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중심이겠는가

그것을 잘하는 사람을 우리는 지혜롭다 말하는지

by 민진

애잔한 풀꽃들이 앙증맞다. 꽃이 귀해서 더 그렇게 느끼는 것은 아닐까 싶다. 봄소식을 맨 먼저 알려준다는 봄 까치꽃이 햇빛 가득한 양지에 무리를 지었다. 겨울을 이겨내 꽃을 피워준 것이 반갑고 고마워 자연스레 눈길이 가는지도 모른다. 봄 까치꽃이 수다를 떨고 있는 것만 같아 보고 있으면 절로 웃음이 난다.


봄맞이꽃은 봄을 맞이한다는 의미에서인지 목을 쭉 빼어내 꽃을 피워준다. 바라보면 잔잔한 아기웃음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두 해살이다. 씨를 바람에 실어 여기저기 흩뿌려 싹을 틔워 자라 겨울을 견디면 꽃을 피울 수 있다. 흰 딸기 꽃을 줄여 놓은 것 같기도 하다. 우리 집 화분 여기저기 봄맞이꽃들이 둥지를 틀었다. 봄소식이 들리기도 전에 봄맞이꽃을 따뜻한 곳에 두어 어서어서 꽃대를 올리라고 부추겼다. 여지없이 좁쌀모양을 매단 꽃대가 쑥 올라온다. 봄맞이꽃을 성급하게 피워내었기에 우리 집에 봄이 빨리 왔는지 모른다며 웃는다. 계절을 당긴다고 봄이 빨리 오는 것도 아닌데 뭐가 그리 급하여 꽃을 빨리 보기를 원하는지 통 알 수가 없긴 하다.

꽃마리, 봄맞이

봄까치꽃


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가져온 아이는 따로 있다. 꽃마리. 물망초 꽃을 줄여놓은 품새다. 눈 맞춤이 어려울 정도로 꽃이 작아 자세히 보아야 보인다. 처음 이름을 들었을 때 ‘꽃도 고운데 이름은 더 예쁘네’라고 감탄했었다. 꽃을 말고 있다가 피어난다고 하여 그런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소라처럼 꽃봉오리를 말고 있다가 피어난다.

지난해 꽃 친구로부터 물칼라를 선물 받았다. 수려한 흰색 꽃을 기대했는데 무참히 무너졌던. 잎만 보여주었다. 올해는 꽃 보여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도를 닦는다. 겨울이 되자 칼라의 몰골이 심상치 않아 현관문 앞에 두었다. 월동을 못할 것 같아서이다. 그런데 꽃마리 씨가 어디서 날아왔는지 더부살이를 시작했다. 꽃 볼 수 있겠거니 그대로 두었는데, 꽃마리가 몸을 불리기 시작한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낼 것만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물칼라가 괜찮을까 싶기도 했다. 쟤가 저렇게 자라기도 하나 싶을 정도로 세력이 좋다. 아예 방 빼라고 하는 것만 같다. 그 모습이 식물의 세계나 사람들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아서 마음이 힘들어진다. 처음에는 삐죽삐죽 자리를 넘보다가 기회가 다가왔을 때 주인행세로 돌아서는 것. 칼라를 다른 화분으로 옮겨야 하나 싶을 정도. 지금 옮기면 둘 다 좋지 않을 것 같아 그냥 둔다. 따뜻해지고 봄비 내리는 어느 날 분가를 시켜야지.


칠팔 년을 한 분하고 일한 활동지원사가 있다. 그이는 하루아침에 쫓겨 가듯이 눈물바람을 하며 물러났다. 의견이 안 맞아 서로 끝을 보아야 할 때가 있을 수밖에 없다지만 단칼에 무 자르듯이 한다는 것은 생각해 볼 일이다. 사람이기에 시간을 가지고 조율을 하고 그래도 안 된다면 정리와 이별할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다면 너무 이상주의인가. 동료들과도, 얼굴을 알고 지냈던 사람들과도 마음을 여미며 서로에 대하여 헤어질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우린 너무 급하다. 뭔가를 순식간에 해치워 버려야만 할 것처럼 처지를 만들어간다. 점점 더 여유가 없어지는 것 같아 슬프다. 그런 것을 느낄 겨를도 가지기를 원하지 않는 것만 같아서. 잠시 조금 분노하고 떠나간 그이의 입장보다는 내가 그 자리에 있었을 수도 있다는 것 때문에 속상해하는지도 모른다. 우린 진정으로 다른 이를 위하여 얼마나 마음을 내어줄 수 있는지 물어야 할 것 같다. 그녀가 떠나고 이틀 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새로운 사람이 그 자리를 채웠다. 그 자리가 바뀌긴 했었냐는 듯이 서로 또 잘 지낸다. 나사 하나 빠져나간 자리에 다른 나사로 대체된 것만 같아 씁쓸하다.


누가 중심이겠는가? 분명한 것은 꽃마리도 좋아하지만 더 마음이 가는 녀석은 물칼라다. 겉으로 보기에 표 안 나지만 우선순위는 있다. 다 소중하다고 여기지만 선택해야 할 기로에 놓여 나머지는 포기해야 한다면 순서들은 분명하다. 풀꽃을 다 좋아하는 것 같지만 더 아끼고 애달파하는 것이 갈린다. 그 좁은 화분에 꽃마리가 꽃씨로 날아 들어와 세를 불린 것 때문에 마음이 복잡해졌을 뿐. 사이좋게 그대로 두면 될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러면 내가 원하는 것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 교통정리가 필요해지는 순간이 오면 모든 것을 다 좋아할 수는 없다.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모두에게 좋은 평화로운 모습을 가져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을 때가 더 많다. 그것을 잘하는 사람을 우리는 지혜롭다고 말하는지 모르겠다. 꽃마리는 지금 피고 물칼라는 아직 제 계절이 아니니 좀 두고 보련다.

봄이 오는 길목에 꽃마리가 좁쌀만큼 작고 해사함으로, 봄맞이꽃이 하늘거리는 것이 여간 반갑다. 그 작디작은 온몸으로 봄이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