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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혁 Mar 09. 2017

여행을 가다. 제주도, 첫번째

제주도 '17.02.22(수) ~ '17.02.24(금)


근 십년만에 제주도를 다녀왔다. 텐바이텐에서 '제주여행'을 주제로 기획전을 진행중인데, 내 가방도 참여를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상세페이지를 다시 한 번 살펴보던 중, 조금 민망할 정도로 여행지에서 찍은 제품 사진이 없었던 바 간만에 여행도 하고 제품 사진도 촬영을 할 겸 해서 길을 나서게 되었다.


워낙에 갑작스러웠던지라 계획 같은 것은 없었다. 적당히 소셜커머스를 뒤적거리다가 적당한 날짜와 적당한 가격의 비행기표를 고르고, 그나마도 귀찮아서 숙소는 비행기가 뜨기 하루 전날이 되어서야 부랴부랴 예약을 하였다. 차를 빌리고 싶은 마음에 동생에게 조심스레 차량 대여 품의를 올려보았으나, 나의 면허증은 취득 9년째 장농에서 나올 생각을 않고 있다는 것을 잘 아는 그녀의 완강한 거부에 부딪혀 재가를 득하지는 못하였다.


그리하여 결정된 제주도 도보 여행. 적당한 올레길을 하나 택하여 걸어보기로 하였다. 십년 전, 두 다리 부러지게 페달을 굴러가며 제주도를 한바퀴 완주하며 이십대 후반에는 운전대를 잡고 제주도를 여유롭게 즐길 수 있겠거니 싶었는데, 주인을 잘못 만난 가여운 두 다리는 한 순간도 쉴 틈이 없다.


출처 : 제주올레길 공식 홈페이지


지도를 펼쳐놓고 어느 길을 따라가면 좋을지 고민을 해보려 했지만, 마땅히 고민을 할 이유가 없었다. 차가 없이는 도저히 움직일 방법이 마뜩찮은데다가 심지어 일정까지 촉박하여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 이런 저런 이유로 하나씩 지워나가다보니 남은 선택지는 제주시에서 그나마 버스를 타고 가볼 수 있겠다 싶은 16 ~ 20 코스 뿐. 결국 숙소가 있는 애월항에서 가장 가까운 16코스를 걸어보기로 했다.



운도 지지리도 없지. 한 주 내도록 구름 한 점 없이 맑던 하늘이 갑자기 잔뜩 찌푸렸다. 귓전을 스치는 바람도 심상치가 않은 것이, 과연 오늘 무사히 제주도 땅을 밟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아니나 다를까, 집을 나서자마자 지연이 되었다는 문자로 핸드폰이 요란하다.



끝없이 요란하였다. 오늘 제주 땅을 밟을 수 있을까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천만다행으로 두 번의 연착 후 더 이상의 문자는 날아오지 않았다만 악천후를 뚫고 날아올라야 한다. 비행기 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지라 차라리 취소가 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지만 별 의미없는 후회. 이미 비행기는 김포공항의 활주로 위에서 관제소의 이륙 허가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나마 A320 시리즈 중 가장 대형 기재인 A321, 그 중에서도 비상구 좌석으로 발권을 받은 덕분에 두 다리가 자유로울 수 있었다는 것은 위안할 만한 것이었다.



하늘로 날아오는 비행기는 힘 좋은 스윙 한번에 시원스레 하늘로 솟아오른 야구공과 비슷한 궤적을 그리며 순식간에 제주 땅에 안착하였다. 제주에서 김포로 향하는 비행기들이 무더기로 연착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제주의 하늘도 시원찮겠거니 생각은 하였지만 기대 이상으로 시원찮다. 내 두 뺨을 사정없이 훑어대는 바닷바람이 서울의 그것보다 더 싸늘하게 식어있었다는 것은 기대에도 없던 덤.



설상가상으로 제주의 대중교통은 그 체계가 끔찍하리만치 엉망진창이다. 시외버스터미널을 제외하면 제주에서 가장 많은 버스가 모이고 흩어지는 곳일텐데, 전광판에 선명한 두자릿수의 도착예정시간을 보는 순간 충격과 공포로 온몸이 얼어붙지 않을 수 없었다.



애월항까지 얼마 되지 않는데 그나마도 환승을 해야한다. 을씨년스럽게 빛바랜 하늘에 쉬지 않는 빗방울. 반려된 차량 대여 품의를 지금이라도 다시 올려볼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공항에 내려 버스만 두어번 갈아탔을 뿐인데 어둠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관광객들이 찾을 이유도 마땅히 없는 이곳의 밤하늘에 조금의 흔적을 보태고 있는 것은 생뚱맞게도 프랜차이즈 빵집의 간판이었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자마자 저녁을 먹기 위해 길을 나섰다. 저녁 9시도 되지 않은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작은 항구마을은 완벽히 어둠에 잠기었다. 마땅한 선택지가 없었기에 고민을 할 수 있는 여지도 얼마 없다.



아무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제주에서 가장 음식이 만족스러웠던 곳. 매운탕과 물회는 물론이거니와 기본찬으로 식탁에 올라온 음식들마저 너무나 맛있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이곳의 음식은 충분히 훌륭했다.



요즈음은 전국 어디에서든 볼 수 있지만, 그래도 역시 한라산은 제주에서 만나야 한다.



말이 좋아 여행이지, 그야말로 사서 고생하려고 비행기까지 타버린 나의 결정을 후회하면서 KGB 한 병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하였다. 내일은 더 춥다는데 대체 얼마나 걸어야할지 감도 오지 않는다. 그렇게 고생하면 내가 필요한 사진을 몇 장이나 건질 수 있을까. 정말 다음날 아침이 밝아오지 않았으면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지만 별 수 없다. 한숨 한 번 쉬고 오지 않는 잠을 애써 청한다.




어디에서든 어김없이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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