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판을 치는 시대에 난 무엇으로 살아 남을 수 있을까. 종종 고민하게 된다. 몇 줄 만으로 그럴듯한 결과물을 내놓는 그들을 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조금은 무력해지니까. 턱 치면 탁 나올 수 있는 나만의 무언가는 뭐지.
그러니까 봐봐. 기술을 배워야 한다니까.
결연한 말씨에도 남편은 꿈쩍하지 않는다. 흘깃 보더니 무심코 던지는 한마디.
너 이미 있잖아.
내가? 그게 뭔데?
글쓰기.
당연한 걸 되묻는다는 듯 남편의 표정은 삼삼하기만 하다. 선뜻 동의할 수 없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글을 써오긴 했다만 그걸 ‘나’에 한정한 기술이라 치부할 정도인가.
세상에 글 잘 쓰는 사람 너무 많아. 그리고 요즘 AI도 레퍼런스만 잘 주면 웬만한 수준으론 뚝딱이야.
이 논리를 되받아쳐 줄 근사한 대답을 기다렸건만 남편은 입을 꾹 닫아 버렸다. 더 보챘다가는 내가 듣고 싶은 말만 쏙쏙 해 줄 게 뻔히 보여서 덩달아 침묵했다. 글이라, 집요한 성정 덕에 꾸역꾸역 원고를 쓰고, 책을 내고, 지금까지 나름 나쁘지 않게 팔리곤 있지만 당당하게 ‘잘 쓴 글’이라 선언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글을 잘 쓴다는 건 뭐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다가 어느덧 ‘글쓰기’란 존재를 최초로 인지하게 됐던 시절까지 가닿았다.
몇 학년이었더라, 여하튼 중학교 때 담임이 국어 선생님이던 시절이 있었다. 문학에 대한 애정이 깊은 분이었는데 벌칙을 내릴 때조차 시 외우기를 시킬 정도였달까. 그때 윤동주의 서시를 어떻게든 달달 외우려 용쓰던 찰나가 지금도 내 머릿속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다. 더 기억에 남는 건 수업을 마칠 때마다 가졌던 1분 글쓰기 시간. 커다란 스크린에 1분 타이머를 띄워 놓고 날마다 주어진 주제로 모두가 글을 썼다. 사각사각 1분이 지나면 쓴 글을 발표하게 했는데, 거의 매일같이 손을 드는 애가 있었다. 키가 크고 쌍꺼풀이 진한 남자애. 이름에 ‘용’자가 있었던 그 애의 글은 정말이지, 용했다. 언제나 우리 모두를 숙연하게 했달까. 몽당연필처럼 고만고만한 서툴기 짝이 없는 글들을 모두 제치고 언제나 홀로 우뚝 높이 솟아 있던 그 애의 글. 따라갈 수조차 없었던 격차를 눈앞에 두고 마음만 동동거리길 여러 번. 어쩌나, 타고난 게 다른 걸 체념하다가도 그 애의 재주가 어찌나 부럽던지. 글쓰기 시간이 돌아올 때마다 모두가 던지는 경외의 눈초리가 그 애가 아닌 날 향하게 된다면. 언제는 그 찬란한 주목성이 견딜 수 없이 질투가 나 1분을 넘기면서까지 공들여 글을 쓴 적이 있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붙들고 발표했건만, 돌아오는 친구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할 뿐이었다. 미지근한 반응과는 반대로 그때 내 두 볼은 화염처럼 달아올랐다.
글쓰기에 대한 남모를 애증은 고등학교 시절까지 이어졌다. 그때의 난 논술 고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잠시 다니게 된 논술 학원은 틀에 박힌 단조로운 공부에 지쳐있던 내게 일종의 해방감을 주었다. 늘 헐렁한 정장에 네모반듯한 안경을 쓰고 있던 논술 선생님의 분위기도 한몫했다. 어쩐지 학교 선생님들과는 다른, 마치 교수님 같은 인상이라 향후 마주하게 될 캠퍼스 생활의 단면을 상징하는 것 같았달까. 신선한 외모와 어울리게 선생님이 들려주던 글쓰기 이론도 늘 색다른 매력이 있었다. 그런데 결과는 늘 마음 같지 않았다. 같이 학원에 다니던 친구가 그 멋진 선생님에게 유일한 칭찬을 받던 날, 그게 왜 그리도 참을 수 없이 분했던지. 그날 친구가 심어 준 내면의 불꽃은 논술 입시 합격의 원동력이 되었다. 이를 악물고 하던 나날 끝에 드디어 선생님의 칭찬을 따내고, 입학 통지서를 거머쥐었을 땐 어찌나 우쭐하던지.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대학원 때도 비슷했다. 시간을 들인 만큼 사람은 집요해지기 마련이다. 모두를 꺾어 버리고야 말겠다는, 유일무이한 실력자가 되고 싶단 절절한 욕망은 언제나 스스로를 들들 볶았다. 의자 위에서 엉덩이가 녹아내릴 정도로 긴 시간을 들여 쓴 글들은 언제나 목이 쉴 정도로 소리 내 읽었다. 작가들은 자신이 쓴 문장을 배 아파 낳은 자식처럼 여긴다는데, 그때의 난 작가도 뭐도 아니었지만 내가 쓴 문장들로만 나를 증빙할 수밖에 없었던 가난한 시절이었기에 엇비슷한 심정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온통 날이 선 시절을 지나고 얻게 된 학위는 내 유일무이한 자부심이었다.
