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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아리콩 Dec 31. 2020

우리는 그곳에서 만난다

<디디의 우산>

<디디의 우산>은 중편소설 <d>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로 이루어진 황정은 작가의 연작 소설이다. 이 책에는 2014년 4월, 진도 앞바다에서 배가 가라앉은 날 이후의 d와 ‘나’의 삶이 있다.


d는 다시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느꼈던 진공을 생각하고, 문득 흐름이 사라진 그 공간과 그 너머, 거기 머물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들과 d에게는 같은 것이 거의 없었다. 다른 장소, 다른 삶, 다른 죽음을 겪은 사람들. 그들은 애인(愛人)을 잃었고 나도 애인을 잃었다. 그들이 싸우고 있다는 것을 d는 생각했다. 그 사람들은 무엇에 저항하고 있나. 하찮음에 하찮음에. 

<디디의 우산> 中


d는 사랑하는 애인 dd를 잃으면서 동시에 삶의 의미를 잃었다. d는 dd를 상실한 후 죽은 듯 살아가지만, 세운상가에서 물류 일을 하면서 다시 세상에 조금씩 녹아든다. 세월호가 가라앉은 지 1년이 지난 2015년, d는 광화문에서 집회에 참여하는 인파를 보며 사랑하는 이를 잃은 그들에게 모종의 동질감을 느낀다. 첫 번째 중편 <d>는 그 날, “세월호를 인양하라”는 구호가 울려 퍼지는 광화문 광장에서 막을 내린다.


그날 정오를 넘겨서야 전원구조 보도가 오보이며 침몰한 배에 탑승객들이 남아 있었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 이미 뒤집힌 그 배의 바닥을 우리가 바라보며 말을 잃고 있을 때. 그때에 우리는 저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거나 우리는 그들이 아니라거나 하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고. 그 배가 침몰하는 내내 목격자이며 방관자로서 그 배에 들러붙어 있을 수밖에 없었어.

<디디의 우산> 中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의 주인공인 ‘나’는 애인 서수경과 살고 있는 여성이다. ‘나’와 서수경은 1990년대에 학생운동을 하던 이들이다. ‘나’는 민주화 열풍이 뜨겁던 90년대 학생운동에 참여했다 갖은 여성혐오와 차별에 환멸을 느끼고, 이후 ‘자기 앞마당이나 쓰는’ 사람으로 살아간다. 그러던 ‘나’는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어른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촛불집회에 참석하게 된다.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는 2017년 이정미 헌법재판관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판결문을 읽는 장면에서 끝난다.


혁명이 시작되고 끝나는 곳에 그들이 있었기에 d와 ‘나’의 이야기는 이어진다. 배가 가라앉은 지 1년이 지난 광화문 광장에서, d는 “세월호를 인양하라”는 구호를 듣고, 다시 2년이 지난 광장에서 ‘나’는 촛불을 들고 “시행령을 폐기하라, 세월호를 인양하라, 박근혜는 물러나라”는 구호를 외친다. 등장인물 하나 겹치지 않는 두 소설이 이어지는 것은 2014년 4월 16일 이후 이어진 ‘어른의 책임감’에 대한 고민 때문이라고, 황정은 작가는 인터뷰에서 말하기도 했다.


<디디의 우산>이 특별한 것은, 2014년 이후 광장에서의 기억을 가진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내었기 때문이다. 내 삶 역시 2014년 4월의 기억과, 그 이후 기억들이 얼룩져 있다. 책을 읽으며 d와 ‘나’가 어디선가 숨 쉬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 그들과 나 역시 광장에서의 기억으로 이어져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눈물지었다.


내 대학 시절의 시작을 지독한 고열로 기억한다. 16학번으로 입학한 나는 2주기를 맞는 세월호 추모 문화제에 참여했고 세차게 내리는 비를 홀딱 맞았다. 열이 펄펄 나고 움직이기조차 힘든 독한 감기에 걸려 일주일을 앓았다.


동거차도 절벽에 새겨진 이름 / Photo by 최지은


그 해 여름, 동거차도 절벽에 깊게 새겨진 이름을 보았다. 배는 아직도 올라오질 못하고, 원망스럽게 잔잔한 바다를 가까이서 보고자 절벽에 다가서던 내 모습에, 한 아버님이 나에게 버럭 소리치셨다. 위험하다고, 바다에 빠지면 어떡하느냐고. 그 절벽에 새겨진 이름이 바다에 있던 아이들의 이름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내가 혹여 돌부리에 걸릴까 걱정했던 아버님이 눈물로 새긴 이름일 터였다.


영석 어머님을 몇 번 뵈었다. 광화문에 있던, 좁고 차가운 컨테이너 안에서 한 번. 학교 측이 장소를 내어주지 않아 추운 날 성신여대 정문 앞에서 열렸던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에서 한 번. 박근혜가 탄핵되기 직전 광화문 집회에서 한 번. 이따금씩 열리던 세월호 관련 집회에서 여러 번. 영석 어머님의 얼굴을 볼 때마다 눈물이 차올라 어머님과 제대로 대화해 본 적은 없다. 그저, 잊지 않겠다는, 항상 기억하고 슬퍼하고 함께하겠다는 내 말에 고마워 딸, 하며 안아주시던 그 모습이 가슴에 박힌 듯 잊히지가 않는다.


추웠던 17년 겨울 광장에는 사람이 가득했다. 100만 명의 힘차고도 어수선한 파도타기는 광화문 광장을 따라 서대문, 동대문, 대구, 광주까지 이어졌다. 차량이 전면 통제된 서대문 거리에서는 밤새 사람들이 춤을 추었다. 노란 배를 이고 있는 고래 풍선이 떠다니고, 사람들은 노래했고 어떤 이들은 부부젤라를 불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세월호를 인양하라, 박근혜는 하야하라.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은 서로 딱 세 마디를 외치며 웃고 떠들고 춤을 추었다. 발언대에서, 도로변에서, 광화문에서, 서대문에서.


나는 d와, ‘나’와 서수경이 함께 촛불을 들고 거리를 거닐었을 것만 같다. 이름도 모르고 안면도 없는 많은 이들이, 광화문 한복판 거리에서 서로 소리를 치고 노랠 부르고, 어깨동무를 하고 춤을 추었듯.


<디디의 우산>은 단조롭고 무거운 삶의 조각 속에서 연대하는 평범한 모든 이의 이야기다. 제각각 삶의 무게를 지고 있음에도 우리는 서로의 상처에 아파하고, 미안해하고, 운다. 그러는 한 우리는 그곳에서 만난다. 그곳에서 만나 잘 굴러가지도 않는 세상을 바꾸려고, 한데 모여 소리친다. 바위산 같은 세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하는 곳, 평범한 이들이 연대하는 곳. 우리는 어쩌면 그곳에서 만난다.


배가 가라앉은 지 육 년째, 그리고 곧 봄이 올 것이다. 다음 주면 나는 다시 광장을 찾을 것이다. 잊지 않겠다는 말은 잊을 수 있는 이들만이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일은 기억의 조각을 잃지 않는 것이다. 돌아오는 봄에도 그 조각을 간직하는, 많은 이들을 만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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