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겨울잠 Feb 23. 2024

옐로나이프 오로라 관람기

쇼팽의 녹턴과 모차르트의 론도를 만나다

옐로나이프 오로라 관람기

연말이 되면 다음 해의 새로운 버킷리스트를 만든다. 해마다 빠지지 않는 것이 ‘오로라 보러 가기’였다. 언제쯤 갈 수 있을까? 좀 멀리 있는 꿈이거나 못 갈지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노트에 적었다. 영상으로 오로라를 찾아볼 때마다 신비하고 오묘한 분위기에 홀렸다. 어느 날은 ‘오로라를 보면서 생을 마감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오로라 여행지로 마음속에 담아둔 나라는 북유럽 국가인 노르웨이나 핀란드였다. 그 외에 다른 곳은 생각해 보지 않았다. 일을 그만두고 쉬고 있을 때 나의 친구가 캐나다 캘거리로 떠나자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캘거리가 가보고 싶은 여행지는 아니었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거절했다. 친구는 캘거리에서 옐로나이프라는 곳으로 이동해 오로라를 보러 갈 수가 있다고 했다. ‘오로라’ 그 단어만으로 나는 핸드폰을 열어 통장잔고를 확인했다. 언제나 여행은 갑자기 떠나게 된다. 이럴 땐 비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실직기간이 완벽한 휴식기처럼 느껴진다.



옐로나이프를 검색했다. 캐나다 북부에 있으며, 북위 62도에 위치한 도시로 나사가 인정한 최고의 오로라 관측지라는 글이 있었다. 나는 전혀 알지 못했던 도시로 오로라를 만나기 위해 출발했다. 우리의 전체 여행 일정은 보름이었고, 함께 간 일행은 오로라 투어 경험이 있었다. 나만 중간에 그들을 벗어나 캘거리에서 국내선으로 이동하여 옐로나이프로 갔다. 옐로나이프에 도착해 호텔 체크인을 마친 후 미리 신청해 놓았던 장비를 찾았다. 내가 입고 간 옷들로는 영하 3,40도로 떨어지는 밤의 온도를 이겨낼 수 없기에 신청해 놓은 옷과 신발 등이었다. 사람 몸집만큼이나 두꺼운 외투와 털 장화, 권투 장갑인 줄 착각하게 만든 장갑을 들고 방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아니 캘거리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는 순간부터 맥박은 빨라지고 있었다.



밤이 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느림보 거북이 같았다. 잠을 좀 잘까? 맥주를 마셨다. 잠은 들지 않았고 창밖은 환하다. 영화라도 한 편 볼까? 집중되지 않는다. 책은? 같은 줄만 계속 읽는다. 아무래도 시간이 멈춘 것 같다. 수영장을 만들겠다고 방 안에 호수를 끌어다 물을 받고 엄마한테 혼날 일 걱정하며 안절부절못하던, 딱 그때처럼 호텔 방안을 오갔다. 운이 나쁘면 2박 3일 내에는 오로라를 못 볼 수도 있다 하여 4박 5일을 예약했으나 길다고 무조건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날씨가 맑아야 하며 구름이 없어야 한다. 운도 따라야 한다. 못 보고 돌아온 사람도 많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마음은 더 초조했다. ‘한 번도 못 보면 어쩌나?’, ‘하루는 보겠지’, ‘선명하게 볼 수 있으려나’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알람이 울렸다. 속옷을 껴입고 외투까지 걸치니 상체만 발달한 뽀빠이 아저씨가 되었다. 투박해진 몸의 움직임은 둔해지고 행동도 느려졌다. 마음만 바빠서 신발을 신다 앞으로 고꾸라지기를 여러 번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다면 웃긴 시트콤의 한 장면일 것이다. 뚜벅뚜벅 움직여 투어버스를 탔다. 가이드의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영어로 자꾸 뭐라고 하는데 ‘오로라’ 소리만 들렸다. 영어가 끝나고 한국말로 안내가 있었으나 내 귀에는 내 심장 뛰는 소리만 들렸다.


버스에서 내리니 하늘이 뿌옇다. ‘쿵’하고 심장이 내려앉았고, ‘이런 젠장’ 소리가 나오려는 순간 가이드의 말이 들렸다.


“여러분, 오로라예요!”


뭐래니? 눈에 보이는 것은 뿌연 구름이었다. 영상으로 봤던 초록빛이나 붉은빛은 없었다. 사람의 시야로 오로라의 색을 보는 일은 쉽지 않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런데 가만히 보고 있으니 움직임이 이상하다. 바람에 떠가는 구름과는 뭔지 모르게 다르고 자세히 보니 고운 밀가루 같다고 해야 하나? 구름은 별을 가리지만 오로라는 별을 가리지 않는다고 했다. 확실히 구름은 아니었다. 장갑을 벗고 카메라 렌즈로 보니 하늘이 온통 초록빛으로 덮여 있었다. 장갑을 벗으니 추위 때문에 순식간에 손가락의 감각이 사라졌다. 급하게 삼각대를 세우고 무선 셔터를 손에 쥐고 다시 장갑을 꼈다. 두 개의 모자를 뒤집어쓰고 눈밭에 누웠다. 뒤통수가 얼얼해질 때까지 하늘만 봤다. 오로라의 움직임은 쇼팽의 녹턴이기도 했으며 모차르트의 론도이기도 했다.


첫날의 숨이 멎을 듯 황홀했던 느낌은 둘째 날도 셋째 날도 이어졌다. 가이드는 정말 운이 좋다며 3일 만에 한 번 보고 돌아간 사람도 있고, 내가 가기 전에는 며칠 동안 오로라가 보이지 않아 못 보고 돌아간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사흘째인 마지막 밤이 시작되었다. 까만 하늘은 잠잠했고 별들만 가득했다. 추위는 두꺼운 옷을 뚫고 피부에 닿았고, 손끝은 굳어 갔으며, 발가락의 감각은 사라지고 있었다. 흩어졌던 사람들이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주위엔 아무도 없었고 나는 눈밭에 누웠다. 하늘에서 천천히 연주가 시작되었다. 바람 따라 춤을 추는 오로라는 부드러운 촉감을 시각으로 느낄 수 있게 했다. 뿌옇게만 보이던 오로라는 뒤통수가 찌릿해질 때쯤 점점 빠른 움직임으로 초록빛과 분홍빛, 노란빛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시야로는 보기 힘들다는 오로라의 색이 렌즈가 아니라 눈으로 보였다. ‘악’ 소리도 나지 않았고, ‘헉’ 소리도 나지 않았다. 가위에 눌려 움직이지 못하고 소리도 낼 수 없는 사람처럼 꼼짝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울컥하며 막혔던 수문이 열린 것처럼 무섭게 눈물이 쏟아졌고, 가슴속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튀어나왔다. 얼마나 울었을까. 내 울음소리에 사람들이 나왔을까. 웅성거리는 소리에 정신이 들며 눈물이 멈췄다.


마음이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고 참았던 보상이랄까. 여행 중에 가끔 짐승소리 같은 울음이 터질 때가 있다. 내가 이기지 못하는 나, 내가 버리지 못하는 나. 어쩔 수 없는 내가 폭발한다. 밤마다 눈밭에 누워 얼어가는 육체를 방치하고 바라봤던 하늘을 기억한다. 고요함 속에서 강렬했던, 부드러움 속에서 힘찼던 연주. 훌륭한 오케스트라의 합주보다 황홀했던 생생함이 사라질 즈음 나는 다시 오로라의 연주회에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탈 것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