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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희 Feb 01. 2024

42년생 락순씨의 이야기

락순씨의 등은 넓고 따스했다. 새벽녘 엄마가 보고 싶다는 손녀의 말에 락순씨는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항상 누구 누구야, 이름을 꼭 불러 인사해 주는 슈퍼 사장님이 서둘러 아침 장사를 준비하고 있다. 이른 시간부터 손녀를 등에 업고 분주한 락순씨를 보고 어김없이 손을 흔들어 준다. 손이 없는 락순씨는 고개만 끄덕여 겨우 응할 수 있을 뿐이다. 이렇게나 일찍 엄마가 보고 싶을 거면 할미 집에서 자면 안된다고, 앳된 손녀에게 소용없는 당부를 한다. 고단한 할미의 마음도 모르고 손녀는 할미의 따스한 등에 묻혀 어미의 곁으로 가는 이 길이 너무나 좋다. 앞으로의 인생에서 이 만큼의 사랑을 다시 받게 될 날이 쉽게 오지 않는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던 걸까.



락순씨는 1942년에 태어났다. 그의 손녀 혜민은 약 50년 뒤인 1992년에 태어났다. 락순씨가 아홉 살 때는 동포들 간에 총부리를 겨누는 전쟁이 일어났고, 열 아홉 살 때는 학생과 시민들의 시위로 초대 대통령이 권좌에서 물러났다. 서른 아홉살 때는 수많은 광주 시민들이 군부의 총칼에 생을 잃었다.

역사를 공부한 손녀는 할미의 존재가 신기하기만 하다. 살아 있는 근현대사 교과서를 보는 것만 같다. 속사포처럼 질문을 이어가는 손녀에게 락순씨는 “내 말 좀 들어봐” 하며 말을 이어 간다. 그러나 결코 손녀가 바라는 답을 들려 주지는 않는다. 락순씨가 이야기하는 일상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수놓은 굵직한 사건을 모두 비껴 갔다. 그 때를 살아낸 사람 같지 않게 사건의 이모저모를 알 수 있는 생생한 사연을 가지고 있지 않다. 손녀는 내심 실망하지만 할미의 말에 애써 귀를 기울여 본다.

락순씨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자신이 내는 소리마저도 잘 듣지 못하는 락순씨의 발음은 늘 메아리가 껴 있는 것처럼 조금은 불분명하다. “혜뮈아 내 말 종 들오봐아” 그런 할미를 위해 손녀는 입모양을 크게 크게 벌려 한 글자, 한 글자 대답한다.



손녀가 대학생이 되자 그들의 소통 방식은 진화했다. 손녀는 그동안 알바비를 모으고 모아 마련한 노트북을 꺼내 든다. 신문물을 보는 락순씨의 눈은 휘둥그레하다. 깜빡이는 커서의 움직임에 따라 크게 글자 하나 하나가 떠오른다. 늘 손녀의 말이 무엇인지 몰라 늘 답답하던 락순씨는 신이 났다. 손녀가 20대가 되도록 꾹꾹 눌러 놓은 자신의 이야기를 그제서야 모두 풀어간다.



락순씨의 딸 경순씨는 엄마가 선천적으로 잘 듣지 못했다고 알고 있다. 손녀도 그 이야기를 철석 같이 믿었다. 그러나 락순씨가 전한 사연은 딸과 그 딸의 딸까지도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10대 후반의 나이에 접어든 락순씨는 결혼하고 싶은 남자가 있었다. 그런데 락순씨의 오빠는 동생이 점찍은 남자가 참 못마땅했다. 이유는 없었다. 납득할 수 없었던 락순씨는 오빠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선택을 따르기로 했다. 어느날 오빠는 고분고분하지 않은 어린 동생의 뺨을 올려붙였다. 락순씨의 귀에서는 피가 철철 났다. 그 뒤로 락순씨는 사람들의 말을, 그리고 제가 내는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충격적인 이야기를 접한 손녀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욕지거리가 나온다. 락순씨는 그러지 말라고 타이른다. 그래도 오빠의 직업은 학교 선생이었다고. 사람을 가르치는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이었노라고, 말한다. 그 말을 하는 락순씨는 평온하다. 동생의 인생을 송두리째 날려버린 오빠를 이렇게 포장할 수 있는 건 사랑 때문일까, 시대가 낳은 무지의 소산일까. 손녀의 마음은 복잡하다.



그렇게 한 결혼 생활은 행복했느냐고, 물어보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는 결말이었다. 이미 손녀는 엄마 경순씨를 통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어왔기 때문이다. 락순씨의 남편은 돈을 참 잘 벌었다. 그런데 그 돈이 도대체 다 어디로 가는지 락순씨는 알 수 없었다. 어느날 경순씨에게는 배 다른 형제가 생겼다. 반은 닮고 반은 닮지 않은 그들이 경순씨는 참 낯설었다고 회상했다.

남편이 술을 먹은 날이면 어김없이 폭력의 밤이 찾아왔다. 닥치는 대로 물건이 날아오는 밤에 그의 아들이건, 딸이건 모두 집을 도망쳐 나왔다. 경찰을 불러도 소용이 없었다. 집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무엇이든 ‘집안일’로 치부되는 시대였다. 락순씨와 경순씨의 밤은 항상 낮보다도 길었다.



