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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lim Feb 26. 2017

아직 답을 찾고 있는 누군가를 위해.

영화 <라이언> Review

                                                                           

                                                                                                                

 영화를 처음 보고 글을 쓰는 일은 어렵다. 전문가도 아니고, 시각이 깊지도 않기에 그 깊이가 그만큼 얕을 수밖에 없다. 
  솔직하게 말해서 <라이언>은 두 번 봐야만 하는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한 번은 꼭 볼 만한 영화다. 이야기 자체가 새롭진 않다. 그러나 영화를 지탱하고 이끌고 있는 것은 '섬세함'이다. 신파로 치닫지 않는 적절한 수준의 따뜻한 손길이 영화 속 인물을 다루고 있기에 보는 우리로 하여금 예상되는 이야기 흐름 속에서도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다. 

  아이는 너무 작았다. 주인공 '사루'가 어떠한 일들을 겪었는지 그를 따라가며 우리는 이 아이가 이토록 작은 것에 대해 마음이 무너지게 된다. 눈물 한 번 흘리지 않는 아이의 작은 어깨 위에, 그 작은 손 위에 감히 호들갑 떨 수도 없게 된다. 세상에는 항상 그렇듯 좋은 사람들이 있고 나쁜 사람들도 있다. 좋은 사람처럼 보이는 나쁜 사람들도 있고, 좋아 보이지 않는데 좋은 사람들도 있다. 그들의 손을 거쳐 사루가 지나온 여정들이 꽤나 자세하게 소개된다. 

                                                                        

                                                                                                             

 사실 영화는 극 초반에 사실 그대로를 관객에게 제시한다. 어린 사루가 어떻게 형과 헤어지게 되었으며, 그의 고향은 어디이며 고향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온 것인지, 그곳의 이름이 무엇인지 등 사루가 기억하지 못해 헤매는 정보들을 관객은 처음부터 알고 있는 전지적 시점에서 영화를 보게 된다. 자칫하면 견디기 힘든 답답함을 유발할 수도 있는 설정이다. 주인공을 섬세하게 따라가는 여정 속에서 그의 시각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는 것은.

  그렇기에 이 영화가 말하려는 것의 중점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해서 기적적으로 고향을 찾아낸 실화가 있었다고 해요! 재밌죠!"가 아닌, 길을 잃고 자신도 잃고 수없이 답을 구하고 있는 누군가의 삶에 대해서. 그리고 그 주변인들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영화이다. 하나하나의 인물들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그들은 어떤 삶을 살게 되는지. 어떠한 마음들을 품게 되는지를 깊게 다룬다. 이것은 소비되는 하나의 감동 실화가 아닌 그 실화를 겪어내야 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라이언>이 대단한 점이다.

                                                                     

                                                                                                               

  수많은 일들을 거쳐 어린 사루는 호주로 입양이 된다. 그의 양어머니인 '수'(니콜 키드먼)는 극 중 이런 대사를 한다. 성장한 두 자녀들을 보며 자신은 정말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이런 양어머니를 만날 수 있던 사루에게도 엄청난 축복이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단지 세상의 끝>을 보면서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었다. 문 열어 봤을 때 문제없는 집은 없다고. 드라마틱한 사건 없이도 서로에게 처절한 상처가 될 수 있는 존재들이 바로 가족이라고. 그럼에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족이다. 그렇기에 두 입양아를 데려온 수와 존의 가정은 진정한 가족이다.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 숱한 상처들에도 그들은 서로를 사랑함은 변함이 없기에. 

  개인적으로는 앞서 제시한 어린 사루의 과정만큼 조금 더 비중을 두고 호주에서 그가 성장한 이야기를 다루었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 니콜 키드먼은 굉장한 연기를 했고, 그녀가 보여준 어머니의 깊이란 대단했다. 어린 사루가 처음 온 날 그를 목욕시키며 그녀는 그에게 다음과 같은 대사를 한다. 깊고 깊은 사랑으로, 세상에는 사람이 너무 많고 자신이 그들을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는 일을 하기로 선택한 이 위대한 여성은 세상에 둘도 없는 축복을 받았다. 그 축복은 자신의 피로 이어진 자식이 아니어도 충분했다.


여기까지 오느라 길고 긴 과정이었겠지.
어떠한 일들을 지나왔는지 알려줘.
나중에 꼭 다 알려줘. 
내가 다 들어줄게. 언제까지나 들어줄 거야.

                                                                                                              

  수와 존의 삶에 백지상태로 찾아온 것이 아니었던 사루는 늘 그들을 생각하며 의젓한 청년으로 자랐다. 그의 연인이었던 루시 (루니 마라)는 자신이 진짜 가족을 찾는다는 사실에 온 정신이 뺏겨 있으면서도 양부모님께 그 말씀을 못 드리는 사루를 향해 어머님을 과소평가한 것이라 전한다. 그 말도 맞다. 그러나 그건 사루의 마음도 이해할 수밖에 없다. 

    많은 입양아들, 확장하자면 입양아뿐만 아니라 교포들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깊은 질문을 가지고 살아간다. 사루처럼 길을 잃어 고향과 가족을 떠났던 경우부터 다른 나라로 입양이 된 아이들.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 생김새가 다르다는 것이 얼마나 근본적인 질문을 크게 지니고 살게 하겠는가. 그들의 존재를 안정적으로 확립해줄 기반이 없는 것이다. 사루는 그 질문에 답을 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가 떠나온 곳에, 그가 태어난 곳에. 혹시 아직까지도 자신을 찾고 있을 가족들이 있는 곳에 그들을 찾아야 자신의 답이 얻어질 것이란 것. 어쩌면 그 답은 마음속 짐을 더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나를 찾고 있을지 모를 가족들 생각이 생생해.
그들이 나를 찾으며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
그런데 난 여기서 두 다리 뻗고 특권을 누리며 살고 있지.
그 생각만 하면 구역질이 나. 더 이상 이렇게는 안 되겠어.

                                                                                                         

   사루가 여자 친구를 향해 내뱉은 대사이다. 불현듯 그에게 다가온 젤라비는 그를 과거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만들고, 어쩌면 일생 동안 그가 품고 있었을 숙제들을 그의 정면에 불러온다. 그가 단순히 그리움으로, 자신의 고향을 찾으려는 단순한 마음이 아니었다는 것을 영화는 보인다. 그리고 그렇게 괴로워하는 그를 둘러싸고 함께 기다려주고 아파해주는 그의 연인, 그리고 부모님까지도. 그는 privilege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자신의 죄책감을 표현한다. 그 마음이 지극히 인간적이고 현실적이다. 군더더기 없이 솔직했다. 그를 대단한 위인으로 묘사하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보는 우리는 먹먹해진다. 깊게.
                                                                          

                                                                                                             

   사루가 돌아올까 떠나지 못한 어머니와 가족들. 그가 떠난 날 그를 찾다가 죽었을 형. 이제 사루가 걸어나가야 할 현실이다. 그가 성장한 기반의 가족은 수와 존, 그리고 맨토쉬이다.  

  영화가 가진 힘을 믿는다. 영화 한 편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그건 만드는 이의 몫에 달린 것이 아니다. 한 편의 영화가 가진 힘은 진정한 움직임을 야기할 수도 있고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고 다수의 마음에 울림을 전할 수도 있다. 그를 믿는다. <라이언>을 보며 함께 마음이 무너질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한 삶이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지켜본 이들도 생겼다. 그것이 이 영화가 가진 힘이라 믿는다.




영화를 읽어내고 써 내려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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