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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잠 Sep 16. 2023

밥 한 끼 먹기 힘드네.

맛없는 식당을 만나면 이상하게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다. 일찍 집을 나서 관공서를 시작으로 이곳저곳 돌아다녀야 했다. 어제저녁 늦게까지 영화를 보고 늦잠을 잔 탓에 잠이 덜 깬 육체를 이끌고 힘들게 외출 준비를 했다. 배꼽시계는 진작부터 가동하였으나 돌아다니다 보니 먹는 일을 자꾸 놓치게 되었다. 더위는 점점 심해 지치기 시작했고, 허기까지 동반하였으니 ‘곧 쓰러지겠다.’ 생각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마음은 '시원한 평양냉면 먹고 싶다'였으나 좋아하는 면옥집까지 가는 시간을 버티기에는 허기진 상태가 심각했다. 한 집 건너 커피 집은 줄줄이 있었지만 음식을 파는 집은 보이지 않았다. 짜증이 얼굴로 번지려는 찰나 맞은편에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깨끗한 간판의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잘 못 들어왔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지만 다른 식당을 발견하지 못한 터라 다시 나가기도 힘들었다. 각 테이블마다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아니라 수다 중인 사람들이 전부였다. 마땅히 자리를 찾지 못하고 서서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그중 한 사람이 일어나  묻는다.

"혼자예요?"

'네."

"아무 데나 앉아요."

그 소리를 듣고 둘러봐도 마땅한 자리가 계속 서성이고 있으니 “혼자면 여기 앉아요.”라고 자리를 안내해 준다. 벽 앞에 놓은 작은 탁자에 물건들이 널브러져 있는 구석자리였다. 음식을 먹기도 애매한 모양새의 자리에 의자 하나 달랑 있는 무엇에 쓰는 자리인지 불분명한 위치였다. 첫 번째 한숨을 쉬었다.


일단 앉았다. 차림표를 보고 두 번째 한숨이 나왔다. 떡볶이, 오뎅, 초계탕, 냉면, 된장찌개. 와, 무슨 메뉴가 중구난방이냐. 분식집인가? 냉면집인가? 밥집인가?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는 차림표였으나 나름 자신 있는 음식을 골라서 하는가 보다 생각했다. 냉면을 선택했다. 냉면은 판매용 육수 사다 끓여 줘도 기본은 하는 음식이니 조리음식보다 실패의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었다.


음식까지 주문하고 나니 배고픔은 더 심해졌다. 뭐든 들어가면 살 것 같았다. 생각보다 긴 시간이 지나 유명한 냉면집 흉내 낸 듯 깨로 덮여 있는 냉면이 앞에 놓였다. 개인적으로 냉면에 깨는 싫지만 그러나 어쩌랴. 배고파 앞이 안 보이는데. 깨를 걷어내고 육수를 마셨다. 순간 이건 뭐지? 도대체 미원을 얼마나 넣었길래 이렇게 밍밍한 단맛까지 나는 거지? 육수는 포기하자. 물냉면에 육수를 포기하는 일은 내 딴엔 크게 마음 쓴 거다. 면을 먹었다. 대놓고 인상을  찡그렸다. 면은 제대로 빨지 않아 냄새가 진동했고 면발은 퉁퉁 불어 있었다. 다시 젓가락을 들고 한참을 망설였으나 도저히 더 먹을 자신이 없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시장이 반찬이라는데 배고플 땐 뭘 먹어도 맛있다던데 아무리 배가 고파도 이건 진짜 못 먹겠다 결정하고 계산을 했다. ‘뭐가 맘에 안 드세요?’라는 물음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차라리 ‘음식이 입에 안 맞으세요?’가 주인의 물음이었다면.


손님이 와도 자리를 피해 주지 않는 배려 없는 지인들, 손님을 구석으로 앉으라는 개념 없는 주인, 이 사람 저 사람 말 듣고 만들었을 중구난방의 차림판. 음식 솜씨 없이 하는 음식점은 정말 만나고 싶지 않은데 다니다 보면 한 번씩 잘못 걸릴 때가 있다. 미원도 적당히 들어가야 엄마 손맛이지 들이부으면 엄마 손맛 아니다. 배고파 쓰러질 것 같던 사람은 시장도 반찬이 되지 못해 결국 바나나우유 한 개로 허기를 채웠다. 밋없는 식당을 만나면 지친 하루가 더 피곤하다. 에휴, 밥 한 끼 먹기 힘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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