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 꽃을 훔쳐보기 시작한 것이

달달한 사탕을 머금고 있는

by 민진

지금 사는 집으로 온 시기가 수능이 막 끝난 뒤였다. 재수를 한 딸아이와 막내가 같이 치른 시험이라 이사 날짜를 미뤘었다. 겨울을 지나 집 앞 목련나무가 환하게 등불을 켜든 것 같았다. 꽃이 피어있는 시간 참 행복했다. 남의 집에 피어있는 꽃이지만 내 마음에 좋으면 나의 나무인 것 같기도 하다. 꽃잎 지는 것은 또 어떤가. 야멸차다고 해야 할까? 그 고운 자태의 꽃이 추락할 때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것만 같다. 두 세계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필 때가 있으면 져야 할 때가 있다는 인생의 모습을 가르치고 떠나는 것 같다는. 처절하게 시들어 널브러진 꽃잎들이 바람에 날려 우리 집까지 날아들기도 했다.


목련꽃 때문에 봄이 오는 것 같았다. 십 년을 그렇게 봄을 맞이하고 떠나보냈는데, 두 해전 이사 온 사람들이 목련나무를 흔적도 없이 베어버렸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싶지만, 자기 땅에 심어진 나무를 저의 마음대로 한다는데 뭐라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그러고 두 번의 봄을 맞이했다. 목련이 언제 피는지를 잊어버렸다. 길을 지나다 목련 봉오리를 볼 때에야 목련의 계절을 기억해 내곤 한다.


어느 날 옥상에 빨래를 널다가 여차 것으로 내려다본 뒷집 앞에 다소곳하게 피어있는 목련꽃을 보았다. 얼마나 반갑던지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그렇다고 오래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현관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나무가 서 있으니. 문을 열고 누가 나오기라도 하면 난감할 것 같았다. 그날부터이다. 목련꽃을 훔쳐보기 시작한 것이. 옥상에 꽃나무 몇 그루 자라고 있으니 물 주러 가서 보고, 꽃눈이 맺혔나 살피러 가고. 자꾸만 옥상에 갈 일을 만들었다. 목련꽃과 눈 맞춤 하다가 드디어 사진을 찍었다. 목련꽃 훔쳐보는 것이 좋았다. 야금야금 몰래 먹는 달달한 사탕을 머금고 있는 느낌이랄까.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연애 같았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도 즐겨보는 목련 나무가 있다. 몇 년을 자라면 저렇게 큰 나무가 될까 싶을 만큼 우람했다. 그 큰 나무에 목련꽃이 다 달리면 장관이었다. 보고 있으면 가슴이 벅차올랐는데 작년에 그 나무가 상처를 입었다. 절반이 잘려나갔다. 얼굴 반쪽을 없애버린 듯이. 그것도 세금으로 운영하는 곳에서 그렇게 하였기에 더 속상하다. 나무를 전정하는 것을 누가 뭐라 하는가.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정리해야 한다면 조경업체와 조율을 하고 나무가 최대한 훼손되지 않을 방법을 마련해야 할 것만 같은데, 무지막지하게 아무렇게나 잘라놓았다. 나무로 보는 것이 아닌 일로만 보고, 돈으로만 보아 나무를 버려놓은 것이다. 한그루 나무가 자라는 시간, 시민들이 피어난 꽃을 보고 느끼는 행복지수는 계산에 넣지 않았다는 것이 슬프다.


한쪽 얼굴을 도려낸 목련나무에 올해도 어김없이 꽃은 피어났다. 꽃반쪽이를 보는 것 같다. 비용이 분명 차이가 날 것이다. 시에서는 정원박람회를 해마다 열어 전 국민들이 보러 오는 행사를 치른다. 그 예산이 얼마인지 알고 싶지도 않다. 그 기간이 지나면 남겨지는 정원도 있지만 철회해 버리고 맨 처음처럼 만들어 버리는 곳도 있다. 정원문화도시를 만든다고 외치지만 관공서 같은 곳에서 나무를 심하게 훼손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면 진정한 정원문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오늘 금요일 저녁이니 내일 마지막 목련꽃을 훔쳐보러 옥상에 올라가야겠다. 이제 거의 다 지고 느지막하게 피어난 몇 송이 꽃만이 남았겠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 마음은 이미 목련꽃으로 가득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