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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혁 Jan 10. 2020

세렝게티를 가다

탄자니아, '19.12.05(목) ~ '19.12.18(수)



가왕의 8집 수록곡 '킬리만자로의 표범'과 관련된 몇 가지 이야기


1. 킬리만자로에는 표범이 살지 않는다.

1936년에 출간된 헤밍웨이의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에 얼어 죽은 표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는 하지만 실제로 킬리만자로에서 표범을 본 적이 있다는 이야기는 지금까지 전해지지 않는다.


2. 가왕은 이 곡 덕분에 훈장을 받은 적이 있다.

수여한 이유와 받은 이유는 당사자만이 알겠으나, 여하튼 탄자니아 정부는 2001년에 가왕 조용필에게 문화 훈장을 수여하였다.


3. 킬리만자로가 탄자니아에 있다는 걸 아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부모님 세대부터 익히 학습된 결과로 우리는 킬리만자로가 아프리카에 있다는 것을, 조금 더 나아 아프리카 대륙의 가장 높이 솟은 봉우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킬리만자로의 국적을 묻는다면 장담컨 9할 이상은 답하지 못하거나 잘못된 답을 내놓을 것이다. 킬리만자로는 탄자니아에 있다.


마지막으로, 세렝게티도 탄자니아에 있다. 2019년의 지는 해를 좇아 내가 탄자니아 땅을 밟게 된 이유다.




벌써 한 달 남짓이 되었다. 탄자니아에서 인천으로 날아오르는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이.


언젠가는 다녀올 기회가 생기겠지, 나름 버킷리스트에 담아두긴 했으나 별로 생각해 본 일이 없었던 세렝게티였다. 궁금은 하였기에 혼자서 견적을 알아보기도 하고 오가는 비행편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그저 먼 훗날의 일이라고만 생각하고 지냈다. 달리 말하면 이루고자 하는 열망이 크게 없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기회는 생각보다 쉽게 찾아왔다. 탄자니아에서 코이카 단원으로 일하고 있는 대학 동기 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세렝게티에 가다. 이미 2인으로 구성된 원정대가 꾸려져 있었다. 나는 차려진 밥상에 수저 한 벌만 살포시 얹으면 되는 상황이었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고 하지 않는가. 심심풀이 삼아 조금씩 뽑아 봤던 견적이 탄자니아로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 데에 큰 도움을 주었다.



얼추 계산을 해보니 내가 혼자서 해결하려 했던 비용의 반도 안 되는 금액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300만 원 남짓 되는 돈이 결코 작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런 기회가 언제 다시 찾아올까 싶다. 무려 한국어와 스와힐리어를 현지인 수준으로 구사하는 오랜 친구이자 가이드까지 동행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공항철도에 몸을 싣고 난 다음이었다.





탄자니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므완자에서 출발하여 두 시간을 달려 도착한 세렝게티. 2박 3일 동안 우리와 함께할 차량은 도요타의 랜드크루저를 개조한 것이다.


시간과 돈이 모두 풍족하다면 '롯지'라고 불리는 숙소에서 조금 더 대접받으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겠으나 우리에게 가진 것은 시간이요, 없는 것은 돈이다. 그런고로 당연히 캠프를 할 것이고 그런 덕분에 우리의 식사를 책임질 쉐프께서도 동행한다.



세렝게티에 살고 있는 동물들은 주기적으로 서식지를 옮긴다. 그렇기 때문에 계절마다 동물들이 분포하는 양상이 달라진다. 12월 말에서 1월 사이에는 수십 만 마리의 누떼와 얼룩말이 줄을 지어 이동하는 장관을 볼 수 있다. 그것을 세렝게티의 '대이동'이라고 부르는데, 아쉽게도 우리는 조금 이른 시기에 세렝게티를 찾은 탓에 그런 무리들을 볼 수는 없었다.



경계라고 부르기 조금은 애매한 입구를 통과해 거칠게 난 길을 따라가다 보면 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넓은 초원이 나타난다. 그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출력을 높이는 엔진. 얼마 지나지 않아 양 옆에는 온갖 야생의 풍경이 펼쳐진다.



