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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혁 Jan 18. 2017

가장 '홍콩'의 삼수이포 포장마차

눈이 아플 정도로 원색의 강렬한 네온사인이 밤하늘을 밝히는 거리. 피크 트램에 올라 홍콩의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는 모습은, 마치 '가장 화려함'을 정의하기 위해 태어난 도시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쉴 새 없이 끓는 빛의 용광로. 아마도 홍콩을 떠올리는 데 가장 편리한 문장과 단어가 아닐까 싶다.


홍콩의 밤이 매력적인데는 이 불빛이 7할은 차지하지 않을까


홍콩의 빛이 매력적인 이유는 세련되지 않은 인공의 밤이 있기 때문이다. 홍콩에서는 홍콩섬과 신계 지역 일부, 스탠리와 같은 휴양지를 제외하면 새 것 같은 공간을 만나기가 의외로 쉽지 않다. 영웅본색과 같은 80년대 홍콩 영화 속 단편들이 지금도 영화 속 모습 그대로 나이만을 더하고 있는 홍콩이다. 기약 없이 살아야 한다면 그닥 달갑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잠시 스쳐가는 손님인 나에게 낡은 거리의 네온사인은 한 무리의 흥청보다 더 마음을 일렁이게 한다.



대부분의 홍콩은 매력이 있다. 그 중에서도 삼수이포(나는 항상 '샴슈이포'라고 읽었는데, '삼수이포'라고 읽는 듯하다.)는 유난하다. 홍콩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지 중 하나로서 80년대에서 시계태엽을 조금 더 감아야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낡고 오래된 곳이다. 황학동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정겨운 풍경 위에 중국어가 잔뜩 쓰인 간판들이 묘한 인상을 자아내는 곳이기도 하다. 삼수이포는 그런 곳이다.


몽콕에서 Tsuen Wan 선을 타고 불과 두 정거장을 더 올라가면 만날 수 있다. 몽콕처럼 유명한 쇼핑몰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름이 많이 알려진 것도 아닌, 그래서 딱히 갈 일은 없었던 곳이다. 지하철을 타고 오가는 와중에 익숙한 이름이긴 했으나 이름 하나 익숙한 것이 전부인 동네였던 것이다.


그런데 지난 홍콩 여행에서 마침내 삼수이포에 발을 디딜 일이 생겼다. 여자친구의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를 삼수이포에 위치한 어느 포장마차에서 갖게 된 것이다. 홍콩에서 공부한 여자친구의 대학 다닐 적 기숙사 룸메이트와 함께 말이다.


애문생. 무슨 뜻인지 한동안 고민해 보았지만, 여전히 모르겠다.


그런대로 비는 막을 수 있을 것 같이 얽어진 천막 아래에 놓인 익숙한 둥근 탁자와 플라스틱 의자. 우리나라에 포장마차가 있다면 홍콩에는 다이파이동이 있다.


그들의 사는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 끊임없이 쏟아져 홍수를 이루는 곳. 맛있는 술과 음식이 있어 그 즐거움을 더하는 곳. 마치 홍콩에서 나고 자란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드는 곳. 가장 '홍콩'의 다이파이동을 삼수이포에서 만났다.


지도가 없이는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여자친구의 룸메이트였던 Kathy가 우리를 데려간 곳은 삼수이포에서 꽤나 유명한 '愛文生'. 역에서 10분 가량을 걸어서 식당에 당도하니 이미 저녁시간을 즐기고자 모인 동네 사람들로 왁자지껄하다.


놀랍게도, 저 많은 사람들이 자리가 나길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길가에 펼쳐진 자리가 꽤나 인상적이다. 행인들이 의자와 탁자 옆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고, 바로 옆 차도에는 자리가 나길 기다리는 사람들과 그 무리를 비집고 갈길 바쁜 차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마치 편의점에서 산 맥주를 친구와 나눠마시는 것처럼 그들의 일상은 무척이나 자연스럽다.


꽤나 볼만한 구경거리가 된다.


특이하게도 주방이 길가에 있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손님들의 주문에 두 명의 요리사들은 웍을 손에서 놓을 새가 없다. 호객행위의 일환으로 의도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한국에서 마시는 카스나 하이트보다 이게 저렴하다.


역시 맛있는 음식에는 술이 빠질 수 없다. 홍콩에서는 '블루걸'이라는 맥주를 아주 많이 마시는데 우리는 산미구엘을 시켰다. 여담이지만 홍콩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맥주인 '블루걸'은 한국의 OB맥주에서 산한다.


무엇 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음식들이다.


깐풍기 비슷한 음식과 조개볶음, 오징어튀김, 마지막으로 홍콩 사람들이 많이 먹는 채소 중 하나인 '초이삼' 볶음을 시켰다. 언제나 바다와 벗하는 동네인 홍콩이라서 해산물을 아주 쉽게 접할 수 있다. 나처럼 해안가에서 나고 자라 고기보다 해산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꽤나 흥겨운 소식이다. 게다가 홍콩 음식은 한국 사람의 입맛에 잘 맞기 때문에 어떤 음식을 시켜든 실패하는 일도 잘 없다. 여러모로 흥겨운 일이 많은 홍콩의 다이파이동이다.


물론 아주 많이 배가 불렀다.


맛있다. 개인적으로 조개는 썩 입맛에 맞지 않았지만 다른 음식들은 아주 맛있었다. 음식의 양이 그리 많지는 않다. 네 접시를 시켰지만 세 명이서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양. 그나마도 거의 반을 나 혼자 먹은 것이나 다름 없으니 건장한 성인 남성 세 명이 찾았다면 아마 네 접시의 음식으로는 부족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덕분에 더욱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맛볼 수 있게 될 테니 오히려 좋아.


매일 밤 환한 불을 밝힐 것이다.


혹 누군가 홍콩의 일상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끼고 싶다면 정말 강력하게 권하고 싶다. 삼수이포로 가라. 그리고 다이파이동을 찾아라. 그곳에는 우리들의 평범한 저녁이 있다.




어디에서든 어김없이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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