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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 Feb 24. 2022

디지털 건물주

우리도 건물주가 될 수 있어요..!

 현실에서 건물을 보유하고 임대인으로부터 임대료를 받는 사람을 건물주라 부릅니다. 오해가 좀 있지만 일을 하지 않고 많은 돈을 번다는 생각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경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직업(?)이죠. 건물주는 단편적인 시각에서는 불로소득이면서, 높은 근로소득을 받는 직종 중에서도 높은 축에 속하는 어지간한 전문직들보다 높은 수익을 올리기 때문입니다. 물론 건물주들도 건물 유지 및 인기 프랜차이즈 유치를 위해 노력하므로 순수히 불로소득이라고 호도하긴 힘들겠어요.


 건물주가 되는 조건은 간단해요. 그만한 돈이나 빌릴 능력이 되면서 임대사업을 할 의지가 있으면 됩니다. 그렇다면 몇십억, 몇백억 대 자산을 가지거나 빌릴 능력이 없는 우리는 이번 생에 건물주가 될 수 없는 걸까요? 그건 아닙니다.


 정의로만 따져보면 건물주란 오프라인 세상에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자주 다니는 도시, 시내 안에 세워진 건축물의 주인을 말하는데요. 일단 이곳에서는 이미 글렀다는 사실을 다들 아실 거예요. 그럼 아예 다른 세계로 가본다면 어떨까요. 건물을 지을 땅도 필요 없고 시멘트 한 포대 필요 없이 커다란 건물을 올릴 수 있고, 유지 보수 및 운영은 오롯이 당신에게 달려있는 디지털 빌딩 말해요.


디지털 쌍둥이(Digital Twins)

 굳이 온라인으로 전환해야 할까 하는 사업들이 너 나할 것 없이 온라인 세계로 이동하고 나서야 우리는 디지털 세계를 받아들이고 있어요. 예전에도 물론 인터넷과 앱이 존재했고 도처에 인터넷이 깔려있다는 유비쿼터스라는 단어를 배운 지가 10년이 넘은 것 같은데 이제야 조금씩 그런 세계가 오고 있으니까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디지털 세계의 나, 디지털 쌍둥이의 개념이 정립되기 시작했습니다.


 온라인 상에는 온라인에서만 존재하는 나의 쌍둥이, 그 자체(Identity)인 Digital Twins가 존재합니다.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성별이나 나이가 분명하지 않을 확률이 있는, 혹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는, 이곳저곳에서 활동하던 작고 사소한 기록들이 모여 하나의 '존재'로서 기록되어있는 데이터 덩어리가 바로 Digital Twins입니다.


 이들은 여러 가지 가면을 가지고 나를 대변합니다. 어떤 커뮤니티에선 차분한 성격의 커피 애호가일 수도 있고, 어떤 블로그에서는 유능한 프로그래머일 수 있어요. 물론 여러 가지 성향을 다 가질 수도 있고요. 그래서 Digital Twins는 다양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무리 없이 변검을 하며 활동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들은 이러한 온라인 커뮤니티의 소비자입니다. 현실의 돈이 결제되지 않더라도 해당 사이트에서 생성되는 UGC(User Generated Contents)의 공급자이면서 소비자의 역할을 합니다. 접속 시간대나 연령, 성향 등 수많은 데이터를 만드는 주체입니다. 광고를 소비하기도 하고, 사이트의 결제 플로우로 연결되어 실제 결제를 하게 될 수도 있어요.


디지털 빌딩(Digital Building)

 빌딩은 어떤 경우에 가치를 얻게 될까요? 보통 유동인구가 많거나 젊은 사람들에게 입소문이 난 곳에 위치해있고 건물 자체가 깔끔하고 유지가 잘 되어있으며 누가 봐도 장사가 잘 되는 프랜차이즈나 가게가 입점해있어요. 이런 빌딩의 경우 그 자체로는 변함없이 우직하게 서있지만 지속적으로 사람을 불러들일 수 있는 수단들을 활용해 스스로 그 가치를 높입니다. 즉, 사람을 얼마나 불러 모으느냐가 관건이지요.


 온라인 상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이를 지금부터 디지털 빌딩이라고 명명해볼게요. 유명한 웹 사이트, 카페나 블로그, 유튜브로 대표되는 이 디지털 빌딩들은 주로 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있거나 비슷한 목적을 가진 Digital Twins들이 모여 웹사이트가 제공하는 놀이터 안에서 생성된 콘텐츠를 즐기거나 의견을 나눠요. 더 깊이 들어간다면 온라인 상에서 연결된 끈이 오프라인까지 이어지게 되는 파급력 있는 공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보 비대칭성의 해소

 만약 당신이 자동차를 구매할 예정이라고 가정해봅시다. 아무리 사전 지식이 많아도 수많은 시승기와 전문가 리뷰를 안 볼 수 없어요. 특히 큰돈을 사용하는 만큼 더 꼼꼼하게 찾아볼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에 드는 자동차를 좋은 가격에 구매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 후 유지보수에 드는 모든 정보를 보험사 직원과 집 앞 정비소 아저씨에게 맡길 수만은 없습니다.


