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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혁 Sep 18. 2018

여행을 가다. 후쿠오카, 마지막

후쿠오카, '18.09.03(월) ~ '18.09.05(수)



파란만장하기 그지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탈 때 까지 이 한 몸 건사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별 일 없이 아침을 맞이한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새삼 깨닫는 마지막 날의 아침이 밝았다.



어김없이 달궈진 후쿠오카의 아침. 꽁꽁 닫힌 하늘에서 억수가 쏟아지는 것에 비할 바는 결코 아니다만, 그렇다고 이 온도가 마냥 유쾌한 것도 아니다.



불과 한 시간 전만 해도 출근하는 사람들로 북적였을테지만 그들의 자취도 남지 않은 이곳 거리는 한산하기만 하다.



시간이 촉박하기에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 마땅찮다. 마침 역에서 멀지않은 곳에 자리한 미술관이 눈에 띄었고,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금일은 휴관일입니다.



미술관 입구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구경 한 번 못해보다. 과연 이곳에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데, 아마도 후쿠오카 아시안 미술관에 대한 기억은 저 사진 한 장으로만 남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젯 밤에도 지나온 곳인데, 분 시선마저 같은 곳에 두고 있음에도 생경하다. 딱히 아쉬운 것은 아니지만 한 걸음 내딛기가 쉽지 않다.



원래 안되는 날은 뭘 해도 안되는 법이다. 기간제 대중교통 이용권은 개시 시간을 기준으로 종료 시간을 따지는 것이 일반적이다보니 이곳의 지하철 이용권 역시 그러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720엔이나 주고 샀다. 몇 번 타지도 않았다. 본전도 못 뽑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시 마음이 쓰려왔지만 그보다 더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점심 먹을 돈을 제외하면 수중에 남겨둔 현금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



잠시간의 고민 끝에, 운동화 끈을 동여맨다. 하카타 역까지 지하철로 두 정거장이고 공항까지 지하철로 네 정거장밖에 되지 않는다. 미술관에서 아낀 시간을 가장 가치있게 쓸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 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나는 다시 한 번 느린 걸음의 여행자가 되었다.



조금 더 멀어진 것 같은 하늘 덕분에 자꾸 위를 올려다보게 된다. 잘 눈에 띄지는 않지만, 가을은 땅에서 먼 곳 부터 조금씩 내리고 있다.



하카타에서 꽤나 유명한 장소로 알고 있는데 생각과 다르게 조금 허름해보인다. 시간이 너무 이른 탓도 있겠으나 지나치게 한산하다. 굳이 내 시간을 할애할 필요가 느껴지지 않는다. 제주도보다 편하게 올 수 있는 곳후쿠오카이 만큼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있겠지 싶어서 가던 발걸음을 계속 옮기기로 한다.



다시 찾은 하카타역. 맑은 하늘 아래에 놓인 이곳의 풍경을 여정의 마지막이 되어서야 만나게 되었다. 이 곳에서 점심을 해결할 요량이었지만 막상 식당을 찾으려 하니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다.



이렇게 된 이상, 공항으로 간다. 오렌지의 향을 담은 포도당 용액아 나에게 힘을 다오.



주머니를 탈탈 털어보니 생각보다 더 휑하다. 급한대로 얼렁뚱땅 먹어치운 이 주스 한 잔이 이곳에서 먹는 마지막 식사가 되면 어떡하나 싶은 불안감이 갑자기 엄습했지만, 그래도 한 번 붙은 관성을 제어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에 가던 걸음을 부지런히 재촉한다.



하카타의 '캐널 시티'라는 이름은 정말 잘 지은 듯 하다. 후쿠오카의 어딜 걸어보아도 강이 등장하지 않는 곳이 없고, 이들의 일상을 사진으로 남기는 동안에도 강이 배경에서 빠지는 경우가 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무수히 많은 강이 바다로 흐르는 이곳. 더 할 나위 없다.



이름이 익숙하다. 내가 아는 그곳인가 싶어서 조금 찾아보동일한 업체일 뿐 아니라 그 역사가 시작된 곳이 다름 아닌 일본이다. 심지어 본사는 도쿄가 아니라 오사카에 있다고 한다. 내가 아는 로고가 아닌지라 어딘지 모르게 생경했는데, 알고보니 전 세계 50개국에 진출해 있으면서 저 웃는 아이의 모습을 로고에서 찾아볼 수 없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한다.



미간을 가만히 놔둘 틈을 허락하지 않는 땡볕의 고약함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순조로웠던 이 도보여행의 끝이 가까워 온다. 하늘을 박차오르는 비행기의 소리와 형체가 점점 크기를 더해가는 모습을 보아하니 공항이 멀지 않은 듯 하다.



그런 줄 알았다. 분명히 비행기가 멀지않은 곳에서 날아오르고 있는데,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저 멀리에 공항이 보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손에 닿을 듯, 잡힐 듯 정말 가까워진 공항. 여행의 끝이 정말 가까워 온다.



정말 그런 줄 알았다. 혹시나 무리하려는 생각을 가진 분들이 계신다면 완곡하지만 단호하게 말씀드리고 싶다. 지하철 요금 얼마 하지도 않고 별로 멀지도 않으니깐 웬만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하자. 이곳은 정말이지 걸어서 올 곳이 못 된다.



공항을 마주한 마음이 이렇게 각별한 적이 있었던가. 이것은 드디어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안도감이 한 몫 했겠으나, 아마도 무사히 걸어왔다는 것에 대한 대견한 마음이 더 크지 않았을까 싶다.



우려한 것 처럼 공항 식당의 가격표는 무자비했다. 돌고 돌아 자리한 곳은 요시노야. 그래도 이곳과 이별하는 길을 생맥주 한 잔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이곳 후쿠오카 공항은 마지막까지 여러모로 좋지 못한 인상만을 잔뜩 안겨다 주었다. 말로 풀어내자면 정말 한도 끝도 없겠으나 일을 두 번 하는 것을 끔찍히도 싫어하는 나에게 이곳은 가히 재앙과도 같은 곳이었으니, 과연 앞으로 다시 찾을 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도시가 너무나도 마음에 들지만, 이 관문의 존재가 이곳을 다시 찾고자 하는 나의 욕구에 커다란 진정을 가져다 줄 만큼 말이다.


그렇지만 아마 다시 찾게 될 것이다.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이 상당히 많은 도시이기 때문에. 그 날을 기약하며 비행기는 후쿠오카의 하늘을 날아올랐다.




어디에서든, 어김없이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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