세렝게티에서 처음 만난 기린과 임팔라 무리. 기린들은 대체로 호기심이 많다.



시기가 맞지 않아 이미 동물들이 다른 곳으로 움직여 간 것인지 조금은 심심한 풍경이 10분가량 계속되던 중 한 무리의 코끼리와 조우했다. 그 수를 세어 보니 서른 마리 정도가 된다. 세렝게티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꽤나 큰 무리를 만났다. 시작이 나쁘지 않다. 아니, 이 정도면 상당히 훌륭한 마수걸이다.


동물원에 가면 볼 수 있으니 한국에서도 코끼리를 만나기가 어렵지는 않지만 그것이 아프리카 코끼리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아마도 현존하는 육상동물 중 가장 큰 체급을 자랑하는 이 녀석들은 한국에 단 한 마리도 살지 않는다. 사육하는 데에 워낙에 돈이 많이 든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 때문인데,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웬만하면 한국에서는 만나 보기 힘들 예정이다.


그 말인즉슨, 이 녀석들이 내 인생에 처음 만난 아프리카 코끼리인 것이다.



진흙으로 한바탕 몸을 씻어내더니 우리 쪽으로 조금씩 발걸음을 옮기는 녀석.


정말로 멋있..지만 줄어드는 물리적 거리에 반비례하공포는 커진다. 그다지 성격이 좋지 못하다고 알려진 이 녀석들이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일이다.



이 정도면 코끼리는 충분히 눈에 담았다고 생각하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코끼리 떼가 계속 나타난다. 시동을 건 지 1분도 되지 않아 나타난 새로운 무리. 그 뒤로는 다른 무리의 코끼리, 그보다 더 먼발치에 배경처럼 흩어진 아주 많은 수의 코끼리. 가도 가도 눈 닿는 곳마다 코끼리의 연속이다.


어느 순간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는 코끼리 무리에 둘러싸여 있었다.



한 2백 마리까지는 어떻게 한 마리씩 세어본 것 같은데 그 이상으로는 도저히 무리다. 얼추 3백 ~ 4백 마리 정도 되지 않을까 짐작만 할 뿐이다.


우리와 동행한 드라이버께서는 세렝게티에서만 30년의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런 드라이버조차도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이라고 하니, 될 놈은 역시 뭘 해도 된다.


세렝게티에 서식하는 코끼리의 수가 8천 남짓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이곳에 서식하는 개체의 5% 정도를 한 자리에서 보았다. 입장 서류에 찍힌 도장이 마르기도 전에 말이다. 다시 한번, 될 놈은 역시 된다.



코끼리가 진흙으로 몸을 씻어내는 것도 보고 화가 난 코끼리가 거칠게 나무를 쓰러뜨리는 것도 보았다. 두 마리의 코끼리가 상아를 부딪히며 피 터지게 싸우는 것도 구경했다. 어느 틈에 시간이 꽤 흘렀다. 바쁜 걸음을 다시 재촉해 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만난 기린들 역시 호기심이 많다. 이곳의 기린들은 대체로 호기심이 많다.



이 사진에는 한 마리의 맹수가 숨어 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덩치는 크지 않지만 완벽에 가까운 보호색으로 무장한 이 녀석은 세렝게티의 '빅5'라고 일컬어지는 꽤나 위험한 맹수 중 하나다.



한 시 반 즈음에 입장 도장을 찍었고 네 시간가량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도착한 우리의 첫 번째 야영지.


인터넷은커녕 GPS 신호조차 오락가락하는 허허벌판 어드메를 뚫고 도착한 곳이기 때문에 어디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맹수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줄 울타리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고, 텐트 하나 풀밭에 대충 펼치면 그게 잠자리가 된다는 것 역시 이곳에 도착해서야 알게 되었다.


한 가지 불행한 사실을 덧붙이자면 사진 속 텐트는 우리가 가지지 못한, 그토록 우리 것이길 원했던 아주 훌륭한 수준의 잠자리다.