 맡긴다 하더라도 내가 하나라도 더 알고 있다면 더 합리적이고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받을 수 있죠. 하지만 이러한 정보는 대부분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만 공유되고 인터넷 상에서 찾을 수 있더라도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냥 돈 주고 처리하는 게 속편 할 정도로요. 이러한 현상을 정보 비대칭이라고 합니다.

차량 구매 커뮤니티(좌) 동네 정보 커뮤니티(우)

 특히 플랫폼 입장에서 제공하는 정보의 한계로 인해 단방향적 정보전달을 리워드 시스템이나 랭킹 시스템, 전문가 배지 등 간편한 넛징을 활용해 정보 공급자로서의 역할에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방구석 전문가일지라도 기꺼이 양질의 정보를 제공할 수 있게 하고 결과적으로 커뮤니티의 선순환에 기여합니다.


 디지털 빌딩의 가장 큰 장점은 이러한 정보 비대칭성을 해소한다는 점입니다. 누구나 플랫폼이 제공하는 안전한 게시판 문화 및 제도에 맞추어 스스로의 의견을 피력하고,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한 사용자는 정책에 맞게 리워드를 받거나 추천을 받죠. 특정 분야에서 까막눈인 사람들의 지식수준을 평준화시키고 개개인의 수준 자체는 높지 않더라도 그들만의 리그에 갇혀있던 유용한 정보들을 양지로 끌어올린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공짜 점심은 없다.

 하지만 이런 공간들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는 일반 사용자들은 자각하기 힘든 개념이 있는데,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공짜로 그 게시판을 이용하고 정보를 얻으며 놀다간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미 무언가 지불하고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디지털 건물주들 또한 공짜로 점심을 주지 않아요.


 가장 간단한 예시로 사용자들은 자연스럽게 광고에 노출됩니다. 정말 필요한 물건이면 바로 링크를 눌러 구매를 할 수도 있고, 필요는 없지만 사고 싶게 만드는 물건이 보인다면 들어가나 볼까 하며 들어가곤 합니다. 그리고 당장 물건을 구매하지 않더라도 훗날 어떤 물건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려고 할 때 불현듯 그 브랜드나 제품명을 검색하게 돼요. 마치 파블로프의 개가 종소리를 듣고 침을 흘리듯 떠올리게 됩니다. 이와 같은 시나리오가 발생할 확률에 맞추어 단가가 책정됩니다. 맞춤형 타겟팅 광고는 단가가 비싸고, 누구에게나 마구잡이로 뿌리는 광고는 단가가 저렴합니다.


 아래 사진들은 최근 이직을 위한 검색을 좀 했더니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밥먹듯이 등장하는 채용 광고들입니다. 어떻게 내가 이직 중인지 알게 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이런 광고들 한 번씩 클릭해보고 실제 지원까지 한 사례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이직 관련 인스타 스토리 광고

 연령대나 성별, 구매 플로우 같은 결제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데이터는 나중에 귀중한 분석 자료로 사용되고, 데이터 마켓에서 판매할 수도 있을 정도로 쌓인 데이터는 AI를 활용한 마이크로 타겟팅에 활용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쌓인 데이터는 어떤 기업의 향방을 좌우할 만큼 결정적인 기획&전략의 수립에 영향을 줄 수도 있어요.


 물론 가장 크게 지불하는 것은 해당 웹페이지나 커뮤니티에 머무르는 당신의 시간일 겁니다. 기여하는 바가 높고, 머무르는 시간이 높다면 그만큼 해당 서비스의 충성도 높은 고객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고, 그 고객들은 다음에 그 서비스가 피보팅을 하거나 전략을 바꿔도 그 서비스를 이용해 줄 좋은 타겟이기 때문에 가장 큰 자산 중 하나가 되니까요.


디지털 건물주

 분명한 사실은 우리도 모두 디지털 빌딩의 주인, 디지털 건물주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전처럼 특정 주제에 있어 독보적인 지위를 확보하지 않더라도 마치 동네 카페처럼 작게 운영할 수 있고, 특출 난 주제 없이 소소한 일상을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다양한 교류가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오프라인에 건물을 세우는 작업같이 엄청난 돈과 시간, 문서작업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원하는 플랫폼에 만들기 버튼 한 번이면 손쉽게 디지털 빌딩을 세울 수 있습니다.


 동영상 편집 기술의 발달과 MarkDown을 에디팅 툴로 지원하는 여러 사이트들의 등장으로 우리는 플랫폼 내에서 생산할 수 있는 콘텐츠의 양과 질을 높일 수 있게 되었고,  MZ세대에 이르러 폭발적으로 증가한 콘텐츠들과 사용자가 만들어낸 드립이나 밈의 사용 등이 재미와 정보를 잡게 하여 디지털 건물을 성장시키는데 막대한 성장동력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접근성이 높지 않으니 저는 주위 사람들에게 작게라도, 뭐라도 그냥 시작해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어찌어찌 디지털 빌딩을 시작하게 되었다면, 단 한 가지 목표를 가슴속에 품고 키워나가시면 됩니다.

사람을 모이게 만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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