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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혁 Aug 21. 2022

3년 만에 돌아온 제천국제음악영화제, 'A TEMPO'

평범할 시간





구름을 뚫고 간만에 맑은 얼굴을 비추는 하늘. 그 아래에 가던 길을 부지런히 재촉하는 열차 한 대.


넋 놓기 좋은 여름이다.



간만에 인사드립니다만 처음 뵙습니다.


내가 알던 작고 소중한 제천역은 더 이상 없다.  대신 천장이 높고 통유리 외벽을 가진, 새로 지은 역사가 허전한 존재감을 대신하고 있다.



역사를 벗어나자마자 현수막 하나에 발길이 멈췄다. 그 자리에서 한참을 멈춰 섰다. 시선을 달리 둘 생각도 하지 않았다.


노래 한 곡 들을 만큼의 시간을 흘려보냈다. 인사 한 마디를 건다. '다시 만나서 좋네요'



제천에는 해마다 영화제열린다. 주제는 음악과 영화, 이름은 '제천국제음악영화제'로 아주 직관적이다.


제천에서 열리는 국제적인 규모의 음악과 영화를 주제로 한 영화제. 나는 그 축제에서 자원활동가로 일 한 적이 있다. 2011년이었으니 벌써 11년 전의 일이다.


영화제가 엮어준 인연의 타래가 생각보다 질기다. 여름만 되면 나를 어김없이 제천으로 불러들인다. 그렇게 한 두 해 쌓인 시간을 돌이켜보니, 제천으로 향하는 버스는 어느새 한 해가 무사히 반환점을 지나고 있음 알리는 이정표 되어버렸다.



역을 빠져나와 20분 남짓을 걸었다. 영화제의 주무대가 되는 메가박스 도착. 어김없이 걸린, 특별하거나 유난할 것 없는 현수막언제나처럼 나를 반긴다.


하지만 바라보는 감상 유별하다. 지난 2년 간 열린 이 시국 영화제는 온라인 세상에서만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마주하는 것은 3년 만의 일이다. 풍파가 모질었지만 어떻게든 견뎌냈다. 이 재회가 그저 감사할 뿐이다.



제천에 도착하면 언제나 방명록 쓰듯이 찾는 막국수집에 발도장을 찍었다. 못 본 사이에 가격이 많이 올랐다. 한 번도 가격표가 덧씌워진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메뉴판을 보면서 느끼는 시간의 속도가 새삼스럽다.



해마다 즐기던 청풍호반 무대가 올해는 없다. 그 빈자리는 제천비행장이 대신하고 있으니 공연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썩 내키지 않는다. 처음으로 공연 없이 즐기는 영화제다.


하지만 3년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라는 걸 간과했다. 내가 알던 비행장이 아니다. 이렇게 잘 꾸며놓은 줄 미리 알았으면 생각을 고쳐먹었을 텐데.



산허리를 미끄러져 내리는 오후의 볕이 곳곳에 붉은빛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익숙한 시간의 눈에 익은 풍경, 고향은 아니지만 고향에 돌아온 것 같은 마음이다.



비가 한바탕 쏟아진 건 불과 며칠 전의 일이다. 한가득 쏟아지는 물줄기 귓전을 때리는 기세가 굉장하다.


자원활동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폐막식의 순간, 의림지에는 정말 많은 비가 내렸다. 얼마나 살벌하게 쏟아지던지 빗줄기를 뚫고 울려 퍼지던 폭포 소리는 살짝 겁이 날 정도였다. 간만에 돌아온 제천에서 시작하던 시절의 장면을 다시 마주했다. 11년 만이다.



어스름이 내린 의림지를 아무 생각 않고 걸었다. 그냥 걸었다.



이 친구를 보고 있으니 정말로 영화제가 돌아왔음이 실감 난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단편이지만 그토록 애타게 기다렸다. 별일 없어서 다행이다.



무대 위에 악기와 연주자들이 돌아왔다. 지휘자가 이끄는 선율이 돌아왔고, 그 선율이 울려 퍼지는 사이로 관객들이 돌아왔다.



A TEMPO, '본래의 빠르기로'


멈춰있던 것들이 하나 둘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멈춰 있던 탓에 가끔은 삐걱거리기도, 이따금 현기증이 나기도 하지만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는 중이다.


A TEMPO, 다시 돌아갈 시간이다.



반갑지만 낯설다. 하지만 괜찮다. 돌아왔으니깐 괜찮다. 새로 신은 신발이, 새로 걷는 길이 낯설기는 매한가지다. 하지만 천천히 같이 걸어보면 된다. 그러니깐 괜찮다.



돌아오는 일상을 축하하고 싶다면 함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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