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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혁 Nov 07. 2018

여행을 가다. 베트남 하이퐁, 마지막

하이퐁, '18.10.15(월) ~ '18.10.17(수)



어떻게 간밤이 지나갔는지 모르게 아침이 밝았다. 전날의 여정이 꽤나 가혹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친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가방을 들쳐 메고 길을 나섰다.


전적으로 숙소의 덕이었다. 바퀴벌레와 모기를 벗 삼아 지새운 하룻밤은 도저히 견딜 만한 수준이 되지 못했다. 잠자리를 웬만해서는 가리지 않지만 도저히 버틸 수 없었다. 동이 트기만을 기다려 날이 밝기가 무섭게 탈옥수처럼 숙소 문을 빠져나오고 말았다.


이런 식으로 당할 줄은 몰랐다. 위치도 좋고 가격도 합리적이었다. 결정적으로 투숙객들의 평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평점을 남긴 이들의 진정성에 의문이 든다. 아마도 열쇠 달린 문이 있고 방에 침대만 있으면 아무렴 상관없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평이었나 보다.



나나 친구나 시달리기는 매한가지였다. 덕분에 둘 다 몰골이 말이 아니다. 피곤에 찌들어 정신이 반쯤 나가 버린 몸뚱아리를 이끌고 힘겹게 목적지로 향했다.



어제는 되는 날이더니 오늘은 안 되는 날이다. 굳이 번거로움을 마다하고 섬까지 찾아온 것은 이런 끔찍한 환경파괴의 현장을 목도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면 이번 여 마지막 사진의 배경이 되었을 것다. 하지만 불행히도 내 생각은 틀리고 말았다. 깟바섬 남부의 모든 해변은 리조트를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처참하게 파헤쳐지고 있었다. 할 말을 잃게 만드는 광경 앞에서 나와 친구는 분노할 힘도 없이 그저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의욕도, 체력도 완전히 고갈된 우리에게 더 이상의 촬영은 무리였다. 이 사진을 끝으로 가방이 함께하는 풍경이 뷰파인더에 담기는 일은 더는 없었다.



워낙 아침 일찍부터 부산을 떨어댔다. 떨어진 혈당 요란한 경보음을 울려댔다. 신경이 날카로워진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식당을 찾아 힘겨운 발걸음을 터벅였다.



위생 상태와 종업원들의 상태가 썩 좋지는 않았지만 다행히도 음식은 맛있었다. 첫술을 뜨기 위해 숟가락을 잡은 손마저 가늘게 떨렸지만 위장을 채워가는 탄수화물 덕분에 혼미했던 육신은 빠르게 제자리를 찾아갔다.



베트남은 아이스크림이 맛있다. 훌륭한 맛집을 발견한 덕분에 한껏 고조된 나는 초콜렛이 듬뿍 발린 아이스크림으로 즐거운 아침의 방점을 찍었다.



이제 아무렴 좋았다. 어차피 더 고민해 봐야 사진은 나오지 않을 것 같고 더 머무르고 싶은 섬도 아니다. 마침 하이퐁으로 향하는 쾌속선의 출발 시간이 가까워 온다.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명확하다. 이곳을 최대한 빨리 벗어나야겠다.



그의 주요 일과 중 하나인 듯하다. 배를 정박시키고 줄을 동여매는 공안의 손놀림이 무척 능숙하다.



밤에 내린 고요함은 아침을 깨우는 한적함으로 이어졌다. 조용히 밀려들어온 파도가 방파제를 만나 흩어지는 소리만이 정적을 메우고 있다.



배는 손님을 싣기 위해 부두에 정박했다. 출항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고, 반나절 남짓했던 깟바섬과의 짧은 만남도 이렇게 이별을 고하였다.



짐이 많아도 너무 많다. 비록 여정의 끝을 향해가고 있다고 하지만 어찌 됐든 오늘 하루는 이 많은 짐을 온몸에 포도송이처럼 달고 다녀야 한다. 아무리 나의 소중한 밥줄이라지만 자꾸 한숨이 나온다. 이성은 고맙다 외치지만 먼저 반응하는 몸은 달리 재간이 없다.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것 같이 구름을 품은 하늘. 우산을 들기는커녕 있는 짐마저 온전히 간수하기가 힘든데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이다.



바깥에 나가서 달리는 배를 경험해 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있는 공간이 이 배에는 없다. 속도가 너무 빨라서 그런 것인 듯하다. 어쩔 수 없다는 걸 이해하지만 아쉽.



거리낌 없이 달 쾌속선은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아 하이퐁에 닻을 내렸다.



쉽게 열리지 않는 하늘이 마음을 졸이게 만들었지만 다행히 푸른빛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동네를 거닐어 보았다.



이 거리에는 옷가게가 아주 많이 늘어서 있다. 여행이랍시고 변변하게 즐긴 것이 없었던 탓에 친구에게 계속 미안했는데 잠시나마 망중한을 즐겨볼까 한다. 친구는 이 거리에 있는 모든 옷가게를 빠짐없이 둘러보았다.



 이상 가방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억지로 쥐어짜 내어 나올 것이 얼마나 될 것이며, 이렇게 지친 몸과 마음으로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올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대신 마지막 하루를 위해 남겨진 카메라의 저장 공간은 친구와 풍경을 담기 위해 고스란히 쓰였다.



