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의 존재는 서로에게 동기 부여를 높이는 긍정적인 효과를 주곤 합니다. 이른바 '메호대전'이라 불리며 축구 역사상 가장 유명한 라이벌로 꼽히는 메시와 호날두 역시 서로에게 큰 자극제가 되곤 했습니다. 퍼거슨 감독은 호날두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뛸 당시, "메시가 현존 최고의 선수인 거 알지?"라는 말로 호날두에게 동기부여를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호날두 스스로도 메시와의 경쟁이 서로에게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축구계에 '메호대전'이 있다면, AI계에는 '오구대전'이 있는데요. 네, 바로 OpenAI와 구글을 말합니다. 누군가는 두 기업이 왜 라이벌 관계냐며 반문하실 수도 있는데요. 사실 두 기업은 태생적으로 라이벌 관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OpenAI가 폐쇄형 인공지능의 대표주자였던 구글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오구대전은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용어가 아닌 제가 만든 말입니다�)
과거 구글 설립자인 레리 페이지와 일론 머스크는 인공지능의 잠재적 위험성을 두고 논쟁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일론 머스크의 만류에도 레리 페이지가 딥마인드를 인수하자 이에 대항하기 위해 샘 알트만과 의기투합하여 만든 것이 바로 OpenAI입니다.
사실 두 기업이 라이벌이라고는 했지만, 라이벌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ChatGPT 출시 이후의 모든 오구대전 승자는 OpenAI였습니다. 여기에는 OpenAI가 잘해서 승리한 면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구글이 자멸한 영향도 컸습니다.
첫 번째 오구대전이라 부를 수 있는 'ChatGPT vs 바드' 대전에서는 바드가 공식석상에서 틀린 답변을 내놓으며 주가가 7% 이상 급락하는 등 구글의 대패로 끝이 났고, 두 번째 오구대전이라 부를 수 있는 'GPT-4 vs 제미나이' 대전에서는 제미나이 데모 영상의 과도한 편집 정황이 드러나며 또다시 구글의 패배로 돌아갔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주에 벌어진 세 번째 오구대전은 어땠을까요? 먼저, '굳이' 구글의 연례 개발자 행사인 구글 I/O 2024의 하루 전, 기습 공격을 날린 OpenAI의 업데이트 소식을 살펴보겠습니다. OpenAI의 업데이트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매체는 영화 'Her' 혹은 어벤저스의 '자비스'를 제목에 언급하며 업데이트 내용을 비유했는데요. 이보다 정확한 비유가 없을 만큼 OpenAI 업데이트 내용은 명확했습니다.
이번에 업데이트된 모델의 이름은 GPT-4o(Omni)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성능 측면에서 GPT-4와 비교해 크게 진전된 모습은 없지만, 전방향의 모든 것을 뜻하는 'Omni'를 붙임으로써 멀티모달 능력을 가졌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즉, GPT-4o는 GPT-4 성능을 텍스트에 국한하지 않고 어떤 인풋에도 원하는 아웃풋으로 만들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 외에도 빠른 응답 속도를 위해 경량화 측면에서 많은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뛰어난 멀티모달 능력과 경량화가 결합되자, 사람과의 실시간 화상대화 능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릴 수 있게 됐는데요. 핸드폰 카메라를 활용한 실시간 화상대화에서 'ChatGPT-4o'는 사람 수준의 반응 속도(0.32ms)로 답변하는 것도 모자라, 카메라로 보는 상황을 인식해서 답변에 반영하거나 화자의 감정을 읽어내고, 자신의 감정까지 바꿔가면서 대화를 이끄는 등 인상적인 모습을 연이어 보여주었습니다. 시연 영상을 보면서, 아마도 스티브잡스가 Siri에게 이런 모습을 기대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식 발표 영상 외에도 OpenAI는 이 멀티모달 능력에 초점을 맞추어 많은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즉, 보고 듣고 말하는 완벽한 개인 비서라는 하나의 '점'에 집중하여 공세를 펼쳤습니다. 물론 그 점이 워낙 강력하고 두꺼워서 마치 하나의 면처럼 보였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말입니다.
