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역사] 조선 바퀴벌레 생존기

1948년 9월 22일 반민법 공포

by 들무새

원자폭탄이 터졌는데도 살아남은

바퀴벌레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는가.


1945년 8월 6일 아침 8시 15분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

20km 안팎에 덮친 핵폭풍의 누적 피폭량이 1,200라드(Rad)였고

사람은 2~3주 동안 400~1,000라드의 피폭량에 사망할 수 있는데

바퀴벌레는 최대 10,000라드에서 35일간 살 수 있다고 한다.


끓는 물에 넣어도 30초를 버티고

체내 수분 70%를 잃어도 살아남으며

알을 가진 어미가 병균으로 죽으면

그 새끼는 병균에 대한 면역력을 갖고 태어난다는

이 괴물같은 벌레들


그 중 살아남은 몇몇이 서울 중앙청

국기봉 아래 모였다고 한다.


해방이 되었다지, 이제 우린 끝난 건가

원폭도 견뎠잖나, 아니 그냥 밟혀 죽을 수도 있잖아

가만,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좀 들어보자고


1945년 8월 15일 낮 12시

일왕 히로히토의 항복선언

그러나 라디오 방송이 끝난 뒤에도

중앙청 일장기는 그대로 나부꼈다.


1945년 9월 9일 오후 4시 30분

하지 중장의 24군단이 일장기를 끌어내리고

같은 국기봉에 성조기만 바꿔 올릴 때까지

꼬박 25일 동안,


바퀴벌레들은 새로운 깃발의 주인이 누가될지

더듬이 바짝 세운 채 두리번 거렸을 테고.


국민적 지지를 받던 건국준비위원회가

좌익 중심의 인민위원회로 재편되자


이를 마뜩찮게 여겼던 미군정은

친일 관료, 식민 경찰, 일제 군인 등등

더듬대다 더듬이 부러질 뻔한 바퀴벌레들을

군정청에 고용했고,


1945년 10월 16일 귀국한 이승만도

先 정부수립, 後 친일파 숙청을 주장하며

미군정과 우익의 손을 잡았으니


그래, 이 곳이다! 우리의 새로운 숙주(宿主)

이승만 만세! 맥아더 만세!

빨갱이 척결! 반공세상 뽜이팅!

완장 바꿔 찬 바퀴벌레들은 환호성을 질렀을 테지.


통계에 따르면 미군정 2년차인 1946년

경찰 간부(경위 이상)의 82%가 일제경찰 출신이었다.*


36년간 고키부리(ごきぶり)**로 살아온 이들

이제 미국물 먹은 코크로치(cockroach)가 됐다.


원자폭탄으로 다른 생물이 유전자 변형을 겪을 때

방사능에 대한 면역을 갖게 되고

오히려 번식력이 더 강해진다는

이 괴물같은 벌레들


이제 수사하고, 구속하고, 법정에 세워도

죽지 않는 바퀴벌레로 유전자를 변형,

아니 세상의 판도를 바꿔나갔다.




76년 전 오늘, 1948년 9월 22일

이승만 정부가 반민족행위처벌법(반민법)을 공포했다.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꾸려지고

친일파 척결에 나섰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데

미군정 3년 동안 새 세상의 주역이 된 이들


이승만이라는 외골격으로 단단해지고

친미 반공의 지방층으로 두툼해진

미국 바퀴벌레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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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민법 공포를 보도한 1948년 9월 24일자 경향신문. 이승만 대통령은 9월 23일 담화문을 발표하면서

"정부 안정 후에 반민족 행위자를 처벌하자"고 밝혔다. 이 날을 시작으로 이 대통령은 반민특위 해체까지 모두 5번의 담화를 발표했는데 모두 민심분열의 위험이 있다거나,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라거나 지금은

치안이 우선이라는 식이었다.


반민특위의 실질적인 활동기간은 5개월


사무실을 꾸린 1949년 1월 5일부터

이승만의 지시를 받은 경찰이

사무실을 습격한 1949년 6월 6일까지였다.


