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

내가 꾼 꿈

by 인드라망


며칠 전 나는 잔인하고 충격적인 꿈을 꾸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이었다. 주변 사람들과 나는 잔뜩 긴장한 채로 아무 말이 없었다. 꾸덕꾸덕한 우의를 대체 언제야 벗을 수 있는지 모르겠는 영겁의 시간만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지금 이 상황이 우리를 깊은 심연으로 빨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터 주위엔 폴리스라인이 처져있었다. 경찰차들이 공간을 감싸며 줄지어 세워져 있었고 사이렌은 울리지 않는 채로 빨간 불빛들만이 반짝이고 있었다.



우리는 첫 번째 인질이 무사히 인계되는 것만을 목이 빠지라 기다리고 있었다. 정체 모를 살인마는 우리 경찰 진영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열에 가까운 인질들이 상대의 손아귀에 있다. 모두 무사할까? 엇 잠깐. 저 멀리서 누군가 오고 있다. 첫 번째 인질이다. 세상에. 맙소사.




충격적인 광경이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잔인하다 못해 끔찍하기까지 했다. 인질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머리에 비닐봉지가 씐 채로 살인마를 앞장서고 있는 것이었다. 인질의 목에 단단히 묶인 동아줄을 늘어뜨리며 녀석은 우리에게로 오고 있었다. 희대의 살인마로 기억될 녀석은 검은 우의로 정체가 들키지 않도록 얼굴까지 뒤집어쓰고 있었다. 인질의 머리에는 마른 피가 범벅이 되어 있었고 인질은 방향감각을 잡기 어려워 비틀거려기까지 했다. 남자의 가쁜 숨으로 봉지 안엔 습기가 가득 차 있었다. 저 미친 녀석이 도대체 무슨 짓을 벌인 거지?



그 순간 녀석이 저지른 만행이 내 눈앞에 생생한 영상처럼 나타난다.
남자는 평소와 같이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늦은 밤이었고 거리엔 아무도 없었다. 그 순간. 옆에서 그 녀석이 다가오더니 남자의 목을 향해 다짜고짜 칼을 찌르는 것이다! 남자는 비명을 지른다. 녀석은 칼을 남자의 목에서 빼내고 다시 남자의 뺨을 그어버린다. 남자는 몸부림치더니 그대로 쓰러진다.


정신이 번뜩였다. 주위는 온통 난리 투성이었다. 인질의 신변을 확보한 경찰들은 급히 구급차로 이송하는 것을 도왔다. 시민들의 비명소리와 웅성거리는 말소리가 들렸고 카메라 앞에 선 기자는 뭐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가슴이 철렁였다.



젠장. 내가 정신을 가다듬을 틈도 없는 그때, 또 다른 인질이 저 멀리서 보이기 시작했다. 이번엔 하나가 아니다! 넷이다. 아니 잠깐. 자세히 보니 다섯인 것 같다. 처참했다. 네 명의 남녀가 방금 인질처럼 머리엔 비닐봉지가 써져 있었고 동아줄로 목 주위가 단단히 묶여 있었다. 그러나 내가 인원수를 착각한 이유는 내 눈을 보고도 믿을 수 없어서였다. 그 네 명이 미친 듯이 몸부림치며 늘어뜨린 목의 밧줄로 사람 하나를 끌면서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존을 갈구하는 발버둥이었다. 우리는 바닥에 질질 끌려오는 물체가 제발 시체가 아니기만을 빌었지만 과연 우리의 예상대로 였다. 시체는 젊은 여성으로 판명됐다.
내 눈앞에 또다시 살인 현장이 되감기처럼 재생된다.



그녀는 편의점 앞 파라솔 자리에서 혼자서 맥주캔을 들이켜고 있었다. 늦은 밤이었고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그때! 이번에도 그 검은 천을 두른 녀석이 그녀에게 쥐 죽은 듯이 다가오더니 그녀의 목을 칼로 찌르는 것이다. 여자는 날카로운 비명을 지른다. 녀석은 그대로 여자의 오른 눈을 찌른다. 그리고 다시 여자의 오른뺨을 칼로 휘두른다. 피가 분수처럼 넘친다. 그녀는 괴로워하고 있다….


나는 거의 정신을 잃을 뻔했다. 또다시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끔찍하게 죽어가는 그녀를 내가 바로 앞에서 목격하듯 자꾸만 환상이 내 눈앞에 나타난다.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을 지경이다. 미칠 노릇이다.
왜 우리 진영은 미치광이 살인마 녀석을 제압하지 않는 거지?
왜 그들은 녀석의 모습이 조금이라도 나타났을 때 총으로 쏘지 않았던 거지?
저격반이 이미 저 멀리 옥상에서 대기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녀석은 애완견 다루듯이 목줄로 인질들을 앞세운 다음 우리에게 넘긴 뒤 다시 유유히 뒷모습만 남기고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