하라든가 남녀 사이 친구는 불가능하다든가 진리는 없다. 그저 또 하나의 가능한 경우일 뿐이니까.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다. 환상은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직면하게 한다. 날 아프게 하지 않을 것이란 신뢰, 후에 아프더라도 용기 낼 만한 사람이란 믿음, 일상을 함께 할 동반자, 그런 상대가 주는 친밀감. 섹스라는 통로로 도착할 결국은 어떤 사랑.


 



by Ulim

매거진의 이전글 아프지 않고 멀쩡한 생을 남몰래 흠모했을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