여기는 남반구라서 지금은 여름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중인데 생각했던 것보다 해가 떨어지는 모양새가 분주하다. 아마도 본 적이 없는, 끝 모르고 펼쳐진 지평선을 넘어가는 노을과 마주하는 감상은 말로 설명이 쉽지 않다. 글빨도 영 시원찮은지라 묘사도 쉽지 않다. 그냥 직접 봐야 된다. 상상할 시간에 비행기표를 알아보는 게 조금 더 빠를 수 있다.



꽤나 피곤했던지라 간밤에는 변변히 건진 사진 하나 없다. 단지 새벽 세 시에 텐트 주변을 서성이는 하이에나 덕분에 우리가 밤새도록 공포에 떨어야 했다는 것만 기억에 남아 있다.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고 조명 시설이 없기 때문에 제대로 씻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기대 이상이다. 살아서 다음날 아침을 맞이하지 않았는가.


어차피 세렝게티 초원에서는 잘 보일 사람도 없다. 얼굴에 대충 물만 묻힌 채로 의자에 앉는다. 아침도 꽤나 그럴듯하다. 아니, 웬만한 호텔 조식만큼이나 괜찮다. 이건 아마도 우리의 쉐프께서 솜씨가 좋기 때문이다. 고마워요 에드워드.



비록 공포에 질린 밤이었지만 이곳이 아니면 언제 그런 경험해 볼 수 있을까. 무탈하게 밝은 아침의 안도보다 아직 찾아오지도 않은 남은 하룻밤의 공포가 더 크긴 하지만, 여튼 귀한 경험의 끝에 무사히 이튿날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세렝게티를 가로질러 응고롱고로 분화구까지 남하하는 하루가 될 예정이다.


분명히 작지 않은 코끼리 가족이지만 우리 일행의 머릿속은 이미 너무나 많은 코끼리로 꽉 차 버렸다.



이 녀석은 '건강아저씨'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새이다. 전혀 그렇지 않을 것 같지만 무려 황새, 근데 조금.. 벗겨졌다. 그래서 이 녀석의 본명도 '대머리 황새'이다.


아마도 아프리카에서 가장 흔한 새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특징이 있다면 참 못생겼다. 이런 말 할 처지도 안되고 미안하기도 하지만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싶을 정도로 못생겼다.



멀찍 나무 한 그루가 부자연스럽게 서 있더니 무언가가 더 부자연스럽게 걸터앉아 있다. 가까이 차를 몰고 가서 그 정체를 확인해 본다.


사자는 웬만해서는 나무에 올라가지 않는다고 한다. 내려오는 과정에서 척추가 부러질 수 있어서 높은 곳을 극도로 싫어하는 녀석들이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두 마리나 나무에 올랐다. 많이 당황스러웠다. 아무렇지 않게 널부러진 광경 앞에서 우리들은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멀뚱거리기만 했다.


300마리 남짓의 코끼리보다 이 광경이 더 귀했나 보다. 30년 경력의 드라이버 역시 핸드폰을 꺼내 이 녀석들의 모습을 담아내는데 여념이 없다. 그에 반해 비교적 경력이 짧았던 우리의 쉐프는 아마도 이 광경을 처음  듯하다. 우리는 꽤나 오랜 시간을 쉐프의 사진사가 되어야 했다.



어디선가 한 녀석이 어슬렁거리면서 지척으로 다가온다. 이 녀석들의 친구인가 보다.



혹시나 나무를 타는 귀한 광경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그렇지는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한 녀석이 몸을 일으켰다. 아마도 땅이 그리운가 보다.



흙냄새가 그리웠던 녀석은 꽤나 엉거주춤하게 나무를 타고 내려왔다. 동물의 왕 사자라고 하는데 나무에서는 해볼 만할 것 같다.



나무 위에 있을 때는 영 바보 같아 보였는데 땅에 내려오니 맹수는 맹수다. 우리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괜스레 움츠려 들게 된다.



