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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 Jul 06. 2024

풍경

 신랑은 물 찬 제비 같고 신부는 한 떨기 흰 장미꽃이어라.


  새벽 기차를 타고 올라갔다. 메이크업 시간이 열한 시 삼십 분이었다. 카페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했다. 예식이 오후 세시 삼십 분이지만 마땅하게 점심을 먹기 어려울 것 같아서.


 요즘은 자연스러운 화장을 한다고 했다. 하라는 대로 따랐다. 내 얼굴과 머리가 예술가의 손에 맡겨진 느낌이었다. 결혼할 때 신부화장을 해본 뒤로 처음 남의 손에 얼굴을 맡겼다. 눈을 감으라 하면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라면 숙이고. 시간이 흐른 것 같지 않았는데 한 시간 반을 그러고 있었다.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낯설기도 한 내 모습이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어머니 고우시네요. 한 마디씩 거들기에 나도 그런가 보다 했다. 예쁘게 해 주어 고맙습니다. 나를 맡은 아티스트에게 말했더니 본판불변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며 겸손해한다. 귀밑머리를 애교스럽게 길게 내어주어 맘에 들었는데 윗사람인 듯하는 분이 들러오더니 살펴본다. 그러더니 내가 맘에 들어했던 것을 더 짧게 자른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신랑 곁에서 손님들에게 인사를 했다. 아, 나도 무대 체질인가. 별로 어렵지가 않다. 저고리는 옥색 빛을 띠고 치마는 가지색보다는 더 밝은 색 한복이 잘 어울리는 분이 있었다. 처음 봤는데도 오늘 결혼하는 신랑의 고모라는 느낌이 들었다. 마주 나아가서 인사를 드렸다. 고모 되시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를 안았다. 고모님이 감사하다고 했다.


 아이들을 키우고 나서 이런 인사를 받는 날이 오다니. 부산에서 일산까지 와 주시는 것만 해도 감사한데 그간의 모든 노고를 한 번에 날려줄 한마디를 하신 것이다. 그것으로 이제껏 산 세월이 헛것이 아니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신랑 작은 아버지도 작은 어머니도 왔다. 작은 엄마는 나중 재혼한 사이어서 그런지 쭈뼛거린다. 더 다가가서 인사도 하고 말도 붙이고 흔연스럽게 하였다. 모두들 쉽지 않은 시간들을 보내고 이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모두 잘하였다는 생각이다. 신랑 고모도 작은 아버지사진을 열심히 찍으며 즐거워하는 것을 보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안 계신 신랑 아버지의 혈육이 와서 축하를 하여주니 신랑 마음이 얼마나 좋을까.


 아이들 두 형제가 이십여 년 전에 부모를 잃고 우리와 살았다.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서로 조금씩 힘들면서 견디며 이제까지 온 것이다. 신랑의 어머니로 한복을 입고 혼주 석에 앉을 수 있다니. 신랑의 들러리 역할을 하겠거니 했는데 나름 주인공의 모습도 있다. 예식장 측에서 요구한 대로 썩 잘 해낸 것 같아 뿌듯했다.

 신랑의 동생들이 축가를 준비했다고 사회자가 소개하자, 아들이 기타를 치면서 딸과 함께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나 간구하노라’를 부른다.  예배로 드리는 예식이었으니 어울린다. 요즈음에 유행하는 빠른 박자의 노래로 한다기에 예식이 거룩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었다. 노래를 썩 잘하는 아이들은 아니었으나 열심히 연습했다고. 오히려 딸은 여유 있게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노래를 불렀다.


 내 결혼식 때는  ‘완전한 사랑’을 불러달라고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당돌한 것이 아니었나 싶은. 축가는 불러주는 사람이 맘대로 준비하여 불러주는 것인데 왜 그랬을까. 축가의 가사처럼 살아오지도 못한 것 같아 조금 민망하다. 그렇게 살기를 소망했다.  어쩌면 많이 모자라서 그런 것은 아니었나 싶기도 하여 지금이라도 시계를 돌린다면 어떤 축가를 불러주기를 바랄는지.


 신랑신부 행진이라는 소리와 함께 새신랑과 새신부가 다정하게 손잡고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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