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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 Jan 06. 2024

문간방

 춥지 않아 다른 해와 달리 한번 거르고 석유를 넣은 것 같다. 동산석유 사장님에게 올해 사람들이 기름을 덜 넣었느냐고 물으니 예년에 비하여 반 정도 등유 판매량이 줄었다고 한다.

 

  앞집이 이사를 간 뒤에 세 들지 않고 비어있다. 그 집도 우리와 같은 이에게서 기름을 넣었었는데 빈 집이니 아쉬운 듯하다. 요새는 주택들이 세가 안 나간다며 푸념하듯 문간방들이 다 비어있다고. 엘 에이치나, 나라에서 집을 주니 어려운 사람들이 이사를 가서 기름 넣을 사람들이 줄었다는 말이다. ‘우리는 이렇게 힘드는데 라는 말이 곁들여진다.’ 거의가 도시가스가 들어오는 갓 지은 임대아파트나 원룸으로 이사를 간다고.

 

 소설에는 신혼을 문간방에서 시작하여 이제나 저제나 벗어나려 하지만 이사를 못하여 울며 겨자 먹기로 살아가는 애달픈 사연들이 나온다. 세월이 흘러 아이들이 자라면 주인집 또래들과 다툼이 일어난다. 잘못하지 않았는데도 아이들은 풀죽고, 부모가 죄인이 되던 모습들. 지금이라고 없어진 이야기는 아니다. 사회 곳곳에 다른 모양새로 숨겨졌을 뿐.


 다행히 나라가 이만치라도 살아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이 등 따시고 배따시게 살 수 있어 너무나 감사하다. 출발선이 달라 비슷해지기 어려운 여건이지만 바람 피할 곳 있고, 먹을 것 있으면 용기내기가 수월하지 않을까 싶어서.


 맨 처음 기름 넣으러 올 때는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오붓하게 왔고, 때로는 대학생인 딸과 동행하기도 했다. 일손이 달리면  사람이 바뀌었다. 이번에는 동남아에서 온 청년이 무거운 주유 줄을 잡았다. 하나도 낮 설지 않다.


  인기척이라도 내지! 무슨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기름을 넣고 있었다. 다른 때 같으면 아랫집 개가 잡아먹을 듯 짖고 난리를 칠 것인데 숨소리도 나지 않았다. 사장님에게 오늘따라 개가 짖지 않아 별일이라고 했더니 자기네가 얼마 전부터 강아지 한 마리를 키워 개 냄새가 나서 그런 것 같단다. 개 나라에서는 동족의 냄새가 나면 소리 내지 않기로 한 묵계가 전해 내려오나. 처음으로 조용하게 기름을 넣은 날이 되었다. 거기다 직원까지 말이 없으니.


  날이 계속 이렇게 따뜻하기를 바라야 할지 말지. 기름 값이 더 들어도 본디대로 추우라고 해야 할지 말지. 어제는 봄 까치꽃 사진을 찍어 사람들에게 보였다. 오늘은 명자 꽃으로 눈요기를 시켰다. 양지바른 곳도 아니고 약간 응달인 곳에서 살포시 웃고 있어 보는 내가 멋쩍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 것 같아 마냥 반가워할 수만은 없는. 다만 신기하여 사진을 찍었다. 이월 중순도 아닌 새해 첫 주에 꽃 마중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반갑다고 눈인사를 건네야 되는지 째려야 하는지.


  이러다 갑자기 추위라도 들이닥치면 멋모르고 피어난 저 여린 꽃잎들이 얼부풀고 말아 꽃 진 자리가 서러울 것을. 왜 이리 급하게 꽃을 피워냈는지. 봄소식도 아니고 환경의 변화 같아서 꽃을 보면서도 즐거워해야 할지 말아야 하는지 석연치 않다. 이러다 겨울이 자취를 감추어 버릴지 모른다는 아연함. 자연의 이치들이 삐걱대어 맞물리지 않는 것이 내 탓인가 하여 문간방에 세든 사람처럼 풀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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