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은 나의 취미

by 인드라망


꼬마였던 나는 세상이 지루했다. 흥미를 붙일 데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티비로 보는 만화는 재미있었지만 티비가 꺼진 세상은 다 씹은 껌처럼 별 볼일 없었다. 어른들은 이상했다. 뭐가 재밌다고 악기를 연주하고 직장을 다니는지. 고통스럽기만 한 공부를 몇 시간 동안 하는 건 대체 어떻게 하는 건지 도저히 어린아이의 눈에 이해가 되지 않았다.




키가 커지자 나는 컴퓨터가 티비보다 재밌어졌다. 그리고 티비와 컴퓨터 말고는 재미가 없었다. 대체 무엇을 위해 인생을 살아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클수록 지금보다 더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어른들의 조언은 절망스러웠다. 지금보다 더 지루하겠구나. 그러면 재미없는 지금이 제일 행복할 때구나. 하며 비관이 늘 나의 어린 시절과 공존했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는 게임을 위해 지냈다. 그냥 게임이 내 삶이었다. 친구들이랑 같이 하면 미친 듯이 즐겁고 아니어도 만족스러웠다. 세상은 게임을 위한 부수적인 바탕이었다.



그러나 고등학생이 되자 불현듯 위기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젠 게임이 재미없어진 것이다. 학교에선 야간학습을 시켰고 나는 하루의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내다 보니 마땅한 취미가 생기지 않았다. 언제는 친구가 재밌다며 애니를 추천해줘서 쭉 보다가 그대로 매료되었다. 소설에도 관심이 가면서 이야기들에 푹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의욕이 없던 그 고등학생은 그마저도 곧 흥미를 잃게 되었다.

문득 고삼이 되었다. 공부만 하는 스케줄에 취미는 사치였다. 노래를 듣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도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듣는 것만은 행복했다. 다른 데에 관심을 가질 여유는 없었다.



어쩌다 재수를 결심한 내가 하늘에서 뚝 떨어져 있었다. 내 인생 최대 고비는 스무 살이었다. 대학 입학 말고는 모두 가치가 없는 것들이었다. 나는 모든 행복을 미뤘다. 수험생활이 끝날 때까지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았고 혼자서 도서관을 다녔다. 거기다 허리디스크까지 생겼다. 지금 다시 그때를 떠올리면 숨통이 턱 막힌다. 그때가 내 인생 중 가장 힘들었다. 군대 갔다 왔는데 나는 재수가 더 힘들었다. 그때의 하루하루가 모두 고통이었어서 그 시기는 거의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만약 그 시기에 산책을 안 다녔다면 말이다.



점심시간에 나는 삼십 분이 되도록 공원을 산책했다. 그러자 걸으면서 나의 고통을 객관적으로 직시하게 되었다. 어제 힘들고 오늘 힘든데 그래도 저번 주보단 나은 거 같아. 누군가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 안 힘들어 보이고 즐거워 보여. 그 시기의 내 얼굴엔 세상 모든 힘듦을 다 안고 있었을 것이다.



일주일에 하루 도서관이 쉬는 날이면 나는 두 시간이 넘도록 온 동네를 돌아다녔다(혼자 동전 노래방에 가서 노래도 불렀다!). 어릴 때 낯설게만 느껴졌던 거리를 밟았고 예전에 살았던 동네로 가보았다. 그때는 지루했던 동네가 흥미롭고 추억 깊은 자리로 남아있었다. 옛날 골목골목을 통과하면서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즐거운 순간들도 떠올랐다. 그러자 복잡했던 마음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조그마한 동네에서마저 세상은 아름다웠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 힘을 가까스로 내며 수험생활을 이어갔다.


결과적으로 재수는 실패했고 코로나19 때문에 대학교도 가지 못했다. 수업은 온라인으로 대체되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는 힘들었다. 허리는 아팠고 일 년을 날린 내겐 잃은 것밖에 없다고 나는 상심했다. 하지만 산책은 쉬지 않았다. 그러자 밑바닥을 쳤던 마음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친했던 애들과 다시 연락을 하기 시작했고 모두 만나서 놀기도 했다는 것이다. 나는 예전의 생기를 되찾았다. 엄마와 대화를 많이 하게 되었고 집에서 요리를 해 먹기도 했다. 다시 삶이 즐거워졌고 인생에서 더 가치 있는 것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실패해도 생각보다 큰 위기는 없었다는 깨달음도 얻게 되었다. 걱정이 사라진 공간엔 기대감이 채워졌다. 나는 나였고 앞으로도 내가 바뀌는 만큼 내 삶은 달라질 것이었다.



산책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날이 좋을 때면 나는 햇빛을 쬐러 동네를 거닌다. 현재 내 삶은 내 인생 어느 때보다도 행복하다. 읽고 싶은 책을 읽고 마음대로 글을 쓰고 오랜 친구와 매일 연락하고 좋은 습관을 들였으며 꿈을 찾았고 목표를 계획하고 명상을 하며 내면을 컨트롤할 수 있다. 내 정신은 맑아졌고 내 신념은 긍지로 가득 차 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산책은 지금도 얼마 없는 내 취미 중 하나에 속한다. 산책을 하면서 나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건물을 관찰한다. 자연을 응시한다. 천천히 걷다가도 멈춰 서서 바라본다. 걷고 있으면 스스로에게 집중하게 된다. 나는 별다른 운동은 할 엄두도 내지 않지만 걷기는 필수다. 나는 걷는다. 세상을 바라본다. 나를 생각한다. 산책은 나의 취미다.




매거진의 이전글참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