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도 그렇고 어릴 적에도 집에 있는 걸 좋아했지만 초등학교 오 학년 때만은 아니었다. 그때 같이 놀던 친구의 별명은 ‘참치'였다. 이름이 유명 참치캔 상품명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 친구와 나는 같은 반이었고 게임 얘기를 하다가 친해졌다.
참치는 또래애들보다 키가 크고 마른 체형에 앞머리는 늘 일자였다. 목소리는 약간 가늘었는데 무엇보다도 성대모사가 내 마음에 들었다. 선생님들의 목소리와 말투들을 참치는 곧잘 흉내 내면 나는 자지러지게 웃었다. 참치는 위선을 보이는 태도와 행동이 없었고 착하기만 했다.
남자아이들이라면 으레 가장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게임이다. 우리 둘은 쉬는 시간이면 총 게임 얘기를 했다. 그중에는 좀비 게임도 있었고 전차와 전투기를 타는 게임도 있었다. 게임에서 공감이 가는 부분부터 시작해서 어려운 모드를 깨는 비법, 보통 유저들은 잘 모르는 유용한 정보, 게임을 하면서 어이가 없고 웃겼던 장면, 믿기 어려운 상황들까지. 참치는 황당하고 거짓말 같은 얘기를 내게 자주 들려주었다.
그 애는 자랑하는 걸 좋아했다. 어른들의 말을 기억해두었다가 문득 있어 보이는 말을 하곤 했다. 요즘 불경기인 것은 인건비 때문이라느니, 같은 말을 하며 한탄조도 빼먹지 않았다. 어른들이 보기엔 아는 척하는 걸로 보였겠지만 나는 그런 부분이 어른스러워 보였다. 어쨌든 세상에 관심이 있는 거니까.
총 게임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점차 실제 총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어린애고 우리나라는 총기 소유가 불법이어서 이를 대신해 비비탄총이 최대 관심사로 옮겨갔다. 나는 실제 총과 거의 유사한 디자인의 비비탄 총이 갖고 싶었다. 그런데 참치가 오륙 만 원짜리 소총 모델의 비비탄 총이 집에 있다고 자랑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무려 전동식이어서 연발로 비비탄이 날아간단다. 내가 가질 수 있는 비비탄 총이라면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천 원짜리 수동식 비비탄 권총이 전부였는데 말이다. 내가 믿지 않는 구석을 보이자 참치는 나를 자기 집으로 초대해주었다.
마당이 넓은 단독주택이었다. 주변엔 을씨년스러운 논밭과 저 멀리서 농장이 보였다. 정지한 포클레인이 두세 대 있었고 집들도 별로 없이 멀리들 떨어져 있었다. 가로등으로 ‘구제역 조심’이라는 현수막이 높게 걸려 있었다. 아무렴 상관없었다. 눈치 볼 이웃도 없는 것 같았다. 마당에는 큰 개가 있었고 집 뒤에는 넓은 공터가 있었다.
부엌의 식탁에는 시리얼 봉지와 내 눈에 생소한 여러 식품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노는 거랑 먹는 거에 대해선 아끼지 않는 것 같았다. 아빠는 퇴근을 늦게 하고 엄마는 동생이랑 어디 갔으니 곧 돌아올 거라고 참치는 말했다.
참치의 말은 진실이었다. 전동 비비탄 총은 발사속도가 어마 무시했다. 탄이 빗발치듯 날아가는 게 이보다 멋있는 물건은 세상에 없었다. 우리는 마당에서 비비탄을 마구 뿌려댔다. 참치는 조심히 다뤄달라며 내게 그 총을 잠깐 넘겨주었다. 우와 엄청 멋있어. 두다다다다.
우리 둘은 갈대가 휘날리는 전장을 누볐다. 버려진 철물과 큰 나무를 장애물과 엄폐물로 삼으면서 공터를 뛰놀았다. 가상의 적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탄을 쏟아내고 일대일 서바이벌 대결도 하였다. 좋은 총을 가진 사람이 대부분 이겼지만.
지친 우리는 다시 집으로 들어가 컴퓨터를 켰다. 게임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데 도어록 소리가 났고 아줌마가 곧 들어오셨다. 나는 아줌마에게 인사를 드렸고 아줌마는 잘 놀다 가라며 살갑게 대해주셨다. 우리는 게임을 재개했다.
그런데 참치의 동생이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참치의 동생은 집안을 마구 뛰어다니다가 갑자기 우리가 있는 방으로 들어오더니 펄쩍펄쩍 뛰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 놀랐는데, 왜냐하면 참치의 동생이 플라스틱 상자 위로 올라가기도 했기 때문이다. 체중을 못 이겨서 플라스틱 뚜껑이 무너지지 않으려나. 동생의 신체는 그 나잇대의 평균보단 조금 컸지만 몸은 깡 말라 보였다.
나는 참치의 동생이 기운 넘치는 애라고 생각했고 별 생각을 안 한 채 게임 구경을 계속했다. 참치는 자신의 캐릭터가 죽고 관전 상태로 넘어가자 내게 무심하게 말했다.
“아, 내 동생이 조금 아파서 그래. 신경 쓰지 마.”
