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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혁 Apr 25. 2017

여행을 가다. 제주도, 두번째

제주도 '17.02.22(수) ~ '17.02.24(금)


그 전 이야기



둘째날 아침이 밝았다.


'애월항'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은 이름의 게스트하우스 덕분에 널찍한 곳에서 편하게 잘 묵을 수 있었다. 비록 난방을 해준다 하였지만 까먹으신건지 조금 추웠지만 말이다.



저녁 아홉시만 되어도 동네 전체가 암흑에 잠기는 곳에서 아침 여덟시에 문을 연 식당이 있을리가 없다. 웬만해서는 아침을 먹지 않지만,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 편의점에 들러 간단한 아침을 먹기로 한다.



요즘같은 때에, 계란만 벗겨먹어도 충분히 본전 뽑는게 아닐까 싶어서 밥은 조금 남겼다.


제주도 편의점에 한가지 놀라운 사실이 있다면, 신선식품들이 육지에서 만들어져서 섬으로 들어오는 것인지 바로바로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 (그 뒤에 알아낸 사실로는 제주도 편의점에 납품되는 도시락들은 제주도내에서 생산이 되어 납품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사실 제주도까지 도시락이 만들어져서 진열이 될 수 있는 것만 해도 눈이 부시게 발전한 현대 물류의 총체라고 생각하는 바, 나는 아침바람에 편의점 도시락을 먹을 수 있게 된것만 해도 눈물나게 감사할 뿐이었다.



아침이 밝아오지 않기를 바랐다. 애월항 언저리에서 출발하여 약 16km를 걸어야 완주할 수 있는 제주 올레길 16코스를 걸어야 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그렇지만 지구의 자전이 멈출리 없기에 아침은 어김없이 밝아왔고, 나와 동생은 무거운 마음을 한아름 안고 고내포구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근 10년만에 제주도의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게 되어 신이 난 동생과 나. 는 도무지 푸근해질 생각을 않는 미친 바닷바람을 버티지 못하고 걸은지 오분도 되지 않아 실성을 하고 말았다.



여행이고 나발이고 살아야겠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아무 카페나 들러 잠시 몸을 녹이기로 한다. 근데 하필 알라스카 인 제주. 제주도에서 가장 추운 곳이라서 이런 이름을 지은것이라면 아주 완벽한 작명이라고 생각한다. 이름처럼 아이스크림으로 굉장히 유명한 곳이란다.



언 몸을 녹이기 위해 시킨 한라봉차는 나보다 미니언놈이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죽자고 달려드는데 막을 재간이 없다. 정말 한라봉으로 차를 만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유자차다. 맛있는 유자차. 어릴때 설탕에 잔뜩 절여진 유자청에 뜨거운물을 부어서 우려낸 맛있는 유자차. 그 유자차 맛이다.



이곳에는 안타깝게도 북극곰 두마리가 학대를 당하고 있다. 고향 생각이 간절한지 녀석들은 그들의 힘으로 열어젖힐 수 없는 유리창 너머의 세상을 관조하는 것으로 하루의 대부분을 소일하는 듯 하였다.



'엄마.. 우리는 언제쯤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나요..?'

'넌 자유으 모미 아냐. 여태까지 그래와꼬, 아패로도, 계쏘..'



한시간 쯤 지났을까. 마침내 하늘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살을 에는듯한 추위와 피부를 찢어놓을 것 같은 매서운 바람은 여전하였지만.



북극곰이 세마리나 학대를 당하고 있는 이곳은 참혹한 동물권유린의 현장이 아닐 수 없다. 이를 고발하기 위해 다음 제주도 여행길에 반드시 다시 와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잰걸음으로 길을 나선다.



일을 하러 온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사진도 놓치지 않는다. 제주도 땅을 밟은지 근 열여섯시간이 다 돼서야 마수걸이 사진을 개시하였다.



볕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바람은 매섭다. 카페 문을 나선지 3분도 되지 않아 다시 실성해버린 동생과 나. 넋나간 웃음과 함께 제주의 겨울 바다를 만끽해본다. 만끽할 수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그럴 정신도, 틈도 없이 셔터만 눌러대기 바빴다.



사진만 다시 보아도 추위가 전해지는 것 같다.



길을 따라 걷기 시작한지 얼마나 지났을까. 십년 전 배를 타고 제주도에 건너와 부지런히 자전거 페달을 굴려대던 나의 시선 끝에 장엄하게 펼쳐지던 모습이 다시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 부분인데, 예나 지금이나 제주의 자연은 한결같이 아름답다.


추운것만 빼고



포말이 항구를 삼킬듯 일렁이며 절벽을 때려대는 매서운 파도는 쉴새없이 해안가로 몰려들었다. 실성한 정신의 끈을 붙잡을 새 없게 만드는 미친듯한 바닷바람은 더 꾸준하였다. 절벽의 끝에 올라 장엄한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마치 오마하 해변에 상륙작전을 앞둔 연합군 병사가 된 듯 하여 괜히 비장한 기분이 일.. 새도 없이 그냥 춥다. 정말, 무척, 너무나 추웠다.



이 얼마나 좋은가. 제주의 겨울은 여러분을 반긴다. 반드시 떠나자. 제주는 겨울에 떠나는 것이 제맛이다.



별 다른 말의 성찬이 필요없다. 가장 좋은 제주는 역시 겨울에 떠나는 제주이다. 차도 필요없다. 튼튼한 두 다리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놔두고 그냥 갈 수는 없는 법. 가방 녀석의 모습을 또 한번 뷰파인더 안에 잡아보기로 하였지만 바람에 날려갈 뻔 한 모습을 두어번 본 이후로는 겁이 나서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제주에는 재미난 커피집이 있다. 엔제리너스는 어디에서 영업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절벽 위로 난 길을 따라 걷다보면 올레길임을 알리는 표식들이 이곳 저곳에 매여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사연을 실어나르면서, 때로는 그들의 이야기 위에 살포시 내려앉기도 했을 저 조그마한 표식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춥다. 너무 춥다.



길을 걷다 만난 강아지 녀석들. 꽤나 오랫동안 지내온 벗들인지 추운 제주의 바람을 맞으며 울퉁불퉁 솟아있는 돌부리 위를 한가롭게 노니는 모습이 추워보였다... 하.. 추워라..



두시간 쯤 걸었을까. 바다를 끼고 조성된 올레길인지라 그 모습이 꽤나 단조로웠고, 종종 발걸음을 멈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하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던 찰나에 새로이 만난 작은 어항.



아주 잠깐의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마침내 바람이 조금 잦아들었기 때문. 초점 없이 흩뿌리는 것 같았지만 너무나 오랜 시간 추위에 지쳤던 탓인지 그 잠깐 내리쬐는 볕조차 너무나 반갑게 느껴졌다.


차갑게 식은 몸을 어설프게나마 데우면서 지도를 확인해본다. 굳이 이 추운 겨울 바닷바람을 뚫고 발걸음을 옮기게 만들었던 이유, 구엄리 돌염전이 멀지 않았다.




어디에서든 어김없이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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