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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음꽃 Oct 29. 2020

할머니, 천국 가고 싶어요?

늙는다는 게 무서울 때가 있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죽게 될까를 생각하면 좋지 않은 상황만이 떠올라 몸서리쳐진다. 할머니는 늙어서 아프면 자식들이 고생한다며 틈틈이 운동을 했고 공부를 했다. 어린 내가 보았던 할머니는 열정적이고 대단한 사람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배우고 운동하는 걸 즐기는 분이셨으니까.


평범하고 무료하게 지나가고 있던 주말이었다. 한 통의 전화로 모든 게 바뀌었던 저녁 식사 자리를 기억한다. TV는 웃고 떠드는 소리로 요란하게 틀어져 있었고 갑자기 전화가 왔다. 할머니가 집에 안 들어오셨다고 말이다. 하루하루가 멍하게 지나갔고 며칠 후 할머니는 치매 판정을 받게 되었다. 운동도 열심히 다니고 매일 배우러 다니시는데 치매라고?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걸까.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죽는 거지만 설마 할머니가 치매 판정을 받으시게 될 줄은 몰랐다. 어떻게 살아도 병 앞에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그렇게 열심히 사셨어도. 지나고 보니 죽음에 다가가는 길은 그런 거였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어떤 사람은 고통 속에 죽는다. 온갖 행패를 부리며 살아도, 한량처럼 살아도 어떤 사람은 편하게 간다. 마지막에 어떻게 죽느냐는 열심히 사 안 사냐에 달려있는 게 아니었다.


처음에는 집에 요양사가 왔지만 자주 바뀌었다. 한 명은 돈을 훔쳤고 어떤 사람은 냉장고에 있는 음식을 자기 거인 양 먹었다. 요양사는 치매도 아닌 할아버지 탓을 했다. 어떤 요양사는 TV만 보다 갔다. 여러 번 바뀌는 와중에 괜찮다 싶었던 건 단 한 명이었다. 할머니는 거동을 하지 못하게 되셨고 결국 점점 말하는 법을 잊어버리셨다. 제일 말이 많으신 분이었는데도 말소리가 없어지니 집은 조용해졌다. 할머니가 치매 판정을 받자, 그 많던 할머니의 친구들이 다 사라졌다.


수소문해서 요양원에 모셨지만 한 번을 옮겼다. 시설은 참 깨끗하고 좋았지만 수면제로 재웠다. 그다음 수소문한 요양원은 원장이 별로였다. 아무리 노인들을 위한 시설이 돈이 된다지만 말이다.



할머니, 왜 이렇게 말이 없어.
할머니, 천국 가고 싶어요? 천국 가고 싶어? 안 가고 싶어? 가고 싶어?
안 가고 싶으면 말 좀 해봐. 말 안 하면 천국 보낸다.



우리가 요양원에 방문하자 원장은 할머니가 있는 방으로 같이 와서는 할머니에게 천국에 가고 싶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옆 침대에 있던 막말하는 할머니가 "저 할머니는 말을 못 해."라며 거들었다. 할머니는 말을 거의 잊은 후여서 말못 하셨다. 할머니는 천국에 가고 싶냐는 원장의 말에 고개를 저으셨다. 말이 천국이지 "할머니, 죽고 싶어요?" 나 다름없는 말 아닌가. 나는 화를 내면 우는 버릇이 있어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냈고 엄마는 역시 안 좋은 일이 있어도 아무 말도 못 하는 성격이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날의 일이 후회가 많이 된다. 나는 왜 그랬을까. 그때 다 엎어버리고 원장의 머리채를 잡았어야 했는데. 하지만 엄마는 할머니가 거기 있어서 우리가 기분 나쁜 티를 내면 할머니가 어떤 일을 겪게 될지 모른다고 했다. 어차피 기억을 못 하시니 우리는 평생 모르겠지만. 복지시설은 많지만 제대로 된 곳을 찾기란 어렵다. 다시 수소문하는 일도 몇 개월은 걸리니 할머니는 인질이나 다름없었다.


나중에 원장이 전화로 사과한다는 등의 말을 했지만 사과보다는 자기변명이 더 많았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요양원을 다시 바꾸면서 원장은 자기가 한 말을 기억하지 못했다. 가해자들은 다 그런 식이다.


나는 늙는 게 두렵다. 열심히 살았고 똑똑했던 할머니도 병 앞에 남들에게 저런 말을 듣는 사람이 되었는데 나라고 그런 일이 없을 거라는 보장이 있을까. 아무리 열심히 수소문을 해서 가도 저런 곳을 가게 되었다. 그 후 한 번 더 요양원을 옮기게 되었지만 옮기면서 느낀 건 괜찮은 곳은 없다는 것. 무섭다. 늙어 아프게 된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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