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엔도 슈샤쿠 지음
엔도 슈샤쿠(遠藤周作)의 대표작 [침묵(沈黙)]은 1966년 발표 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 독자들에게 꾸준히 회자되는 소설입니다. 특히 2016년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영화로 재해석하면서 다시 한번 대중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주인공은 포르투갈 출신 예수회 신부 로드리게스입니다.
로드리게스는 자신의 스승인 페레이라 신부가 일본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가 배교(신앙을 버림)했다는 소문을 듣게 됩니다. 로드리게스는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가르페 신부와 함께 일본으로 향합니다.
일본은 당시 카쿠레 키리시탄(隠れキリシタン, 숨어서 신앙을 지키던 기독교인)에 대한 혹독한 박해가 한창이었습니다. 신자들은 체포되면 고문당하거나 죽음을 피할 수 없었고, 신부들은 밀항해 들어오다 발각되면 ‘후미에(踏み絵, 성상을 밟는 행위)’를 강요받았습니다.
로드리게스는 일본에 들어가면서 가난한 신자들과 만나고, 그들의 숭고한 신앙심에 감동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끝없는 박해와 잔혹한 고문을 목격하게 되죠.
일본 땅에 발을 디딘 로드리게스와 가르페 신부는 곧바로 기리시탄 신자들의 비밀 은신처로 안내됩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숨어 지내는 신자들의 굳건한 신앙심과 생활의 고단함을 직접 목격하죠. 그러나 일본 관헌들의 색출은 점점 심해지고, 결국 로드리게스는 체포되고 맙니다.
체포 이후 그는 이노우에 앞에 끌려가 심문을 받습니다. 이노우에는 로드리게스를 직접 고문하기보다는, 주변의 일본인 신자들을 잔혹하게 고통스럽게 하여 로드리게스가 “자신의 신앙 때문에 다른 이들이 고통받는다”는 죄책감을 느끼게 만듭니다.
로드리게스가 가장 충격을 받은 순간은 바로 스승 페레이라와의 재회입니다.
그는 이미 오래전에 고문을 견디다 못해 배교했고, 일본 이름을 쓰며 현지 관헌의 협력자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페레이라의 모습은 로드리게스에게 깊은 혼란을 안겨줍니다.
“과연 진정한 신앙이란 무엇인가? 끝까지 고통을 감수하며 순교하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이들의 고통을 멈추게 하기 위해 자신의 믿음을 꺾는 것일까?”
로드리게스는 후미에, 즉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성상을 밟으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그는 극심한 내적 갈등에 빠집니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지만, 하나님은 끝내 침묵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그는 마음속에서 예수의 음성을 듣습니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희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다.
로드리게스는 결국 후미에를 밟습니다.
로드리게스가 가장 고통스러워했던 것은 고문이나 배교의 수치심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침묵이었습니다.
신자들이 죽어가고, 자신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끝내 직접적인 응답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후미에 장면에서 들려온 그 음성은, 침묵 자체가 곧 하나님의 방식일 수도 있음을 보여줍니다.
즉, 역설적으로 신은 침묵 속에서 고통받는 자와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전통적 기독교 윤리에서는 배교는 곧 신앙의 포기를 뜻합니다. 하지만 엔도 슈샤쿠는 이 소설을 통해 배교조차도 자비와 사랑의 형태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로드리게스가 후미에를 밟은 이유는 단순히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이상 고통받는 신자들의 절규를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그의 발걸음은 배신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의 희생과 닮은 길이 됩니다.
이야기가 설득력을 가지는 이유는 실제 역사와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1614년 일본 전국에 기독교 금교령이 내려졌고,
1629년부터는 후미에 제도가 공식화되었으며,
수많은 신자들이 고문과 순교를 겪었습니다.
특히 시마바라·아마쿠사 봉기(1637~1638) 이후 박해는 더욱 강화되었고, ‘잠복 기리시탄’이라는 은폐 신앙 공동체가 일본 전역에 존재하게 됩니다.
신의 침묵은 삶의 고난 앞에서 느끼는 공허함과 닮아 있습니다. 그리고 배교의 윤리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면서도 타인을 살리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