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역사] 나라를 훔치고 나니 모든 게 쉬웠다!
전두환
1980년 9월 1일 전두환이 제11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국가기록원
1980년 9월 1일 잠실 실내체육관
쿠데타의 피날레를 알리는 신군부 공식 데뷔무대
지난 겨울 그들의 더러운, 더운 입김 고스란하다.
1979년 12월 12일 49세의 대머리 투스타가
국가권력을 훔친 지 8개월 20일만에
오늘 이 곳에서 대통령에 오른다.
치켜든 오른손, 빈 손바닥에 흥건한 뻘건 피
그 해 5월 계엄군 군홧발에 짓이겨진
광주시민의 피쯤이야, 어깨띠에 쓱쓱 문질러 닦고서
꾹 다문 입, 그래도 새어나오는 허연 입김
작년 겨울 경복궁 30경비단에 모여 권력의 구린내 섞인
서로의 입김 나눠 마시던 하나회 동지들 얼굴 스쳐 지나간다.
육사 시절 “운동이면 못하는 것이 없고, 축구부 주장”이었다던 그.(조선일보 80. 8. 23.)
닷새 전 장충체육관에서 선출되고 오늘은 잠실체육관에서 취임한다.
대통령 선출방식은 유신헌법에 기반한 대의원 간접선거
박정희는 전두환의 탯줄이었다.
단독출마에 2,525명 투표, 기권 1명, 찬성률 99.99%
김일성은 전두환의 롤모델이었다.
그런, 그가 대통령 선서를 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민족 문화의 발전 및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에...
헌정을 멈춰 세운 대통령의 선서다.
그런, 그가 대통령 취임사를 한다.
민주주의는 인류보편의 가치입니다
이 나라는 우리 모두가 피로써 지켰고 땀흘려 이룩한 국민의 것...
광주시민의 피 위에 선 대통령의 취임사다.
뱉어놓고 보니 그럴싸 하다.
어쩌면 누군가 믿어줄 것도 같다.
스스로가 대견하여 가슴 뻐근해진다.
당시 동양 최대 규모의 잠실실내체육관
빈 자리없이 꽉 들어찬 9천명의 참석자
오늘의 마지막 순서는 대통령 찬가
자유와 평화의 복지낙원을 이루려는 높은 뜻을 펴게 하소서
아아, 대한 대한 우리 대통령 길이 빛나리라
길이 길이 빛나리라...
마리아 칼라스의 수제자라는 여성 소프라노의 절창이 울려퍼진다.
아아아, 나는 길이 빛나리라, 나는 빛나리라
벅찬 가슴 안고 혼자 조용히 중얼거려본다.
나라를 훔치고 나니, 이렇게 쉬운걸...
나라를 훔치고 나니, 헌정 중단은 우스웠다.
80년 5월 17일 밤, 외부전화를 끊고 무장군인을 배치한 중앙청에서
공포에 질린 국무위원들이 8분만에 비상계엄 확대를 통과시켰다.
전국으로 확대된 비상계엄령에 따라 정치 활동이 중단됐다.
그 날 밤, 서울역에서 10만명의 시위 학생을 돌려세운
전국학생회장단이 이화여대에서 전원체포됐다.
김대중은 끌려가고, 김영삼ㆍ김종필은 집에 갇혔다.
언론은 수배자 명단 800명의 죄목을 경쟁하듯 쏟아냈다.
국회의사당은 군인들이 점령, 봉쇄했다.
서울의 봄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나라를 훔치고 나니, 권력은 알아서 머리를 조아렸다.
대한민국은 전두환의 장물(贓物)로 전락했고,
대통령 권한대행 최규하는 장물아비,
계엄사령관 이희성은 바지사장이었다.
나라를 훔치고나니, 시민 학살도 두렵지 않았다.
80년 5월 18일 새벽, 눈엣가시였던 광주! 광주를 향해 내달렸다.
총으로 나라를 훔친 신군부, 도둑질에 저항하는 시민에게 총구를 돌렸다.
애국가를 부르는 시민들에게 총을, 쏘 았 다.
나라를 훔치고나니, 별을 따는 건 쌈치기 수준
80년 2월 25일 중장 진급, 8월 5일 대장 진급
다시 8월 22일 대장 전역, 8월 27일엔 대통령 선출
그렇게 입에 단내나게 뛰었다. 오늘을 위하여!
정말 기대되는 시간은 오늘 저녁 경복궁 축하연
경복궁이 어딘가, 동지들과 목숨걸고 오늘의 영광을 도모했던 곳
대통령이 되어 다시 찾으니 완벽한 수미쌍관이다.
그래서, 그렇게
79년 12월 12일 밤 경복궁 작전암호 ‘생일집 잔치’부터
80년 9월 1일 저녁 경복궁 실황중계 ‘대통령 잔치’까지
대머리 사내의 대한민국 탈취극은 265일 간의 롱테이크 한 컷으로 완성됐다.
임시공휴일 TV 생중계를 텅 빈 눈빛으로 지켜보는 국민들,
새 시대의 기수라며 환호하던 언론들,(동아일보 80. 8. 28.)
이 때까지만 해도 몰랐던 거다.
이 날부터 퇴임까지 2733일 동안
언론의 펜과 마이크에 총구를 들이밀 줄을,
그래서 매일 밤 9시면 대머리 사내와 그 부인의 안부를 듣게 될 줄을,
그 둘 뿐 아니라 기환, 경환, 우환 환자 돌림 형제와 처남까지,
그 이름들 들을 때마다 환장을 하게 될 줄,
그래서 공화국 이름을 딴 희대의 비리청문회가 열리게 될 줄을,
결국에 받은 추징금 2205억원 중 1325억원을 미납하는데
수중에 가진 돈은 29만원이 전부라면서
드넓은 골프장에서 호쾌한 스윙을 날리고
쿠데타 40주년을 추억하면서 똘마니들과
1인당 20만원짜리 코스요리를 즐기며 낮술에 비틀대다가
호의호식 천수를 누린 끝에 가는 꼴을 보게 될 줄을,
이 날 1980년 9월 1일에는 미처 몰랐던 거다. 그리고,
또다른 그가 등장했다.
5.18, 12.12만 빼면 정치는 전두환이 잘했다던
그 사람.
언론 장악, 검찰 독재, 일가 비리, 인권 탄압까지
잘했다던 그 정치, 쏙 빼닮게 하는 사람.
전두환의 페르소나 윤석열의 권력패악질이 한창인
24년 전 그 날이자 오늘인 대한민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