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경험과 실패경험은 복리로 작용한다.
긴 채용 프로세스를 마무리지었다.
간절히 함께하고 싶었던 회사에서 귀중한 기회를 주셔서 여러 번의 면접 끝에 마지막 프로세스만을 앞두고 있다. 이 결과를 얻기까지 10개월 동안 100개가 조금 모자란 만큼의 지원을 했고, 실제 입사까지 이어진 곳도 있었고 2차에서 불합격한 경우, 1차에서 떨어질 때도 있었다. 과제에서 드롭된 경우도 좀 있었고. 많은 경우 서류에서 떨어졌다.
이 과정에서 나는 메일 포비아를 얻었다.
콜 포비아(call phobia)라는 용어를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메일이 생경하던 시절에 전화로 많은 일을 처리하던 시절, 그리고 어릴 때부터 전화가 익숙한 세대에게 전화로 업무를 처리함은 그저 대면하지 않아도 대화할 수 있는 수단이기에 딱히 거부감이 없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이메일은 조금 달랐다. 이메일을 주고받는데 어려움이 없는 세대고 그렇게 소통하고 일해왔기 때문에 전혀 두렵지 않았지만, 이번 채용 프로세스를 겪으면서는 포비아가 생겼다. 합격 메일도 많이 받았지만, 이와 비교될 만큼 워낙 많은 불합격 메일을 받다 보니 메일 알림이 오면 몸이 반응한다. 심장이 두근대고 바로 알림을 누르지 못한다. 제목을 보고 대충 유추한 다음 일단 진정시킨다. 광고 메일임을 확인하면 1초 만에 긴장이 싹 내려가며 식은땀이 난다.
특정 분야에서의 포비아는 익숙하지 못한 환경에서의 실패경험이 누적되어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마치 마이너스 복리가 적용되듯 가랑비처럼 내린 실패경험은 해당 매체에 대한 경험마저도 무너뜨린다.
아무리 덤덤해지려 노력해도 불합격 메일은 항상 철렁한다. 특히 자신 있게 과제를 제출했거나 면접을 잘 봤다 생각하는 회사에서 받은 탈락 메일은 받으면 그냥 멍 하다.
나는 평소에 애플워치를 차고 다니며 알림을 받는데, 애플워치는 알림이 오면 우선 앱 아이콘이 화면을 메운 운 뒤 그 알림 콘텐츠를 보여준다. 애플워치로 알림이 왔는데 gmail 앱이면 일단 가슴이 철렁하고 한 1초 뒤 메일 제목과 내용의 첫 번째 줄을 보고 내용을 짐작한다. 이게 너무 고통스럽고 힘겨워서 애플워치도 안 차게 되었다.
또 생긴 습관들이 있다. 정말 중요한 메일들만 메인 메일인 gmail로 받고 이외에는 전부 서브메일인 naver 메일로 돌렸다. 불합격 메일이나 쓸데없는 메일은 바로바로 지워서 눈앞에서 치우는 강박도 생겼다. 광고 메일은 보이는 족족 unsubscribe를 누르거나 서비스에 직접 들어가 이메일 수신거부를 눌러댔다.
gmail 앱이나 gmail 앱이 포함된 폴더 위에 알림을 뜻하는 빨간색 공이 생기면 강박적으로 들어가서 확인하는 버릇도 생겼다. 혹시 내가 알림을 날렸나? 하고 들어가 보면 광고인 경우가 많다. 어쩌다 채용 관련 메일일 때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어떤 분야에서든 성공 경험의 연속은 그다음 성공에 대한 자신감이나 확신으로 이어지고 이는 그 영역에서의 효용이나 태도로 이어진다. 반대로 실패 경험의 연속은 그다음 성공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낮은 자존감과 부정적 태도로 일을 그르치게 된다.
만약 내 이력서의 서류합격률이 80%가 넘어가고, 1차, 2차 면접 합격률이 6~70% 정도 된다면 내가 받은 메일들은 대부분 성공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다면 내게 메일 포비아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메일을 기분 좋게 열 수 있었을 테니까. 나는 그 반대를 경험한 것이다.
나도 안 좋은 메일을 자꾸 받다 보니 다음 메일도 그렇겠지라고 생각했고 한동안은 계속될 것 같다. 이는 무섭게도 복리로 적용된다. 실패경험을 하고 기분이 안 좋아지고 털어내고 하는 과정을 거치면 최초 상태로 돌아간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이는 내상으로 남아 다음 행동에 영향을 준다. 그래서 나도 한동안 성공경험으로 이 내상을 치료하고 양지로 올라갈 것이다.
반대 방향도 열려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