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준의 마음을 내려놓기까지
나는 어릴 때부터 주는 걸 좋아했다.
어떤 사람은 받는 게 제일 좋다고 하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주는 걸 더 편하게 느꼈다.
이유는 단순했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선물은 마음을 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말을 길게 하지 않아도 되고,
감정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됐다.
선물을 건네면 대부분의 관계는 잠시라도 부드러워졌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자주 이 방법을 선택했다.
그 선택이 마음을 지켜주는 작은 방패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강릉에 오면 꼭 들르는 소품샵이 있다.
이번에도 근처에 갈 일이 있어 자연스럽게 그곳에 들렀다.
작고 아담한 매장은 마치 보물창고 같았다.
구경을 하다 이것저것 담고 계산하려던 순간,
헬로키티 그림이 그려진 다이어리가 반짝이는 별처럼 내 눈에 들어왔다.
귀여운 걸 좋아해서 바로 샘플을 펼쳐 보았다.
속지를 보지 않아도 샀을 물건이었지만,
직접 볼 수 있어서 더 좋았고 결국 카드를 긁었다.
쇼핑백을 들고 나서려다 괜히 한 번 더 매장을 둘러봤다.
혹시 더 살 걸, 누군가에게 주는 걸 생각하면서.
그러다 문득 멈췄다.
이번엔 아무도 떠오르지 않았다.
카페로 돌아가는 길,
쇼핑백이 유난히 가볍게 느껴졌다.
괜히 잘못 산 건 없는지,
왜 아무도 생각나지 않았는지
혼자 이유를 붙이며 걸었다.
예전이라면 달랐을 것이다.
충동구매도 많았고,
여행을 가면 습관처럼 선물을 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습관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가게를 나온 나는 매대에 있던 물건들이 뒤늦게 생각났고, 그제야 친구들 얼굴이 떠올랐다.
머릿속에서는 영화의 빠른 장면처럼
수많은 표정과 반응이 스쳐 지나갔다.
‘00 이가 좋아할 텐데…’
‘하나 더 살 걸 그랬나.’
‘아, 이건 00이가 분명 좋아하겠다.’
짧은 시간에 수많은 생각이 오갔다.
‘올해는 그만하자, 제발.’
‘내가 주는 걸 과연 잘하고 있는 걸까?’
그 생각 끝에 나는 늘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는 걸 떠올렸다.
그 마음은 오래도록 나를 붙잡고 있었다.
처음엔 아주 사소한 물음이었다.
‘저걸 주면 좋아할까?’
좋아하는 걸 주고 싶었고, 상대가 좋아하는 걸 사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여행지에서
“너 생각나서 샀어”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시간적 여유가 생기고, 여행을 다니게 되면서
세상의 모든 것이 새롭고 빛나 보였다.
좋은 걸 보면 사람들 얼굴이 떠올랐고,
자연스럽게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솟았다.
세상 모두에게 친절하고 착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었다.
단순히 주는 마음으로.
하지만 하나둘 사다 보니 챙겨줄 수 있는 사람은 한정적이었고, 마음 한편엔 답답함이 쌓였다.
그냥 좋아서 산 선물이었지만, 막상 선물을 받는 사람의 표정이 항상 기쁘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받는 것이 부담스러운 사람도 있다는 걸.
나는 친절과 진심을 건넨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결국 내 기준의 친절이었다.
그 이후로 좋은 마음과 오지랖의 경계에서 자주 스스로를 의심했다.
불편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품샵에 아예 가지 않거나 먹을 것만 사보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방법도 나를 완전히 편하게 하지는 못했다.
그러다 아주 짧은 대화 하나 속에서 의외로 간단한 답을 찾게 됐다.
인정하는 것.
나를, 내 마음을 인정하는 것.
주는 마음이 잘못된 게 아니라, 그런 내가 나에게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그냥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부정하고 돌아서기만 했을 때보다 직면하고 나니 한결 편해졌다.
습관처럼 하던 소비도 자연스럽게 줄었다.
아직도 여행지에서 어떤 물건을 보면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럴 땐 그냥 산다.
지나치지 않는다.
예전처럼 불편하거나 답답하지 않고, 그 사람의 반응에 쩔쩔매지도 않는다.
예전의 나는 마음이 앞섰고, 지금의 나는 그 마음을 다루는 법을 조금은 알게 됐다.
마음을 다루는 법을 배우는 건 어렵고 오래 걸리지만, 계속 들여다본 끝에
나는 이제 좋아하는 건 좋아하고, 내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