돌림자 ‘락’자에, 순응할 ‘순’ 자. 락순씨는 이름대로 살았다. 닥쳐오는 운명이 어떠한 탈을 쓰고 있던 락순씨는 모두 품어 안았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꿋꿋이 걸어갔다. 온몸으로 운명이 내는 생채기를 감내했다. 그러는 동안 딸들은 모두 락순씨 곁을 떠나 제 가정을 꾸렸다. 유일하게 아들만이 결혼하지 않고 락순씨 곁에 남았다. 날마다 아들은 늙은 노모와의 생계를 꾸리고자 일터로 나섰다. 집에 혼자 남은 락순씨의 하루는 유독 조용했다.



손녀는 달랐다. 손녀의 이름엔 여자 아이라면 으레 붙이던 “순”자가 없었다. 경순씨도 ‘순’자의 계보를 피해가지 못했다. 락순씨로부터 강산이 다섯 번이나 바뀐 다음에야 손녀는 ‘순’이 아닌 이름 자를 갖게 되었다. 혜민, 한자의 뉘앙스를 풀풀 풍기는 그 이름은 가히 혁명적이게도 순한글이었다.

신식 이름을 바탕으로 생을 시작한 혜민은 락순씨와는 차원이 다른 일상을 살았다. 하고 싶은 공부도 마음껏 다 했다. 대학 학부 4년을 거뜬히 보내고, 야무지게 석사까지 졸업했다. 순조롭게 취직에 성공했고 제 몸 뉘일 곳을 찾아 부모로부터 당당히 떨어져 나왔다. 제 보금자리를 찾은 뒤에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어 보이는 결혼을 하지 않겠다, 선언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수군거리지 않았다. 오히려 누군가는 기특하다 힘껏 박수를 쳐 주기도 했다. 시대는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변했다.



락순씨는 전라도 전주에서 태어나 인근 고장에서 결혼하기 전까지 살았다. 앞에 큰 산을 둔 락순씨의 집은 늘 사람들로 붐볐다. 락순씨의 엄마, 아빠는 물론 엄마 아빠의 형제들 모두가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락순씨의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락순씨의 형제들이 낳은 자식들이 다시 집을 가득 메웠다. 락순씨의 부모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집 앞 큰 산에 묻혔다.

락순씨의 오빠는 성공하면 부모의 묘비석을 크게 세워 주리라, 결심했다. 그러나 폐렴으로 고생하던 오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락순씨 부모가 묻힌 자리는 락순씨의 기억 속에만 남았다. 서울에 올라와 이런 저런 일에 쫓기듯이 살았던 락순씨에게 부모를 찾을 여유란 없었다.

락순씨는 손녀에게 항상 머리에 비녀를 꽂고 있었던 어미 이야기를 들려 주곤 했다. 어미의 성정은 자신과는 다르게 참 순했노라고, 추억했다. 그 이야기를 하는 락순씨의 눈에는 어떠한 아쉬움도, 그리움도 서려 있지 않았다. 락순씨의 모진 운명이 그가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마저도 앗아가 버린 것만 같았다.



락순씨는 혼자 사는 손녀의 집을 무척이나 보고 싶어 했다. 뭐가 그리 핑계가 많았던지 손녀는 독립하고 3년이 지나서야 할미를 제 집에 초대했다. 락순씨와 손녀의 사이에는 이제 노트북이 아닌 아이패드가 자리하고 있었다. 워낙에 모든 게 휙휙 바뀌어 가는 세상이라 오늘날의 락순씨는 신문물에 크게 놀라지 않았다. 다만 락순씨가 입고 있는 초록색 가디건에만 모든 세월이 멈춰 있는 듯 했다. 그 옷은 손녀가 초등학교 6학년 때 걸스카웃에 가입하고 받아 온 옷이었다.

손녀는 애써 눈물을 감추며 서둘러 할미를 제 동네에서 가장 비싼 소갈비 집으로 모셨다. 손녀가 이렇게 홀로 떵떵 잘 살고 있다고, 할미를 푹 안심시키고 싶었다. 락순씨는 어떠한 음식이든 마다하는 습관이 있었다. 매번 손녀에게 숟가락을 물리고 양보하며 저는 먹지 않았다. 손녀는 이번에도 할미가 또 그럴까 조바심이 났다. 손녀의 마음을 아는지 할미는 흰 쌀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집으로 돌아온 락순씨는 평온했다. 모진 세월의 흔적은 얼굴에 푹 패인 주름으로 선명히 남았지만, 빛나는 눈동자 만은 그의 잔잔한 마음을 그대로 비추었다. “혜뮈아 내 말 종 들오봐아” 락순씨가 제 집에서 바삐 움직이는 손녀를 멈춰 세웠다. 그러고는 말한다. 뭐든지 다 감사해야 한다. 세상이 나에게 왜 이런가 원망하지 말고. 세상에 늘 감사하다 보면 무엇이든 좋은 일이 일어난다. 지금껏 세상을 향해 모난 미움만을 켜켜이 쌓아온 손녀의 마음을 훤히 알고 있다는 듯이.



그제야 손녀는 알아챈다. 락’순’씨는 생에 ‘순응’해 오지 않았노라고. ‘적극적으로’ 순응해 온 것이라고. 락순씨에게 닥친 세상의 파도가 제 아무리 거칠고 높았다 해도. 락순씨는 때마다 그 파도를 온몸으로 맞았노라고. 손녀의 이름이 혜민일 수 있었던 건, 손녀가 맞닥트린 생의 파도가 조금은 잔잔할 수 있었던 건, 락순씨가 거칠기만 한 세상을 적극적으로 사랑해 왔기 때문이라고.

손녀의 눈에는 눈물이 흐른다. 할미의 초록 가디건을 어루만지며 손녀는 이제야 겨우 세상과 화해하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락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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