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맣게 잊어먹고 있었는데 첫 당근 거래 했던 이로부터 연락이 온다. 말 한마디 토씨하나 다르지 않다. 몇 년 전인데도 기억이 난다. 거의 4킬로미터에서 걸어서 가지로 오겠다니 어떻게 해야 하나. 그냥 안 한다고 할까. 갈등이 된다. 그것도 일이 늦게 끝나고 온다는데. 할 수 없이 그때처럼 가져다준다고. 물건을 대문 앞에 두고 사진을 찍어 보내면 이체해 주는 식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져다주기에 조금 마음을 기울이면 된다. 남편과 아들은 왜 굳이 그렇게까지 하느냐며 성화다.
작은 딸에게 일러바친다. “어제 당근에 유리호프스를 냈어. 구 교육청 사거리 근처에 사는 분이 한다고 하더라고. 그분이 2주 전에 마취목을 샀는데 가져다주었었거든. 나처럼 뚜벅이야. 오늘 유리호프스를 배달을 했는데 아빠도, 네 동생도 야단이야. 그래서 당근 한번 해보고 그런 말 하라고 했어. 당근 안 해본 사람들이 말이 더 많네.” 하면서. 참고로 당근 거래 처음 했던 분이라서 내가 애착을 가지고 있긴 하나 봐.
“얼마에 팔았는데?” “7천”
“유리호프스 사진은 없나”
“꽃이 많이 물려 있지?”
“오 얘가 유리호프스군. 진주서 당근에 판 것 치고는 나쁘지 않게 팔았네. 산 사람이 횡재했네. 꽃이 앞으로 많이 피겠는데.”
“그래서 샀겠지. 다른 사람이 또 있느냐고 묻기에 한 개는 나 봐야 해서 없다고 했어. 한발 늦은 거지. 작년 제주도 갔을 때 숙소에 한껏 피어 한들거리던 그 꽃이야.”
“올해는 우리 집 놀러 와서 ‘아침고요수목원’ 갈까?” “좋아”
비비추
아주가
큰 딸이 끼어든다. “당근 가격대가 참 어렵긴 한 듯해요. 비싸면 안 사니까. 근데 배송까지 해주니까 유류비?” “집으로 오는 길에 친절이지. 뚜벅이 인 나 생각하고서.”
남편이 한마디 한다. “옆에서 보기에 살 때는 겁나 비싸게 사거든. 팔 때는 무지 싸게 파는 것 같다 이 말이지.”
“그이가 당근 거래 처음 사준 것은 ‘봄맞이꽃’이었거든. 씨 심어 키워 만원 받고 팔았는데.”
큰 딸이 “아하 제 생각엔 택배기사님이 배송비를 원하시는 것 같아요.” “아, 좀 떼 주라고. 나 맨날 밥 해 주는데.”
비비추를 올렸다. 바로 구매하고 싶다고. 시간 약속을 하고서 새싹이 올라오는 사진을 보냈다. “초록 연필 같더니 이렇게 변했어요. 자람은 덤으로 보냅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답 글이 올라온다. “오 비비추 새싹이 참 이쁩니다.” 이른 저녁 약속 시간. 화분을 종이 가방에 담았더니 싱그럽다. 흰색 승용차가 와서 멎는다. 남자분이 내린다. 당연히 여자분인 줄 알았는데. 쭈뼛거리는 것이 당근인 것 같아 얼른 내려갔다. 초록꽃다발이라면서 건넨다. 이렇게나 많이 자랐네요. 그런데 값이 너무 싸네요. 괜찮습니다. 잘 키우세요. 저도 선물을 가져왔어요. 하면서 건네 온 것은 산 마늘잎이다.
남편과 아들에게 당근에서 선물도 받았다고 자랑을 한다. 삼겹살 사서 쌈 싸 먹고 남은 것은 장아찌를 했다. 명이나물 탄생. 너무 자로 잰 듯하는 것이 아니라고. 조금씩 양보하면서 사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같은 날 어떤 아주머니가 ‘아주가’를 가지러 왔다. 강의가 있다면서 아주 늦게. 정원에 심을 거란다. 자기는 ‘아주가’를 심어 놓으면 자꾸 죽는다고. 땅에 마사를 많이 섞어 물 빠짐이 좋게 해 보라고 알려준다. 나도 아주가 화분 한 개는 진흙성분이 많아 녹고 겨우 흔적만 남아 있다. 배수가 잘 되게 심은 것은 자랑처럼 푸른보라색 꽃을 피워내 수월하게 임자를 만난 것이다.
이렇다.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애지중지 키우던 것을 주고받는. 돈이란 것은 그것을 이어주는 끈이 되어주는 것. 내가 잘 데리고 있던 식물이 어느 정원 한 모서리를 훤히 밝히고 서 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