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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 Dec 30. 2023

그도 가족인가

  시대적인 요청이 바뀌어 가족의 정의가 달라져가고 있다. 피를 나누기보다 서로의 아픔과 외로움을 달래며 살고 있는 것에 방점이 찍히는. 좁은 개념을 넘어 더 넓은 울타리를 쳐야 하는 사회의 모습이다.


 정식으로 결혼한 사이가 아니면 받아들이지를 못하며 어느 순간 얕잡아 보는 듯하다. 한쪽에서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서로 그러고 있다. 그러다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맹수가 발톱을 드러내듯이 서로가 할퀴려 한다.

 

 새로운 가족 형태를 자로 재듯이 나눌 수도 없거니와 나누어서도 안 된다. 사람살이는 어쩌면 외로움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에 기반하고 있는지도 모르기에. 기준이 모호해지면 사회가 더 어지러워지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면 그렇지 않으리라고 다. 사랑받고 사랑하면서 다른 것들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겨지게 마련이므로.


 사고로 장애인이 되어 그들 스스로 가족이기를 자청했다. 바라보는 이들이 굳이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은 무슨 속내인지. 거기에 도덕과 윤리가 끼일 자리가 있는지 궁금해진다. 도덕과 윤리가 왜 생겨났을까. 더 온전한 사회를 이루기 위한 장치였을 것이다. 힘이 센 자들의 횡포를 막기 위하여 이루어진 암묵적 약속. 곧이곧대로 호적을 정리할 수도 결혼을 할 수도 없는 막막한 이들은 그냥 외로운 산비둘기가 되어야만 하는지.

 

 “그도 가족인가.” 이 한마디의 말에 가슴이 아렸다. 만나서 산 세월이 얼마인데. 상대방 가족에게 받아들여졌는지 의심한다. 연배로 보나 신앙으로 보나 감싸 안아야 할 것만 같은데. 가족여행에 그를 끼워줘야 되는지 말아야 되는지를 우리가 판단할 필요는 없다. 이미 동행하고 있는 사람을 왜 감정적으로 매장시키고자 하는지. 우리 속에 잔인함이 잠자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가끔 얼굴을 내미는지도 모른다.


 그가 혈육이 아닌 자녀들을 향한 모습에서 진정성이 보인다. 늘 진중한 모습으로 흔들리지 않으며 사람들과도 조화롭다.  마음을 다독이며 서로 잘 지내고 있는데 들여다보는 사람들의 곱지 않는 시선이라니. 시기인가  질투인가.


  어떤 책에서 아내와 같이 늙어가고 싶었다는 말이 공감이 되었다. 같이 나이를 먹고, 함께 얼굴에 주름을 긋고, 표정 하나에도 무엇이 담기는지 알 수 있는 그런 사이로 살려고 했는데 먼저 가서 미안하다는 고백. 아내자식의 손주들을 키우며 살고 싶었다는 말에 뭉클했다. 삶의 넓은 의미가 느껴졌다.  아내의 자식이면 내 자식이라는.

 

 사회의 규범으로만 모든 것을 묶어 둘 수는 없다. 사회계약 하에 있는 자들의 우월을 행사하는 것인 돌아보아야 할 부분이다. 나와 같은 부류로만 울을 치고 싶어 고개를 흔들고 본능적인 욕구에 끌려가는 은 아닌지.


 먼 우주에서 우리를 바라보면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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