구글은 앞선 두 차례의 오구대전과 다르게 접근했습니다. 무리하게 OpenAI와의 기술 경쟁을 무리하게 시도하지 않았고, 대신 자신들이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구글이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워낙 많다 보니 이것들이 모여 하나의 선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구글은 이번 I/O 2024 행사에서 전 세계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검색 분야부터 이메일, 클라우드, 모바일을 아우르는 구글 플랫폼에 AI 기술을 접목해 유기적인 비서 역할을 제공하겠다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특히 구글 제품 사용자가 20억 명에 이른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모두가 언제 어디서나 제미나이를 활용해 제품을 사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는데요.
대표적으로, 구글 포토에서는 "딸 루시아가 언제 수영을 배웠지?"라는 질문에 관련된 사진을 모아주거나, 신발 반품을 요청하면 받은 편지함에서 영수증을 검색하고, 주문번호를 찾아서 반품 양식까지 대신 작성해 줍니다. 또한, 온디바이스 모델을 안드로이드에 통합해 스마트폰에서 멀티모달 기능을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입니다.
이외에도 워크스페이스에는 제미나이 1.5 프로 버전이 적용되며, 구글 검색에서도 더 이상 키워드 기반의 검색이 아닌 자연어 기반의 질문을 통해 원하는 답변을 보다 빠르게 받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마치 "네가 상상한 모든 것에 AI가 들어가 있어"라고 외치는 것 같은데요. 그도 그럴 것이 약 1시간 50분 동안 진행된 발표에서 'AI'라는 단어를 121차례 언급했다고 하니 말 다한 것 같습니다. (1분에 1회꼴이네요)
이처럼 구글은 하나의 '점'에 집중하기보다는 자신들이 보유한 모든 것들에 AI를 포석시키며 '선'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로 인해 사용량 측면에서 월등히 앞설 수 있는 기회를 잡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오구대전의 승자는 구글의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다만, 압도적인 승리라기보다는 59:41(오구 라임을 맞추기 위한 무리수) 정도의 근사한 차이로 우세했다고 보여집니다.
그 이유는 먼저, 이번 대전에서 구글은 실수하지 않았습니다. 서두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이전 오구대전의 승리가 모두 OpenAI로 돌아간 데에는 구글이 자멸한 영향이 크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최소한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으며 동등한 위치에서 판정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특히 최근 구글의 업데이트 발표에서 다소 조급해 보인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이번 발표에서는 약간의 여유마저 느껴지며 평소 우리가 알던 구글이 돌아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한, 최근 시대적 흐름을 잘 판단한 것도 형세에 유리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최근 AI 경쟁은 더 이상 누가 더 성능이 좋은가를 넘어 누가 더 사용성이 좋은가를 판단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약간의 성능 차이보다는 월등히 우세한 사용성이 더욱 중요하다는 의미인데요. 이 점에서 거대 플랫폼 생태계를 보유한 구글이 자신들의 장점을 잘 활용하면서 좋은 반격을 했다고 판단됩니다.
OpenAI가 기습적인 선공을 선택한 것도 이러한 형세를 어느 정도 인지한 상황에서 결정된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자신들의 완벽한 우위가 예상됐다면, 무리하게 선공을 하기보다는 구글의 선공을 여유롭게 지켜보다가 완벽한 한방의 후공을 선택해 확연한 차이를 대비시켜 보여주는 게 효과적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러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여 그나마도 효과적인 공격을 하기 위해 기습 선공을 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제 다음 오구대전 경쟁의 승자는 누가 먼저 점이나 선이 아닌 면에 도달하는지에 달렸습니다. 강력한 면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술력은 기본이며 사용성에 있어서도 완벽한 모습을 갖춰야 하는데요. 누가 먼저 면에 도달할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오구대전의 결과와는 별개로 이들은 서로에게 동기부여가 되며 빠르게 혁신을 이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앞으로도 건강한 경쟁 관계가 이어져 소비자에게 긍정적인 효과로 전달되길 바라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 이번 글에서는 OpenAI와 구글이 제시하는 성능에 대해서는 자세히 서술하지는 않았는데요. 이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OpenAI /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