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밟을 것인가, 지킬 것인가

침묵, 엔도 슈샤쿠 지음

by 이새벽

엔도 슈샤쿠의 소설 [침묵]은 17세기 일본의 기독교 박해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작품 속 주인공 로드리게스 신부가 고통받는 신자들을 지켜보며 겪는 갈등은 당시 일본 사회 전체의 현실을 압축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리시탄 박해란 무엇이고, 왜 일어났는까요?”

그리고 “후미에(踏み絵)”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었을까요?


⏩️ 소설 [침묵] 줄거리: 신의 침묵과 인간의 선택


키리시탄이란 누구인가?

“키리시탄(切支丹, Kirishitan)”은 일본에서 기독교 신자를 가리키던 말입니다.


1549년 예수회 선교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규슈에 도착하면서 일본에 처음 가톨릭 신앙이 전해졌습니다.

이후 다이묘(영주) 일부가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교회와 신학교가 일본 각지에 세워졌습니다.

한때는 신자 수가 수십만 명에 이를 정도로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하지만 곧 정치적 갈등이 커지면서 상황이 달라집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막부는 기독교가 외세의 침투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했고, 1614년 공식적으로 기독교 금교령을 발표했습니다.


이때부터 일본의 기독교인, 즉 기리시탄들은 잔혹한 박해를 겪게 됩니다.


시마바라의 난과 박해 강화

1620~1630년대 일본에서 기독교 박해가 더욱 심화된 계기는 바로 시마바라·아마쿠사 봉기(1637~1638)입니다.


과도한 세금과 억압에 시달리던 농민들이 봉기했고, 그 중심에는 많은 기리시탄들이 있었습니다.

봉기는 결국 진압되었고, 막부는 이를 기독교의 반란으로 규정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막부는 기독교를 더욱 강하게 금지하고, 선교사 색출과 신자 처벌을 제도화합니다.


후미에(踏み絵)의 도입

가장 대표적인 제도가 바로 후미에(踏み絵)입니다.


후미에는 예수나 성모 마리아의 그림이나 동판을 바닥에 놓고, 사람들에게 그것을 밟도록 강요하는 것이었습니다.

밟으면 기독교 신자가 아님을 증명할 수 있었고, 밟기를 거부하면 즉시 체포·고문·처형당했습니다.

이 제도는 1629년부터 공식적으로 시행되어, 19세기 중반 금교 해제(1873년)까지 약 200년 넘게 이어졌습니다.


후미에는 단순한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권력이 개인의 양심을 시험하는 장치였습니다.

사람들에게 “믿음을 버리라”는 직접적인 명령 대신, 작은 행위(밟는 행위)를 통해 신앙을 포기하게 만드는 정치적 기술이었던 것이죠.


고문과 심문 방식

후미에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긴 막부는 다양한 고문 방식을 동원했습니다.


아나즈리(구덩이에 거꾸로 매달기): 고통을 오래 지속시켜 배교를 강요.

물고문, 화형, 십자가형 등은 흔한 방식이었습니다.


특히 예수회 신부 같은 외국인 선교사들은 체포되면 거의 반드시 후미에를 강요받았고, 이를 거부하면 극한의 고문을 당했습니다.


잠복 키리시탄의 생존 전략

200년 넘는 금교령과 후미에 제도 아래에서도, 일본의 기리시탄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잠복 키리시탄(隠れキリシタン)으로 불리며, 신앙을 은밀하게 이어갔습니다.


마리아 관음: 성모 마리아의 형상을 불교의 관음보살상에 투영하여, 겉으로는 불교 신앙처럼 보이게 함.

오라쇼(Orasho): 라틴어 기도문을 일본어로 변형해 구전으로 전승.

비밀 공동체: 세례와 혼인 성사를 은밀히 이어가며 신앙을 지켰습니다.


이러한 신앙의 은폐와 변형 덕분에, 19세기 금교령 해제 이후에도 기리시탄 후손들이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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