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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혁 Jan 12. 2017

홍콩서 살게 된다면 이곳에서. 스탠리

홍콩으로 떠나는 2박 3일에서 3박 4일의 여정을 계획한다면, 아마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이곳은 꼭 찾지 않을까 싶다. 홍콩섬 남단에 위치한 몇군데의 해변이 바로 그것인데,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홍콩섬이지만, 이곳의 바다가 주는 인상은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한번쯤 살아보고 싶은 동네. 바로 스탠리이다.



스탠리로 가는 방법은 꽤나 다양하다. 홍콩섬 북단 중심가에 위치한 애드미럴티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오션파크 역으로 이동한 후 미니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방법. 혹은 차이완 역에서 미니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방법. 그 어느 길을 택한다 해도 스탠리에 닿기 위해서 필요한 시간은 한시간 남짓이니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리펄스베이를 먼저 둘러보고 싶다면 애드미럴티 역에서 이동하는 것이 조금 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광동어가 익숙하지 않다면 이용하는게 조금은 부담스러울지도 모른다.


홍콩섬의 북동부는 한번도 가본적이 없었던지라 어떤 곳인지 궁금했던 바, 지하철을 타고 종점인 차이완역까지 이동하기로 했다. 별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지하철역을 나서니 기대를 하지 않은 이상으로 놀라우리만치 별 것 없는 광경이 펼쳐진다. 그곳에서 스탠리를 가기 위해서는 '16X'번 버스를 타야한다. 육중한 몸집을 이끌고 거리를 활주하는 대부분의 시내버스와 달차이완에서 스탠리 사이를 오가는 그것은, 지금 당장이라도 하교 시간에 맞추어 학생들을 학원으로 실어날라야 할 것 같이 생긴 조그만 콤비버스이다.


요금은 9달러. 한국 돈으로 1,400원 정도 하는데 이 미니버스는 안내가 친절하지도 않을 뿐더러 영어도 거의 통하지 않기 때문에 광동어가 익숙하지 않은 나같은 사람은 꽤나 탑승이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16X 버스는 종점이 스탠리이기 때문에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목적지를 잃을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도로를 굴러다니는 자동차인지, 농기계인지 그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투박한 엔진소리와 함께 버스는 스탠리를 향해 달린다. 출발하자마자 냅다 산으로 꽁무늬를 빼기 시작하는데, 길섶으로 공동묘지가 지천이라 이 버스의 종착은 내가 누울 묏자리가 아닐까 조금 음산한 기운이 일기도 하지만 걱정하지 말자. 스탠리에 닿기 위해서는 단지 산을 따라 굽어진 길을 넘어가야 할 뿐이다.



정점을 지나면 저 멀리에 조금씩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상상만으로도 환상적인 전경이 자연스레 그려지는 화폭 한켠에는 여지없이 고급스러운 호텔과 고층 아파트가 자리한다.



얼마를 더 달렸을까. 버스가 멈춰선 곳에는, 가만히 서있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탁 트이는 시원한 해변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 넓지는 않았지만 잘 정돈되어 있고, 아름다웠다.



이곳은  강한 바닷바람이 쉬지않고 불어온다. 윈드서핑 같은 활동을 즐기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아무리 홍콩의 겨울이 한국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고 해도 한기가 조금씩 느껴지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꽤나 신기한 경험이었다.



잠시간 즐긴 해변을 뒤로하고 관광객 무리를 따라 인도를 걷다보니 작은 시장을 만나게 되었다. 기념품을 파는 매장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거진 그림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공방이었다. 둥글게 말아서 지환통에 담아준다고 하는 것 같기는 했는데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그림을 사서 한국까지 들고가려고 할지, 지금도 상상이 잘 되지는 않는다.



고양이가 생선가게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고, 재밌게 생긴 가방들 앞에서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멈춰선다. Cote & Ciel의 디자인을 그대로 본따서 만든 것 같은 출처와 국적이 불분명한 가방과 함께 다양한 색깔의 부엉이들이 벽에 잔뜩 걸려있었는데, 한국으로 돌아갈 때 짐이 늘어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지갑을 열 뻔 했다.



계속 발걸음을 옮겨 시장을 빠져나오면 마치 새로운 세상으로 통하는 문을 연 것 처럼 사뭇 다른 풍경을 만나게 된다. 그리 넓지 않은 만을 따라 형성된 작은 마을이 바로 그것인데, 이런 곳이라면 한 번 쯤 살아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안락해보였고, 공간을 둘러싼 모든 것이 즐거워보였다.



한걸음씩 옮긴 발걸음의 끝에서 만난 광장. 크리스마스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묵은 해를 떠나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는 설렘이 가득했던 그 공간은 흥겨움으로 한껏 달아올라 있었지만 사람이 너무나도 많았던 탓에 나는 그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는 것 만으로도 진이 빠졌다.



모두가 다 가는 곳이라 해서 내가 꼭 가야할 필요는 없다. 물론 아주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라면, 그곳은 그럴만한 이유가 어느 정도는 있다는 것이 합리적인 추측일 것이다. 항구도시에서 나고 자란 탓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딱히 해본 적 없는 스탠리였지만, 이곳은 그런 이유와는 별개로 한 번 쯤 찾을만한 이유가 있는 곳이다.





어디에서든 어김없이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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