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행기
바르셀로나뿐만 아니라 스페인 대도시들이 대부분 그러한 것으로 보이는데, 빛을 정말 잘 사용한다고 느껴졌습니다. 낮에는 자연광을 받아 그 웅장함과 아기자기함이 두드러졌고, 밤에는 다채로운 인공조명으로 화려하고 반짝였습니다.
저는 그중에서 낮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시간을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프랑스에서 나온 말로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부르는데요. 바르셀로나의 빛놀음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이라고 자부할 수 있어요.
그야말로 빛으로 범벅이 된 도시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저는 오후 2시에 비행기에서 내려서 버스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그때 처음 본 바르셀로나는 아래 사진들과 같은 날씨였어요.
12월이었으니 우리나라는 영하 10도씨에 육박했지만, 이곳은 영상 10도씨를 상회했습니다. 유독 파란 하늘은 카탈루냐의 햇빛의 영향이라고 해요.
하늘을 보면 청명함이 느껴지지만, 건물을 바라보면 쨍한 햇빛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쨍한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층고가 큰 건물 하나하나가 더 웅장해 보였습니다.
그 절정은 자연경관을 봤을 때에 극에 달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몬세라트 수도원이 있는 곳인데, 바르셀로나에서 보낸 하루들 중 가장 입을 다물지 못하고 보냈던 날 중 하나입니다.
이 날도 어김없이 실안개가 꼈는데, 강렬한 햇빛이 안개를 뚫고 바위와 수도원에 도달하는 걸 보고 경이로울 정도로 감탄을 했습니다. 그리고 정상에 올라가 보니 아주 청명한 하늘이 펼쳐졌어요. 더 이상 어떻게 더 맑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요.
파란 하늘, 웅장한 자연경관, 그리고 예쁜 건물들. 내가 보고 느꼈던 바르셀로나의 볼거리들은 빛이라는 범접할 수 없이 특별한 매개체와 함께 특별함을 더해줬던 것 같습니다.
칙칙한 공기와 시답지 않은 날씨를 가진 나라에 이런 것들이 고스란히 있었다 하더라도, 비슷한 느낌을 주긴 힘들지 않을까 하고요.
어스름한 낮과 밤의 경계, 언덕 위의 네발 달린 짐승이 개인지 늑대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시간대. 한국에서는 경험해본 적 없는 현상이라 딱히 와닿지 않았는데, 바르셀로나에서는 명확하게 나타날 때가 많았어요.
카탈루냐의 햇빛이라는 단어가 있을 정도로 이곳의 햇빛은 강렬합니다. 그래서인지 어스름한 시간이 되면 굉장히 강렬한 빨간 하늘을 볼 수 있어요.
흔히 소설에서 하늘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하는 표현 중 작열하는 하늘, 타버릴 듯한 하늘을 볼 수 있는데, 바르셀로나서 이 하늘들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본 날은 바르셀로나 여행 첫째 날이었는데, 하늘에 압도당한 기분이었습니다.
이 시간대에는 배들이 아직 출발하기 전인지 다 모여있었어요. 바르셀로나 해변에서 찍은 사진인데, 어스름한 시간대에 정말 오묘한 색감들을 가진 스펙트럼 사이로 뾰족뾰족한 마스트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하늘 색깔이 우리나라에서 본 것과는 사뭇 다르지 않나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순간 중 하나였던 바르셀로나 해변입니다. 저는 저녁 6시부터 거의 8시가 다 되도록 이곳에만 앉아있었어요. 정말 소중하고 좋았는데, 이곳에 다시 오기엔 너무 어렵겠다 생각이 들어서인지 발이 떨어지질 않아서 이대로 해가 질 때까지 앉아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다시 바르셀로나에 간다면(갈 거지만) 꼭 이 시간대의 바르셀로나 해변은 다시 오려고 합니다.
화려한 빛이 나를 감싸네. 바르셀로나의 밤은 그 말에 끄덕이게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어딜 가든 번쩍이는 우리나라의 밤이나 클럽 불빛을 두고 쓴 가사겠지만, 저는 왠지 모르게 그 가사가 떠올랐어요.
그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바르셀로나의 밤은 벙커라는 장소에서 바라본 광경이었습니다.
제가 이런 번쩍이는 야경을 좋아하는지도 처음 알게 되었어요. 아직 해가 다 지지는 않은 어스름한 밤인데, 아래의 그림자와 온 도시가 번쩍번쩍하게 불을 켜 두고 있고, 저 멀리 보이는 바다가 바르셀로나임을 알게 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 자랑 글이 돼버린 듯하네요. 사진이 글보다 많은 글을 써본 건 처음이라 그런 기분이 드나 봐요.
스페인 여행의 시작부터 빛으로 압도당한 기분이었습니다. 다른 경험도 많았지만 그중 지배적으로 이곳을 대표하는 속성을 꼽아보자면 아마 빛이 아닐까 싶어요.
저는 겨울에 가서 스페인의 진면목을 못 느꼈다고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물론 성수기 때의 모습도 궁금하긴 합니다만 저는 너무나도 만족스러운 여행을 하고 왔다고 생각해서 여한이 없습니다.
다음엔 이곳보다 더 강렬한 햇빛과 오렌지의 도시, 세비야 편을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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