이렇듯 내게 ‘글을 잘 쓴다’는 꼬리표는 태생처럼 자연스러운 것이었다기 보단 어떻게든 얻어낸 억지스런 무언가였다. 글을 쓰는 순간들은 언제나 치수가 맞지 않은 옷에 어떻게든 몸을 욱여넣으려 애를 쓰는 과정처럼 버거웠다. 당연히 이 정돈 해야지라는 치기. 어떻게든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 그 속을 뒤채이다 보니 글쓰기와 관련된 트로피들을 꾸역꾸역 얻게 된 것일 뿐. 가끔은 그 트로피들을 들이밀며 글 좀 쓴다고 증명해야 할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땐 언제나 뒷맛이 구렸다. 한마디로 난 글쓰기를 그렇게 좋아라하진 않는 것 같았다. 그저 이글거리는 질투심을 어떻게든 종종 따라다닌 것일 뿐.
글쓰기에 대한 생각이 서서히 바뀌게 된 건 직장을 다니다가 우연히 들어간 에세이 모임에서였다.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각자의 이유로 글을 쓰고 싶어 모인 곳이었다. 글을 업으로 삼고 있거나 책을 내 본 사람도 더러 있었지만 열에 여섯, 일곱은 각 잡고 글을 써본 경험이 많진 않은 듯했다. 그래서인지 모임을 시작할 무렵의 내 속엔 어떤 오만이 단단히 똬리를 틀고 있었다. 잘난 제 글만 쓰기에 바빴을 뿐, 남의 글들은 제대로 들춰 볼 생각도 없었으니까. 그런 마음의 철옹성을 꼼짝없이 함락시킨 건 항상 내 글을 자음과 모음까지 싹싹 읽어 주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겐 어떤 위장이 없었다. 거짓을 가장한 화려한 미사여구도, 어떤 훈수도 아닌 담백한 진심만이 언제나 댓글 창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왜 이렇게 남의 글을 열심히 읽는 걸까, 그제야 고마움 반 호기심 반으로 사람들의 글을 눈에 담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잘 쓰지? 각자 지나온 시간과 공간을 직조한 저마다의 이야기는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그동안 내가 써온 정보를 조직해 나만의 논리를 세우는 글과는 차원이 다른 아름다움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 쓰지 못할까. 이전에는 쉽게 휘갈겨 써낸 거 같은데 시간이 지날수록 한 문장 한 문장 쓰는 게 버겁게만 느껴졌다.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도 된 듯, 어디 가서 글을 업으로 삼고 있단 말을 하기도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기억에 남을 만큼 극적인 계기는 없었다. 제풀에 지친 건지, 질투하는 데에도 에너지가 드니까 언젠가 그저 받아들이기로 했던 것 같다. 그러곤 좋은 글은 그저 좋은 대로 마음에 품어 보았다. 나오는 대로 울고 웃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고민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어떤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사람들을 울고 웃게 할 나만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글이 그저 남을 넘어서기 위한 수단이었을 때, 그런 뒤틀린 욕망이 담긴 이전에 내가 쓴 글들은 하나같이 어색한 구석이 있었다. 어떻게든 허점이 없어야 한단 강박에 문장 하나하나가 허리를 곧추세우고 딱딱하게 자리를 채우고 있었달까. 그때 어렴풋이 알았다. 글의 영혼은 글쓴이의 태도와 생각이 이루는 것이라는 걸. 여기까지 생각이 닿으니 그래, 어쩌면 글쓰기는 AI가 대체할 수 없는 나만의 기술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무작위로 만난 이 생 속에서 온몸으로 부딪히며 만든 나의 시간들이 하나 하나의 이야기가 될 때, 그 이야기는. 더군다나 그 이야기가 누군가를 진정으로 울고 웃게 할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