그리고 75년 전 오늘, 1949년 9월 22일

국회에서 반민법 폐지법안이 가결됐다.


이 5개월 동안 반민특위가

688명을 조사하고

293명을 재판에 회부했는데

재판이 종결된 것은 38명 뿐.


그 중 8명은 무죄 또는 형 면제

18명은 공민권 정지,

실형을 받은 것은 12명에 불과한데

그나마도 7명은 형집행정지, 5명은 집행유예였다.


4년 남짓 독일 지배를 받은 프랑스는

나치독일 부역자 200만명을 조사하고

35만명이을 재판에 회부하고,

유죄판결 9만7천명,

사형선고를 내린 이가 1,558명이었으니.


그래서 75년 전 오늘의 역사는

해방 이후 지상과제였던 반민족 행위자 척결

그 첫 단추를 꿰지 못하고 바퀴벌레들에게

세상을 내어주고 만 한국 사회 비극의 시작이고


다시 말하면 고키부리에서 코크로치로,

완장을 바꿔차며 연명해 온 조선 바퀴벌레의

본격적인 생존의 시작이다.



형광등을 켰는데도 도망가지 않는

바퀴벌레를 본 적이 있는가.


대학시절 내 방에 살던 미국산 바퀴벌레들

걸을 때 방바닥 긁는 소리가 날 만큼 몸집이 컸다.


어떤 날은 갑자기 형광등을 켜면

바스락대던 소리 뚝 그친 자리에

시커멓고 단단한 갑옷 입은 녀석이

손가락보다 긴 더듬이를 살랑거리며

방 한가운데 우뚝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을 때도 있었다.


벌레가 벌레를 반성하지 않고

반역이 반역을 반성하지 않듯


해충으로서의 근본을 잊고,

과오에 대한 반성을 포기한 채로

공간을 점령하고 권세를 획득한

저 당당한 포즈를 보며


나는 저것들이 수 십년 전 중앙청 국기봉 아래서 속닥이던 것들

그 새끼들의 새끼들, 또 그 새끼들의 새끼들로 내려와

지금 내 방 한 가운데 서서 나를 노려보고 서 있기까지

반성의 면역력과 죄악의 번식력이 대체 얼마나 강해진 것인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워 머릿 속이 아득해지는데


역시나, 나는 그 이후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하는 30여년 동안

그것들이 죽을 때 알을 뿜어내듯 세상 곳곳에 뿌려놓은

기회주의, 권위주의, 약육강식 따위의 병균들과 함께

때론 싸우다가, 대개는 밥벌이를 위해

애써 어우러져 살려고 노력했다.


감히 대적하지 못할 직장 상사의 부패에는 조력자가 되고

만만해 보이는 동료는 뒷담화로 따돌리면서

나는 MZ, 운운하는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방바닥을 긁어대던 그것들의 발자국 소리가 떠올랐고


술은 여자가 따라야 제 맛이라는 회식 자리 부장님이

젊어서는 넥타이 매고 아스팔트에서 독재타도를 외쳤다며

나는 민주화 세대, 운운하는 불콰해진 면상을 대할 때면

식탁 밑으로 스윽 지나가는 그것들의 검은 그림자를 보았으며


밖에서는 살아남아 보겠다고 위, 아래로 치이다가

집에 와서는 그렇게 해서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고

어린 딸을 다그치고 분에 못 이겨 회초리를 들이대는

세상 졸렬한 얼굴이 스스로도 화끈거려 세면대 앞에 서면

거기 거울 속에 바퀴벌레를 닮은 내가

나를 가만히 쳐다보고 서 있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이 모든 슬프고 잔혹한 풍경이

76년 전 오늘, 청산을 시작하다가

75년 전 오늘, 막을 내리고 말았다.



*함께 보는 한국 근현대사(서해문집, 역사학연구소 지음, p.278)

**고키부리(ゴキブリ). 바퀴벌레의 일본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