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진 Jan 20. 2024

눈사람 유괴

  몇 년째 누군가 만들어 놓은 눈사람을 보며 흐뭇해한다. 사진을 보내는 딸도 즐거움을 나누고 싶어 매해 보내는 것일 것이다. 매번 묻는다. 누가 만들었느냐고. 자기는 장갑을 안 가져와서 만들 수 없다거나 이런저런 이유들을 대지만 아마 눈사람을 만들 열정을 잃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동심이 수증기같이 스멀스멀 빠져나가 버렸던지 같이 즐거워할 사람이 없어서 일수도.


 눈이 많이 내리는 날 아침에는 약속이나 한 듯이 여러 가족들이 모이는 것이다. 눈사람 만들기 대회는 아니나 이 가족 저 가족 눈사람을 만들어 세우자. 아마 규격이 없기에 이 모양 저 모양 크기도 들쭉날쭉 제 멋대로 여도 좋다. 자유롭게 만드는 눈사람 대회. 기회가 된다면 이런 기획을 해보면 어떨까 싶다. 한쪽에서는 진하게 우린 다시물에 무를 넣어 시원한 어묵국물을 끓이고. 누구라도 손이 시리면 한 국자 들이키고 다시 가서 눈사람을 만드는.


 식물교실에 들어가 보면 아빠와 아이들이 머리를 맛 대기도 하지만 어른 맘대로 하던지 아이가 요구한 대로 그냥 다 들어주던지 갈린다. 오히려 엄마와 같이 온 친구들이 자기 맘대로 하려 떼쓰는 느낌도 들었다. 그만큼 엄마와 아이들이 스스럼없다는 소리일 테고 평생을 그렇게 짜인 구도로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눈사람이 모두 만들어지면 누구네 가족이라고 작은 푯말을 세우는 것이다. 그래서 눈사람 공원이 되고 사람들을 ‘눈사람공원으로 오세요’ 하고 초대장도 만들어 보내면 어떨까 싶은. 강아지도 몇 마리 눈사람 사이를 좋아라 뛰어다니고.


  눈이 많이 내린 아침, 비밀 네트워크로 눈사람 만듭시다 하고 누군가 손들면 회사에서도 한 두어 시간 봐주는 것으로. 요즈음은 거기에 있었다는 증거 사진을 찍어 보내던데. 그만큼 가족들이 행복해야 회사에서도 능률이 오른다는 것은 이미 증명된 것이니 한 번쯤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날이 정말 있다면 아이들의 기억에 어떤 날로 기억이 될까. 생각만 해도 배시시 웃음이 번지는 어린 날의 추억이 될 것이다. 누구 눈사람이 어떻고 비교하지 않은 어떤 눈사람이라도 재밌고 놀라운 것들이 되는. 모두 만족하며 즐거운 시간으로 자리매김하는.


  눈사람 하나하나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고 아이들의 상상력을 어른들은 좇아가지 못해 배꼽만 잡을 것이다. 사르락 거리는 눈들이 어떻게 몸을 부풀리는지 서로가 서로를 끌어안는지 그래서 하나로 뭉쳐지는지를 아이들은 알게 될 것이다. 아래 몸 눈덩이는 크게 위에 눈덩이는 조금 작게 무게중심을 맞추어야 하는 것을 누가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될 것이다. 가분수가 되거나 위 눈덩이가 클 때에 와지는 사고들도 마주하고.


  얼마 전에 들은 이야기다. 아는 분 어린 손주들이 고사리 손으로 눈사람을 만들었다고 한다. 갑자기 바람이 세차고 눈보라가 쳐서 집안으로 잠시 들어가 몸을 녹이고 나왔는데 눈사람이 없어졌다. 그 순간 아이들이 얼음이 되었다. 『눈사람 아저씨』처럼 날아갔나. 아직 초등학교에도 들어가지 않은 쌍둥이들이 만든 눈사람을 누군가 유괴해 갔다. 디엔에이라도 남겼다면 조사라도 하겠지만 그럴 수도 없다. 할아버지 입장에서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고.

 

  그 이야기를 듣는데 내 동심이 도둑맞은 것 같았다. 그 아이들이 안 좋은 기억에서 벗어나려면 다시 눈사람을 만들어야 하나. 이번에는 덥석 안고 가지 못하게 어른들과 함께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면 어떨까. 어쩌면 눈사람을 잠시 빌려 누군가에게 보여주고자 한 것인지도. 그런데 뜻하지 않게 실내의 온도 때문에 눈사람이 울기 시작하여 가져다 놓을 수 없었으려나.

 

   바라기는 그 아이들이 눈사람을 도독 맞을까 봐 겁내지 않고 다시 눈사람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눈사람을 만든 모든 사람들은 아이건 어른이건 마음이 순순하다. 이곳에도 눈이 쌓이면 나도 눈사람을 만들 수 있을지.     


작가의 이전글 문간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