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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결국봄 Aug 02. 2019

냉면을 분석하다

한식분석

대한민국 남자들이 한 가지의 주제로 가장 오래 떠들 수 있는 주제는 무엇일까? 이성, 게임, 정치 등 다양한 주제가 있겠지만 '군대'가 압도적으로 길게 얘길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누군가 조심스레 군대 얘기를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산불처럼 퍼져나가 모두가 소리 내어 군대 얘기를 한다. 2년가량의 세월을 군에서 보낸 대한민국 남자들은 '군대'라는 대화의 공통분모를 얻고 전역을 명 받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백령도는 인천에서 5시간 정도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섬이다.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는 얘기지만, 백령도에는 pc방, 햄버거집, 카페가 없었다. 귀하디 귀한 외출의 기회를 얻고서도 할 수 있는 건 당구장, 노래방, 맛집 투어 정도이다.

출처: pixabay

맛집 투어는 보통 냉면으로 시작된다. 시원한 냉면 육수와 비빔 양념이 적절하게 섞인 반 냉면을 먹거나, 물냉면을 먹는데 이때 포인트는 수육이다. 백령도 냉면은 수육과 함께 먹는데 미리 전화 주문을 하지 않으면 먹지 못할 정도로 인기가 대단하다. 냉면을 주문하면 면수가 먼저 나오는데 메밀면을 삶아낸 물을 한잔 마시며 기다리다 보면 냉면이 나온다. 시원한 육수와 쫄깃한 면, 부드러운 수육을 정신없이 먹고 나면 어느새 은색의 냉면 그릇 바닥과 마주하게 된다. 냉면을 다 먹은 뒤에는 미리 챙겨놨던 삶은 계란의 노른자를 그릇에 으깬다. 그 후에 면수와 까나리 액젓, 후추를 넣어 간을 맞춘 뒤 들이키는 것이 백령도 냉면을 먹는 방법이다.


1. 냉면 분석

처음 먹을 때는 경악했던 까나리, 후추, 계란의 조합이 별미로 느껴질 때쯤에 전역했다. 이제 잠시 냉면에 대한 추억은 접어두고 냉면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냉면을 구성하는 요소는 세 가지이다. 육수, 면, 고명이다. 이 세 가지의 요소를 어떻게 구성하는지에 따라서 냉면의 맛이 변용된다.


첫 번째, 육수

냉면 육수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재료는 소고기이다. 양지나 사태를 푹 삶아서 기름기는 걷어내고 살얼음 지게 얼려 사용한다. 이외에도 꿩, 돼지고기, 닭, 소뼈 등이 사용되는데 가장 특징적인 것이 해산물 육수를 사용하는 것이다. 진주냉면의 경우 소고기 육수와 해산물 육수를 섞어서 사용한다고 한다.


국물의 조미를 어떻게 하느냐도 냉면의 맛을 좌지우지한다. 육수 본연의 맛을 살리기 위해 육수만을 사용하거나, 동치미 국물의 시원한 맛을 주기 위해 동치미 국물을 섞어 사용한다. 또는 간장, 까나리 액젓 등 다양한 양념을 넣어 간을 맞추기도 한다.

출처: pixabay

 번째, 면

기본적으로 면에 사용되는 주재료는 메밀이다. 그러나 메밀만을 사용하면 우리가 먹는 냉면의 쫄깃한 식감이 살지 않는데, 밀과 달리 메밀은 글루텐 형성이 어려워 점성과 탄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면을 만들 때 메밀만을 사용하지 않고 밀가루를 섞거나 감자 전분 등을 넣어 식감을 개선한다.


냉면 미식가들은 면의 메밀향을 중요시한다는데 메밀과 다른 식재료의 비율이 어떻게 구성되는지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진다. 또한 면을 압출할 때 굵기를 달리하여 면의 식감을 변화시킬 수 있다.

출처: pixabay

세 번째, 고명

냉면의 고명은 주로 시원한 맛을 주는 고명과 냉면의 바디감을 풍성하게 해주는 고명이 사용된다. 동치미 무, 오이, 배와 같은 재료는 냉면의 시원한 맛을 더해주고 편육, 수육, 육전 등은 육수가 머금고 있는 맛을 더 극대화 시켜준다.


2. 냉면의 원조

평양, 진주, 해주, 함흥냉면 등 냉면 앞에는 지역명이 붙어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평양냉면은 물냉면으로 고기 육수(소, 꿩, 닭) 등을 얼려서 사용한다. 진주냉면은 고기 육수와 해산물 육수를 섞어 사용한다. 해주 냉면은 황해도 지역에서 먹는 냉면으로 필자가 자주 먹었던 백령도 냉면이다. 해주 냉면은 돼지 육수와 설탕과 간장으로 간을 한다고 한다. 위에 나열된 냉면들과 달리 함흥냉면은 유일한 비빔냉면이다. 면은 메밀이 아닌 감자 또는 고구마 전분만을 사용해서 만들며 회와 매콤한 빨간 양념을 비벼 먹는 냉면이다.


냉면은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음식으로 어떤 것이 원조의 맛이라는 논쟁이 일어나는 음식 중 하나이다. 소고기 육수를 쓰는 것이 원조다 또는 꿩 육수가 원조다. 메밀향이 입안에서 가득 풍겨오는 냉면이 진짜 냉면이다... 등 다양한 주장이 있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 냉면은 그냥 냉면이다. 냉면(冷麵), 차가운 국물에 담겨 있는 면. 고기 육수, 해산물 육수, 동치미 국물 등을 섞어서 메밀면을 넣어 먹는 음식이 냉면이라고 생각된다.


원조를 가리는 것도 중요할 수도 있지만, 어떤 맛이 '진짜'라고 하기보다는 육수를 기름기 없이 잘 끓여내는 기술과 적절한 탄성과 점성이 있는 면을 일정하게 뽑아내는 기술이 '진짜'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꿩 육수이든 쇠고기 육수이든 차갑게 얼려서도 풍부한 맛을 느끼게 해주는 장인의 기술을 맛보러 집 밖을 나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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