음 아프다고? 그래? 그럴 수 있지. 나중에 다 나으면 괜찮아지잖아. 나는 생각했다. 울 엄마도 자주 아파해. 하지만 이제 곧 나을 거니까 괜찮아. 사람들은 외상을 입은 상태를 두고 아프다고 하지 않는다. 마음이나 정신이 보통 사람과는 다른 처지인 상태를 누군가 넌지시 알려주려고 할 때 주로 아프다고 말한다. 가족이 그랬고 친구가 그랬다. 과일을 담은 접시를 들고서 아줌마가 방에 들어왔다.
“응, **(동생의 이름)이가 좀 아프단다. 인석이가 이해해줄 수 있지?”
“네, 당연하죠.”
아줌마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인석이 참 착하다~. 00(참치의 본명)이는 항상 착한 애들만 데려오더라.”
나는 어떤 점이 착하단 건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냥 참치의 동생이 아프다는 거고 아픈 건 나중에 다 나을 거 아닌가. 지금은 이해해줄 수 있는 거고. 어차피 나는 그런 걸 신경 쓰는 아이가 아니었다. 엄마도 항상 내게 이해를 부탁했다.
아무렴 상관없었다. 일부로 방해를 하는 것도 아니었고 나는 이 집에 놀러 온 손님이니까. 집주인이 뭐라 부탁을 하던 불만을 마음속으로라도 품으면 실례일 거 같았다. 당연하다고 어린 나는 생각했다!
동생은 거실과 주방, 안방을 마구 휘저어 다녔다. 우리는 게임에 집중하느라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아줌마는 우리 방 문을 닫고 가셨다. 아줌마가 참치의 동생에게 간식 먹는 걸 도와주는 소리들이 났다. 나는 참치와 놀다가 저녁 시간이 되기 전에 집으로 돌아갔다.
그 후로도 가끔씩 나는 참치의 집에 놀러 갔다. 무리에 한두 명이 더 추가되고 여러 명이 참치의 집으로 가는 날도 종종 있었다. 다 같이 참치네 뒷마당 공터에서 뛰어놀았는데 비비탄을 뿌려대고 숨바꼭질을 했다. 합기도 검은띠였던 참치는 태권도를 하는 내게 합기도 시범도 보여주었다. 참치네 집에서 놀다가도 아줌마는 우리를 차에 태우고 붕붕장(우리 동네에서는 붕붕장이라고 불렀다)으로 데려다주었다. 우리는 트램펄린을 타고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우리 엄마는 붕붕장에 먼지가 많이 날린다고 싫어하는 눈치였지만. 애가 친구랑 논다는데 어느 부모가 말리겠는가! 덕분에 참치를 따라서 나는 밖을 마구 돌아다닐 수 있었다. 세상 제일 재밌었다. 저녁노을이 질 때가 젤 아쉬웠다. 집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학년이 올라가고 육 학년이 되자 우리는 다른 반이 되었다. 우리는 싸운 적은 없었지만 각자 같은 반 친구들과 친해지면서 왕래가 없는 우리 사이는 점점 멀어져 갔다. 가끔 복도에서 마주치면 얘기를 나누는 게 끝이었다. 평소와 같이. 그렇게 참치의 집에도 안 가게 되었다. 특히 그 집으로 놀러 간 마지막 날에 있었던 내 잘못 이후로 말이다.
오 학년 겨울 방학 때였다. 여느 날과 같이 나는 참치의 집에서 놀고서 엄마가 차를 가지고 데리러 이곳에 오기까지 십분 정도가 남아 있었다. 아줌마는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고 있었고 참치가 화장실을 간 사이에 방에는 나 혼자 남아 있었다. 나는 전동 비비탄총을 쥐고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저기 옷장 위에 놓인 탱탱볼이 만지고 싶은 게 아닌가. 나는 플라스틱 상자에 발을 딛고 올라가 탱탱볼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런데 플라스틱 상자가 푹 하고 내려앉는 것이었다.
나는 아찔했다. 다친 덴 없었다. 나는 뻗던 손을 거두고 금방 내려와 앉아서 아무 일 없는 척했다. 곧 참치가 방에 들어왔다. 참치는 담에 컴퓨터 게임을 같이 하자고 했다. 나는 그러겠노라고 말하고 총으로 사격 자세를 취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참치는 갑자기 놀라는 소리를 냈다. 그러고선 황급히 아줌마에게 가서 무어라 말했다. 아줌마는 방 쪽으로 오더니 뭔가를 확인했다. 나는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할지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떡하지..
그런데 아줌마는 참치의 동생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아줌마는 참치의 동생을 데리고 와서 또 상자 위에 올라갔냐고 면박을 주었다. 참치의 동생은 뭐라 말하지 못했다. 나는 가만히 있었다. 참치의 동생은 억울하다는 투의 웅얼거림을 했다. 나는 모른 척했다. 아줌마는 동생을 탓했다.
나는 참치에게 잘 있으라고 작별인사를 하고 티비를 마저 보던 아줌마에게 인사를 드렸다. 아줌마는 다음에도 놀러 오라고 말해주셨다. 나는 엄마 차를 타고 그대로 집에 갔다. 그 후로 나는 참치의 집에 가지 않았다. 우리 둘 사이에는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았고 가끔 복도에서 마주치면 여전히 게임 얘기를 했고 참치는 성대모사를 해주었다. 그러면 나는 막 웃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