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밖으로 말을 내지는 않았지만 내가 다니는 버스노선을 마의 구간이라고 이름 지었다. 때때로 버스를 타자마자 손잡이 잡으라고 호통을 치는 기사를 만날 때는 뭐라 쏘아주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으나 마음이 졸아들어 그냥 하라는 대로 한다.
다른 분들이 그런 일을 맞닥뜨려도 내가 당하는 것 마냥 가슴이 쿵쿵 뛴다. 아마 기사님이 언짢은 일이 있거나 그런저런 사고들로 추궁을 당했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할 뿐이었다. 가끔 학생이 버스에서 넘어져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말이 들려오기라도 할라치면 마음이 아프고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날도 일하러 가기 위해 버스를 탔는데 새초롬하게 하얀 셔츠에 어두운 색의 스카프를 앞으로 단정히 두르고 앉아 운전대를 잡은 이는 분명 여자였다. 겉 나이로 가늠하기론 삼십 대 후반에서 사십 대 초쯤 된 것 같았다. 짧게 자른 머리며 단아한 모습이다. 버스를 아주 부드럽게 몰았다. 운전하지 못하는 나는 경이롭다는 눈빛을 보내며 앉아 있었다.
평소 운전을 부드럽게 하는 쪽은 남자들이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여러 사람의 차를 타본 결과 얻은 결론이었다. 개인적인 생각이기에 단언하기에 무리지만. 그런데 어쩌면 이 말을 바꾸어야 될지도 모르겠다. 아주 소리도 없이 버스가 미끄러져 가는 것이다. 내가 내릴 정류장에 정차한 차를 보며 언제 다 왔지 하며 내린다. 기사님을 한 번 더 보아두려고 발 돋음을 하는데 차체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저만치 달려가서 살피니 보였다. 기사님도 의아했을 것이다. 웬 여자가 자신을 웃는 낯으로 뚫어져라 보고 있으니까. 찰나인 순간 저 깊은 곳으로부터 뿌듯함이 밀려 올라왔다. 손을 흔들어 주고 싶은데 주책이라 여겨질까 봐 속으로만 손짓했다. 버스는 떠나고 나도 제 길로 갔다.
저녁에 남편에게 여자운전기사에 대하여 말하니 초보라서 그렇게 조심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겠냐며 딴전을 피운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늘 무척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신데렐라 애니메이션 주제 음악처럼 ‘오늘은 기분이 좋아. 랄랄라라라라라~저 하늘 높이 날개를 펴고 날아갈 것 같아요. 오늘은 기분이 좋아. 랄랄라라라라. 마음속 깊이 간직한 꿈이 이루어질 것 같아요. 를 흥얼거려 본다.
남편과 폐교 운동장에서 운전연습을 했더랬다. 며칠 하고서 도로로 차를 끌고 나왔다. 오르막에서 신호대기를 하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남편은 전화로 이야기를 하고 신호가 바뀐다. 액셀을 밟는데 차가 앞으로 나가지 않고 뒤로 밀려난다. 심각성을 알아차린 남편이 전화를 끊는다. 뒤의 차에 살짝 부딪쳤다. 차를 갓길로 대라기에 그렇게 하고 내려서 보니 바로 뒤 까만 승용차엔 세 살배기 아기가 타고 있었다. 다행히 다치거나 하지 않았지만 그분들의 책망 비슷한 눈빛은 아직 내 마음에 살아있다. 핑곗거리를 만난 것 마냥 차 운전 연습을 그만두었다.
연말이 다가오자 본전 생각이 났다. 이론과 실기를 합쳐 백여 만 원의 돈을 들였는데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하려니 아까웠다. 운전면허연습장을 찾아 사정을 말하니 며칠 남지 않아 일종은 무리고 일단 이종으로 따라고 한다.
이종으로 면허를 취득하여 장롱면허로 오늘에 이르렀다. 언젠가는 기필코 운전을 하리라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자율주행차가 나온다면 귀를 쫑긋 세우고 살피고 있다. 그래도 운전은 할 줄 알아야겠지. 여의치 않으면 그때 가서 운전연수를 받으면 되지 않을까 하며 위로해 본다.
그래서 버스 운전대를 잡으시는 여자 기사님이 너무 위대해 보인다. 대리만족도 만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