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도시에서의 생각
사라진 산을 바라보며
오늘도 하늘이 낮게 내려앉았다.
산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분명 그 자리에 있을 텐데, 마치 사라진 것처럼 느껴진다.
구름의 모양은 낯설고, 색은 한층 더 어둡다. 이런 날이면 설명하기 어려운 우울함이 조용히 스며든다.
다행히 비는 세차지 않다. 맞고 다닐 수 있을 만큼의 보슬비가 천천히 내려온다.
그 덕분인지 산책길에는 사람들이 보인다. 달리는 사람, 천천히 걷는 사람들.
그들의 움직임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 흐린 날도 완전히 가라앉지만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조금 느슨해진다.
이 도시는 내가 이전에 살던 곳에 비해 유난히 조용하다.
거리는 늘 한적하고, 카페와 가게 안은 그보다 더 고요하다.
어딘가 시골 도시 같은 이 풍경은 자연스레 서울에서의 삶을 떠올리게 만든다.
빠르고, 밝고, 언제나 사람으로 가득했던 거리들.
얼마 전, 이 도시가 가장 활기차 보였던 날이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맞이한 박싱데이.
가게마다 사람들이 몰려 있었고, 줄이 길게 늘어섰다.
손에는 쇼핑백이 여러 개씩 들려 있었다.
이곳에 온 이후로 가장 생기 있는 장면이었다.
우리 집 앞은 바다가 있다.
창밖을 바라보면 늘 여러 장면이 겹쳐 지나간다.
움직이지 않은 채 정박해 있는 보트들, 바다 위의 주유소,
산책하는 사람들과 달리는 이들, 그리고 관광객들.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다.
그중에서도 늘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는 보트들을 보면 괜스레 마음이 쓰인다.
1년에 몇 번이나 움직일까.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도 괜찮은 걸까.
여름의 짧은 즐거움을 위해 보트를 소유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떤 것일지, 문득 궁금해진다.
이곳에 살게 되면서 나는 집을 둘러싼 환경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이전에는 편리함이 전부였다.
지하철과의 거리, 버스 정류장, 늦은 시간에도 안전한지 같은 것들.
하지만 지금은 하나의 기준이 더 생겼다.
집에서 바라볼 수 있는 풍경이다.
물이나 나무, 산이 보이는 집에서 오래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만약 이곳에서도 자연이 보이지 않는 집에 살았다면 어땠을까.
이 조용한 도시의 생활에 적응하는 일이 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물론 처음부터 없었다면, 그 소중함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매일 바라볼 수 있기에, 더 분명해진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창밖을 바라볼 여유조차 없었다.
도심 한가운데서 건물과 도로만 보며 살았기에, 풍경에 의미를 둘 틈이 없었다.
지금은 다르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창밖을 바라보고,
변화하는 풍경 앞에서 조용히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그 순간들이 하루를 시작하게 만든다.
비는 너무 오래 내렸고, 하늘은 오래도록 흐렸다.
이제는 이쯤에서 해가 나와줘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행히 일기예보는 내일부터 며칠간 맑은 날이 이어질 거라고 말한다.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