잠시 화장실을 들리고 싶다 했더니 어디론가 향한다. 코이카에서 지어준 건물이다. 정작 단원인 형은 모르고 있었지만, 여튼 반가우니 사진도 하나 남겨 주었다.



이제 응고롱고로로 이동할 시간.


윈도우의 바탕화면을 닮은, 왠지 모르게 익숙한 길을 따라 우리는 한 시간 정도를 남쪽으로 남쪽으로 쉬지 않고 달릴 예정이다.



그렇게 쉬지 않고 달렸다. 만남과 이별이 교차하는 곳, 여기는 아마도 세렝게티에서 가장 많은 이들의 발길이 오가는 곳이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는다.


쉐프가 준비 도시락에는 샌드위치와 계란 한 알, 일정하지 않은 부위의 치킨 한 점과 마실거리 그리고 비스킷 한 봉지가 들어 있다. 역시나 될놈될이라서 나는 3일 내도록 닭다리를 먹었다.



지금부터 우리가 향할 곳은 응고롱고로 분화구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오래전 화산활동이 남긴 유산이다. 분화구의 지름이 약 20km 남짓, 면적은 8,100제곱km 정도가 된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칼데라를 품고 있는 이곳을 터전 삼아 수많은 동물들이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세렝게티에서 보던 것과는 조금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생각보다 얼룩말과 누가 많지 않아서 어디로 갔을까 궁금했는데 여기에 다 모여 있다.



가도 가도, 눈을 어디로 돌려 봐도 지천에 얼룩말과 누떼의 연속이다.



이 사진 속에 담긴 누는 세렝게티에 살고 있는 개체수의 5만 분의 1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문자 그대로 사방천지, 어디로 눈을 돌려도 누떼가 가득하다.



간밤에 우리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하이에나들도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하나같이 삶에 의욕이 없어 보이는데 손에 꼽만한 맹수라니. 뭐든지 겉모습만 가지고 판단은 안될 일이다.



이곳을 경계로 하여 세렝게티는 끝이 난다. 이내 마주하게 될 응고롱고로 역시 세렝게티의 연장이라서 완전한 이별은 아니다. 하지만 일단락의 순간이 찾아왔다는 생각을 하니 괜스레 시원섭섭하다.



그러니깐 사진을 찍어야 된다.



열심히 찍다.



안녕 세렝게티!


이 사진을 끝으로 응고롱고로로 향하는 여정을 시작한다.



오늘 말고 내일부터. 시간이 늦었으니 일단 오늘은 한숨 자는 게 먼저다.


야생동물들은 분화구 안쪽에서 그들의 삶을 이어간다. 그 말인즉슨, 그 친구들을 보기 위해서는 열심히 올라온 산능성이의 안쪽으로 다시 내려가야 된다는 말이다.


열심히 차를 타고 올라왔더니 시간은 이미 오후 다섯 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오늘의 야영지는 어제보다 형편이 낫다. 화장실과 식당 모두 조명이 환하다. 무려 콘센트도 있다. 당연히 와이파이도 된다. (?!) 샤워실은 우리집에서보다 따뜻한 물을 원 없이 즐길 수 있다.


생각하던 야생이 아니어서 실망





할 리가 없다.


나는 바로 이런 걸 원했다. 이곳은 정말이지 완벽한 야영장이다.



딱히 아쉬워하지 않아도 된다. 지나치게 문명화된 모습에 실망할까 봐 초대손님들이 자주 다녀가신다.



제 아무리 사람 나고 돈 났다고 하지만, 이곳에서만큼은 동물 나고 사람 났으니 이곳의 법칙에 잘 적응할 필요가 있다.



이 야영장이 녀석들의 맛집 중 하나인가 보다.



한가롭게 풀을 뜯더니 갑자기 피 터지게 싸움질을 시작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또 풀을 뜯는다. 이곳의 얼룩말들은 그렇다.



해가 떨어지풀밭은 버팔로들의 차지가 된다.


많지는 않았고 한 스무 마리 정도 됐는데 사자보다야 낫겠지 싶어서 조금은 안심이 됐다.



