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간의 세계여행을 마치고 입국한 것이 작년 7월. 국내에 집이 없는 우리로서는 살아야 할 곳을 찾는 것이 당면 과제였다. 그렇게 시작된 국내 한 달 살이. 서산, 진주, 동탄을 베이스캠프 삼고 세종, 일산 등 여러 지역을 발품 팔았다. 고심 끝에 선택한 곳은 동탄호수공원 전성기의 (1년에 몇 개월 되지 않을) 매력에 빠져 결국 근처로 집을 구했다.
집을 구하자마자 숨 돌릴 틈 없이 바로 또 주변을 물색했다. 우리 인생의 목표인 '공간'을 위한 상가를 찾기 위해서다. 예산이 넉넉하지 않았고, 수익성을 기대할 수 없는 업종(이라 예상했고, 그 예상은 정확했다)이라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그러다 이번에는 직주근접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집에서 보이는 상가로 계약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의 예산은 넉넉하지 않았다. 인테리어 업체를 부르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그렇게 시작한 셀프 인테리어는 퍽 쉽지 않았다. 시작은 벽돌 바닥에 장판 깔기. 다른 건 몰라도 장판은 꼭 깔아야 한다며 고집을 부렸는데, 장장 10시간에 걸쳐 바닥 작업을 하고 다음날 몸져누웠다. 바닥 작업은 시작에 불과했다. 끊임없이 들어오는 가구들을 조립하고, 배치를 바꿔보고, 사다리에 올라가 조명을 설치하고, 커튼을 달고.. 돈도 없으면서 욕심은 왜 이렇게 많은지 한 달 동안 참 바빴다.
그 와중에도 뉴스레터는 매주 발행됐다. 틈틈이 소재를 찾고, 글을 작성했다. 1주년을 맞아 개편한 뉴스레터는 스스로에게 더 많은 일거리를 주었다. 눈 감았다 뜨면 발행일이 다가와 늘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그 노력을 알아줬을까. 다양한 제안들이 제법 들어왔다.
하루는 뉴스레터 발행인으로 광고주와 미팅을, 또 하루는 작가로서 출판사와 계약을, 또 하루는 개인사업자 대표로서 공단에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주었다. '책임'이란 이름으로 통일됐던 직함은 이제 만나는 사람마다 바뀌어갔다.
링크드인의 시작은 이런 변화의 기폭제가 됐다. 처음엔 그저 서점과 뉴스레터를 홍보할 목적이었는데, 이 상반된 두 가지를 함께 한다는 점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모양이다. 스스로 '약간'은 평범하지 않은 삶이라 생각하긴 했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꽤' 흥미로운 모습으로 비쳤나 보다. 나의 이야기를 자신들의 플랫폼에 소개하고 싶다는 분들이 생겼고, 어느새 나는 뉴스레터 전문가로서 클럽의 리더가 되고, 갓생러를 살고 있는 연사가 되었다.
이 모든 일들이 불과 9개월 만에 벌어졌다.
어릴 때 키가 한 번에 많이 크면 성장통을 경험한다고 하는데, 불행히도 나는 겪어보지 못했다... 흠... 여튼.. 그 뒤로 내 인생에 있어서 성장통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난데없이 서른 중반에 찾아왔다.
서점 오픈과 뉴스레터 성장, 다양한 역할로의 확장까지. 빠르게 불어난 이 모든 일들이 감사하면서도 꽤나 버티기 힘든 고통을 수반했다. 때로는 하루가 더 길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기도 한다. 뉴스레터 마감에 쫓겨 새벽까지 편집하고, 다음 날 아침에는 또 다른 마감을 위해 전력 질주하다가 멈추고 미팅을 준비한다. 좀 한가해졌나 싶어 책 집필을 시작하면 그새 또 다른 마감이 압박해 온다.
동시에 평범한 삶도 살아내야 한다. 밥을 하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세계 여행을 시작하며 사라졌던 두통이 다시금 찾아와 동거를 제안한다.
다행인 것은 지금 찾아온 고통이 분명 '성장통'이라는 것이다. 이 고통 끝에 반드시 성장이 있을 거란 믿음이 있기에 마음을 다 잡을 수 있다. 이 고통이 온전히 나의 성장에 밑거름이 된다 생각하면 그래도 꽤 버틸만하다. 이 고통이 회사의 성장으로 이어졌을 것이라 생각하면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모든 것이 처음이라 아직 서툴고, 경제적으로 시간 활용하는 것도 어렵고, 의미 없이 지나 버린 시간을 보며 마음 아파하기도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익숙해지면 어느새 성장해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 믿으며 오늘도 스스로를 달래 본다.
PS1.
글쓰기는 역시 참 좋다. 스르륵 생각을 정리하니 머리가 한결 개운해졌다.
원래는 책 집필 시간이었는데, 다행히 아깝지 않은 시간이 되었다.
내일은 후회할지 몰라도.
PS2.
'퇴사하고 여행하는 진부한 이야기' 매거진을 한동안 작성하지 못했다.
이미 여행하는 이야기가 끝난 지 오래됐기 때문.
이 글로서 마지막을 장식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