이 동네 사람들에게 오토바이는 일상이다. 재미있는 점은 헬멧을 쓰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위반했을 때 물게 되는 벌금이 워낙에 크기 때문에 감히 어기려고 시도하는 사람도 잘 없다고 한다.



절대로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단단히 무장한 친구에게는 비장함마저 감돌았다. '마음에 드는 게 없으면 어쩔 수 없지'라고 말을 하면서 10리에 가까운 거리를 쉬지 않고 걸었다.


옷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는 내 눈에도 괜찮아 보이는 코트가 지나가는 행인들을 맞아주어느 옷가게 앞에서 친구의 발걸음이 멎었다. 친구는 파인애플도, 꽃도 아닌 무언가가 달린 티셔츠위해 지갑을 열었다. 50만 동에 가까운 가격표가 붙어 있었는데, 한국 돈으로 3만 원 남짓이니 살짝 애매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옷이었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 그것이 6만  넘는 가격에 팔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친구는 늦게나마 환호성을 지를 수 있었다.



마음에 드는 한 벌의 옷을 찾아내기 위한 여정이 마침내 막을 내렸다. 아낌없이 불태웠다. 그저 앉고 싶고, 쉬고 싶다는 생각만이 가득하다. 택시의 힘을 빌려 '반카오'라는 이름의 한인 거리로 향다.



이 거리에는 내가 매우 좋아하는 카페가 있다. 'MYA TEA'라는 이름은 카페의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만 정작 이곳이 북적이는 것은 어둠이 내린 이후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의 손에는 한결같이 맥주가 쥐어져 있다.


그렇지만 언제 와도 좋은 곳이다. 낮에는 한가로이 망중한즐길 수 있어서 좋저녁에는 북적는 속에서 흥겨움을 즐길 수 있어서 좋다.



이곳의 코코넛 커피는 참 훌륭하다. 물론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무얼 골라도 '맛있다'를 연발하게 되지만 이 코코넛 커피는 유난한 감탄을 부른다.



카페를 찾기 직전에 받은 마사지가 별로 시원하지 않았다고 불평불만하는 친구 덕분에 괜스레 눈치가 보였다. 그걸 만회하고자 사용한 회심의 카드 같은 것이었기에 내심 긴장이 됐다. 다행히 친구 역시 매우 만족스러운 눈치였다. '인스타그램을 위한 모든 조건이 다 갖추어진 장소다.'라는 평까지 남겼으니 적지 않은 업력의 재능 있는 디자이너에게 받은 평가로는 더할 나위 없었다.



올해만 세 번째 찾는 하이퐁인데 정작 현지 음식은 한 번도 먹은 적이 없었다. 그렇게나 좋아하는 분짜마저도 하이퐁에서는 남의 세상 얘기였다. 다른 고향 친구 놈의 추천을 받아 마침내 영접한 분짜가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다.



타다가 만 것 같이 생긴 넴은 어딜 가나 비슷한 생김새와 비슷한 맛이다. 차라리 고기나 몇 점 더 얹어줬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이곳의 넴 역시 그런 운명을 비껴가지 못했다. 그래도 숯불향 그득한 잘 구워진 고기는 어김없이 옳았다. 새콤한 맛 가득한 소스와의 조합 언제나처럼 훌륭다.



분짜는 언제 어디서 먹어도 입이 즐겁다. 배가 그리 고프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바닥이 보이지 않는 접시는 한 그릇도 남지 않게 야무지게도 먹었다.



맛있는 음식과 함께한 하이퐁에서의 여정이 마침내 끝을 향하고 있다.



식사를 끝내는데 결코 오래 걸리는 음식이 아니라서 식당에서 보낸 시간이 길지 않았음에도 하이퐁의 하늘은 어둠이 내려앉을 태세를 조금씩 갖추고 있었다.



빈손으로 가기는 섭섭하니 어김없이 빅씨마트를 들린다. 가득 찬 배를 진정시킬 겸 조금 걸었는데, 그 사이에 어둠은 훨씬 짙어졌다.



찾지를 못하는 지, 여기밖에 없는 건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하이퐁 시내를 둘러보면서 여기보다 큰 대형 마트를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다른 곳을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없다. 수중에 남아 있는 돈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계산기까지 두들겨 가면서 남은 잔고를 야무지게 털었다.



길지는 않았지만 참으로 알뜰하게 사용한 3일이었다. 만족스러운 가방도 받아 들었고 좋은 사진도 많이 남다. 일에 치이는 것이 꽤나 힘겹기는 했지만 친구와 보낸 시간들도 무척이나 즐거웠다.



어느 때보다 많은 수확이 함께했던지라 작별하는 마음이 유난히 더 아쉽고, 또 아쉽다. 다시 이곳을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테지만 이번 여정의 잔상은 꽤나 오랫동안 여운을 남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괜히 아쉬운 마음에 이것저것 부지런히 뷰파인더 안에 담아 본다.



진하게 남은 여운과 별개로 쌓인 일거리는 현실이다. 나와 친구는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까지도 반나마 영어의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 비행기에만 몸을 실으면 정말 끝이 보인다.



안녕히 계십시오 하이퐁. 곧 다시 만납시다!




하이퐁에서도, 어김없이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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