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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목 Feb 21. 2024

살아 있는 것들은 기어이

스스로의 아름다운 운명을 완성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맑은 강이 흐르고 대숲이 서걱이는 마을에서 원양을 건너온 겨울 철새들을 바라보며, 살아 있는 것들은 기어이 스스로 아름다운 운명을 완성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마을의 새들처럼, 저도 스스로의 운명을 완성하겠습니다

'미국 대학 Finance PhD 프로그램 입학'이라는 목표로 진행하던 2년 간의 프로젝트가 끝났다. 그 2년 동안 나는 발사를 앞둔 새턴 V 로켓을 핸드폰 잠금 화면으로, 점화를 시작한 채 발사대에 걸려 있는 우주 왕복선을 노트북 배경화면으로 썼다지. 그처럼 아주 멀리 가야 했고, 빨리 가야 했고, 체계적이어야 했고, 실수가 없어야 했고, 치열해야 했던 시간들. 때로는 동종업계에 있는 또래가 별로 없다는 사실을 악용해 내가 하는 일을 그 실질에 비해 너무 거창하게 포장하기도 했고 (아마 낮은 자존감의 방증?), 때로는 실제로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거창해서 잔인할 정도로 바쁘기도 했던 순간들. 하지만 가장 괴로운 순간을 지나갈 때에도, 왜인지 나중에 이 시간들을 달콤한 기억으로 되돌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저녁이 되어 연구실 사람들이 모두 퇴근하고 나면 나는 내가 싫어하는 흰 천정등을 끄고, 노란 전구색을 발하는 LED 탁상 스탠드를 켰다. 에스프레소에 물을 받아 갓 내린 것처럼 따뜻한 아메리카로노 만들고, 좋아하는 곡들(지금도 글을 쓰며 듣고 있는데 너무 좋다..)을 틀어 놓으면 열어덞 사람이 쓸 수 있는 넓은 연구실이 온전히 내 공간처럼 느껴졌고, 고통은 훨씬 견딜만한 것이 되었다. 그러니까, 김금희 작가가 이렇게 감각적으로 묘사했던 시간이 내게도 있었다. ('내일 봐요, 하고 내가 사무실을 나가면 조중균씨는 일어나 자기 자리만 남기고 사무실 형광등을 모두 꼈다. 그리고 그런 사무실의 어둠을 아주 따뜻한 담요처럼 덮고 원고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연구실에서 지내다 바람을 쐬기 위해 경영대 건물을 나와 밤산책을 나가면 추운 밤 하늘에는 별이 팽팽했고, 미대에는 어째서인지 늘상 불이 켜져 있었고 (미대 사람들은 맨날 밤을 새나?), 법대 독서실에는 쏟아질 듯 많은 책과 종이들이 책을 펼칠 공간을 제외하고 자리마다 무너질듯 수북히 쌓여 있었다 (저 사람들은 정말 열심히 공부하는구나). 대학원 생활이 시작될 무렵, 이미 친구들이 대부분 서울의 중심으로 옮겨갔을 무렵, 나만 이 외진 학교에 남아 있는 것 같다는 조바심에 학교가 지긋지긋하다고 느끼곤 했다. 그랬던 내가 언젠가부터 내가 이 반복되는 나날들을 시리도록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내 젊은 날을 기억하는 다양한 방식 중 하나로, 이렇게 아름다운 캠퍼스가 있고, 노란 불빛을 내는 탁상 스탠드가 있고, 밤산책이 있으면, 그것은 감사할 만한 일이겠지. 


석사 생활동안 나를 지탱해 준 두 개의 글귀가 있다면, 하나는 위에 인용한 김훈의 수상 소감이고, 다른 하나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에서 발췌한 글귀였다. 언젠가 내 마음에 내려 앉아, 내 믿음 체계에 편입된 문장들. 내 으으..내 자의식 과잉이 선택한 문장들. 하나씩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2003년 겨울에, 또 조금만 더 쓰기로 작정을 하고 연필과 미숫가루를 챙겨서 일본 교토 서쪽의 깊은 산속으로 들어왔습니다. 맑은 강이 흐르고 대숲이 서걱이는 마을에서 원양을 건너온 겨울 철새들이 날개를 퍼덕거렸습니다. 제 몸에 달린 날개를 흔들어서 날아가는 그것들의 목숨은 쓰라리고 또 감미로워 보였습니다. 키 크고 목 긴 새들이 한쪽 다리로 서서 부리를 죽지 밑에 틀어넣고 한나절 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새들의 자태는 혼자서 세상을 감당하는 자의 엄격함이었습니다. 살아 있는 것들은 기어이 스스로 아름다운 운명을 완성한다는 것을 새를 들여다보면서 알았습니다."


위로가 되기도 했고, 혼자 복받이기도 했고, 절대로 배신 당하고 싶지 않았던 글이었다. 쓰라리고, 감미롭고, 감당하고... 박사 생활도 결국은 이런 느낌의 연속일텐데, 아마 나는 또 이 글귀를 보고 복받이고, 다짐하고, 위로를 받으며 지내게 되겠지. 


"사회과학에서의 연구는 언제나 잠정적이고 불완전한 것이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사회과학적 연구는 경제학, 사회학, 역사학을 정밀과학으로 변형시키려는 오만한 주장을 내포하고 있지 않다. 그 연구는 대신 끈기 있게 사실과 패턴을 찾아내고 그것들을 설명할 수 있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인 작동 원리들을 차분하게 분석함으로써 민주적인 토론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며 그 토론의 관심이 좋은 질문들에 집중되도록 할 수 있다. 이런 연구는 토론의 용어들을 끊임없이 다시 정의하고, 선입견이나 사기를 폭로하고, 모든 것이 비판적인 검증을 받도록 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내가 보기에는 이것이 바로 사회과학 연구자를 비롯한 지식인들, 그리고 누구보다도 연구에 바칠 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진(그리고 그 연구에 대한 보수까지 받는 귀중한 특권을 가진) 운 좋은 시민들이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역할이다."

 

그리고 나는 나의 소명을 (그런 게 있다면), 위 문단에서 피케티가 묘사한 방식으로 완성하고자 한다. 나이가 들면 이레 어렸을 때 꿈꾸던 희미한 이상과 멀어지기 마련인데, 나는 오히려 이상을 구체화하고, 그 주변을 미약하게나마 맴돌 수 있게 되었다. 어느 정도의 노력과, 아주 큰 행운, 그리고 무엇보다 내 욕먕에 솔직할 수 있었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 20대 초반을 아주 잘도 망쳐 놓은 덕분에 유학은 내게 기회 비용이 거의 없는 선택이 되었다. 손에서 놓을 것이 없기 때문에, 잡고 싶은 것을 망설임 없이 잡을 수 있었다. 


박사 유학은 그렇게 내 손에 닿게 된 기회다. 솔직히 고생길이 훤하고, 미국 시골 생활이랄 게 그리 특별할 것 없으며 (요즘따라 서울이 왜 이렇게 예쁘게 느껴지는지), 그저 또 다른 고생의 시작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기에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그래도 지난 2년의 시간이 이렇게 마무리되었다는 사실에, 그리고 앞으로 또 5년 간 또 내가 출퇴근할 곳이 생겼다는 사실에, 경제적 자립을 할 만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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