오늘의 저녁은 소고기가 들어간 카레.


우리 쉐프는 정말이지 요리 솜씨가 어마어마하게 좋다.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에드워드


세렝게티의 밤은 할 게 없다. 구름이 드리워서 맑은 얼굴이 허락되지 않은 하늘과 함께라면 말할 것도 없다. 식사를 마쳤으면 씻어야 하고, 씻었으면 얼른 텐트로 들어가 침낭 속에 몸을 구겨 넣으면 된다.


오늘 새벽도 화장실 생각 어김없다. 셋이 함께 일어나 텐트 밖으로 나서려는데 무언가 서성이는 소리가 귓전을 두들긴다.



버팔로가 아직도 집에 가지 않았다. 텐트 바로 앞에 이 녀석이 있었는데 눈이 마주쳤다.


실체를 확인하지 못한 하이에나보다야 눈앞에 있는 버팔로가 더 공포다. 지리지 않아서 다행이다.



세렝게티에서의 마지막 아침이 밝았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분화구.


넓다면 넓고, 좁다면 좁을 수 있는 이 공간 안에 얼마나 다양한 삶의 모습이 존재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내려가는 길이 꽤나 가파르다.


우리가 탄 차량보다 더 큰 낙석의 흔적이 가끔 보이기도 한다. 내려가는 동안은 기도메타가 답이다.



시작은 평화롭다.


가젤들이 뛰어놀고 그 뒤로는 누와 얼룩말들이 풀을 뜯고 있다.



물론 사자도 있다.


세렝게티의 5%가 조금 넘는 면적에다가 고립된 환경이기 때문에 비교적 다양한 모습을 빠른 시간 내에 볼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완벽한 야생의 모습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도 있지만 엄연히 그들만의 생태계를 구축하고 살아가는 친구들이다.



꽤나 위엄 있는 모습이었는데 역시 고양잇과가 맞다.



갑자기 어디론가 향하는 녀석


눈빛이 향한 끝에 수사자 한 마리가 힘 없이 늘어져있다. 미동하나 하지 않는 것을 보니 생이 다한 듯하다. 괜스레 마음이 아파지는 순간이다.



는 훼이크


그냥 겁나게 귀찮음이 많은 사자였다.



괜히 동물의 왕이 아니다.


사람들의 눈초리도 아랑곳 않고 제 갈 길 가는 이 녀석은 우리의 차량 바로 옆을 지나쳐 갔다.



그러나 한가롭고 평화로운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곳은 냉혹한 생의 투쟁이 매일 이뤄지는 엄연한 야생이다. 오늘은 한 마리의 누가 사자들의 아침밥이 되고 말았다.



자칼들이 서성인다.


정작 그보다 덩치 큰 하이에나 무리들은 암사자의 눈치를 보기 바쁘지만 우리의 용감한 자칼들은 그런 눈초리 따위 아랑곳 않는다. 아마도 이곳에서 가장 배불리 먹은 녀석들은 자칼들이 아닐까 싶다.



부지런히 이곳저곳을 유람하다 보니 하나 둘 잠을 청하기 시작한다.



언제 굶주린 사자 떼가 덮칠지 모르는데도 익숙한 일상인 냥 천하태평, 잠을 청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이 여정의 종착이 곧 가까워 온다는 뜻이기도 하다.



3일간 고생하신 우리의 드라이버는 마침내 세렝게티를 벗어나기 위해 악셀을 밟기 시작하였다.



2박 3일간 원 없이 즐겼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떠나려니 아쉽기 그지없다. 눈앞에 놓인 모든 것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써 본다.



이 비구름을 뚫고 저 산을 오르면 여정은 끝이 난다.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 많이 생각나는 순간이다.



이미 줄이 그어진 버킷리스트이지만 언젠가 또 마주할 날이 올 것이다. 그때는 조금 다른 의미를 담고 이곳을 찾게 되지 않을까. 부디 그럴 수 있기를.



안녕 세렝게티


우리 또 만나요.






세렝게티에서도 어김없이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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