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시절, 즐기면서 할 수 있는 나만의 프로젝트를 만들고 싶었다. 소위 말하는 스펙 및 대외활동과 관계없이 혼자서도 실천 가능한 프로젝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선택한 건 카드뉴스 제작하기. 경영 사례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국내외 비즈니스 이슈, 직접 다녀온 팝업스토어 등을 주제로 카드뉴스를 제작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싶을 정도로 아쉬운 퀄리티지만 당시에는 참 재밌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강의 일정이 끝나면 학교에 남아서 노트북을 두드리다 갔다. 그렇게 하다 보니 어찌 저찌 USB [카드뉴스] 폴더에 약 80개 파일이 쌓였다.
그러던 어느 날 교내 프로그램에 참가해 취업 컨설턴트로부터 상담을 받았다. 취미 활동란에 적힌 'SNS 카드뉴스 제작'을 보고 나서 "구독자가 몇 명이예요?"라고 질문하던 그. 100명 정도라고 답하자 "인플루언서도 아닌데 왜 계속해요? 스펙으로 활용하기 어렵지 않나?"라는 비수가 돌아왔다.
애초에 그런 목표를 가지고 시작한 활동이 아니었기에 "재밌어서요"라는 반박만 남긴 채 상담실을 나왔다. (직업 특성상 다양한 분들을 봬며 조금은 견고해진 지금 멘탈이라면 컨설턴트와 한바탕 논쟁을 펼치고 나왔겠지만..)
'나는 재밌어서 하는 건데'라고 반문하며 웃어넘기려고 했지만 타격이 컸던 걸까.. 평소처럼 작업하려는데 컨설턴트의 말이 자꾸 상기됐다. 당시 마지막 학기였던 만큼 내가 취준생의 본분을 망각한 채 하고 싶은 일에만 몰두하는 건지 고민됐다. 한 사람의 공격적인 말에 흔들린 내 모습이 실망스러워 한동안 작업을 중단했다. 이전 콘텐츠에서도 밝혔지만 취업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서 딱 한 달만 셀프 자유시간을 선물한 적이 있다. 또다시 [카드뉴스] 폴더를 열람했던 때다.
오랜만에 카드뉴스 제작이란 자유시간을 즐기던 중 언론사 지식 콘텐츠팀의 채용 공고를 접했다. 단 한 번도 고려한 적 없던 '언론사'와 '지식 콘텐츠 제작'이란 키워드가 이목을 끌었고 자연스레 업으로서 콘텐츠를 제작하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했다. 도전하는 셈 치고 자기소개서를 써보려는데 이런.. 첫 문항부터 막막하다. <업무 관련 경험>이라니? 일반적으로 언론사 채용공고의 경우, 유사업계 인턴 경력자 분들이 많이 지원하신다는데 나에겐 그런 경험이 전무했다. 임시방편으로 카드뉴스 제작 여정을 서술할 수밖에 없었다. 글자 수를 채워가는데 컨설턴트에게 들었던 비수가 또다시 떠올랐다. 그래도 무사히 제출 완료.
결론부터 말하면 최종 합격했다. 입사 후 당시 팀장님과의 식사 자리에서 조심스레 여쭤봤다.
나: 혹시 저를 뽑으신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팀장님: 흠.. 누구보다 콘텐츠에 진심인 것 같았어요. 얼마나 좋아하면 혼자서 만든 걸까 싶었거든요.
나: 콘텐츠 수에 비해 팔로워가 너무 적지 않나요?(웃음)
팀장님: 그게 뭐 중요한가요? 현직자들한테 인플루언서 돼보라고 하면 못하는 건 매한가지예요. 본업이 아님에도 꾸준히 만들었단 사실이 포인트죠.
식사를 마친 후 그동안 머릿속에 맴돌았던 고민이 해소됐다. 인플루언서인지 아닌지로 꾸준함의 가치를 평가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나의 관심분야를 어필해야 하는 채용 시장에선 더 통용되는 원리가 아닐까. 관심분야에 맞춰 꾸준히 해온 활동이 있다면 진정성과 성실함을 동시에 소구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것이 정량적인 수치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기록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경력 2년 차가 된 무렵 본업에서 깨달은 점을 카드뉴스로 표현하는 <한큐에 이해하다>를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수했을 때, 예상보다 좋은 성과를 달성했을 때, 인터뷰이분들에게 영감을 얻었을 때 등 순간마다 깨달은 점이 휘발되지 않게끔 기록하려 한다. 지인들이 프로젝트의 목표를 물어볼 때 농담 삼아 "인플루언서가 꿈이에요"라고 답하지만 진짜 목적은 기록이다. 학교에 남아 무작정 카드뉴스를 만들던 그때처럼 나만의 인사이트로 귀결될 수 있는 기록을 쌓고 싶다. 이전에 경험했듯 그렇게 쌓은 흔적이 내가 이 일에 얼마나 진심인지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이자 나의 성장 발판이 될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