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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민베어 이소연 Mar 06. 2024

[하루에 사과 하나] 다이어트가 아니다, 중독이다

먹는 것도, 먹지 않는 것도 중독

[하루에 사과 하나]는 버지니아 울프의 조카 손녀 엠마 울프의 책으로, 거식증 극복기를 담고 있다. 엠마 울프는 이 책으로 '마인드 2012 올해의 기자상'과 영국 식이장애 퇴치 협회의 '치유에 영감을 주는 책' 후보에 올랐다.

서른두 살의 엠마 울프는 14년째 거식증을 앓고 있다. 하지만 거식증만 빼면 그녀의 삶은 완벽하다. 옥스퍼드대 졸업 후 출판사에서 잘 나가는 기획 편집자로 일하고 있으며, 런던의 좀 사는 동네에 자기 소유의 아파트도 마련했고, 주말이면 여행 작가 남자친구와 전 세계를 공짜로 누빈다.

아마도 엠마 울프는 거식증 덕분에 이토록 그럴 듯한 삶을 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스스로 따뜻한 음식을 먹을 자격이, 사랑 받을 자격이 없다는 생각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자신을 통제한다. 그 결과 멋진 커리어와 아파트와 남자친구를 소유했지만, 행복하지 않다.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삶, 사랑하는 사람들과 한 끼 식사조차 누릴 수 없는 삶에 이제 진저리가 난다.

드디어 그녀가 거식증을 극복하기로 결심했다. 자신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엄마가 되기 위해! 상담, 심리분석, 약물, 식이요법, 침술에 이르기까지 그간 갖은 실패를 겪었기에 이번에는 새로운 방법으로 도전을 시도했다. 「타임즈」에 칼럼을 연재하면서 거식증 극복기를 전국에 중계하기로 한 것이다.



출판사에서 책을 소개하는 글이다. 


이 책은 약 10년전에 쓰여졌으며, 이 책을 통해 그녀는 거식증을 극복한 것으로 보인다.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가 벌써 세살이 되었으니 말이다. 


거식증과 폭식증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거식증에서 많은 경우 폭식증으로 넘어오게 된다.

오랜 기간 굶으면 몸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섭식장애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를 돕는다. 

이 병의 이면과 가슴 속 깊은 이야기, 섭식장애에 힘들어하면서도 나 자신도 모르고 이해하기도 어려운 마음의 말들을 꺼내놓고 있다. 



책의 인상적이었던 구절들을 소개한다.



외모에 집착하느라 거식증이 생기는 거라고, 완벽한 몸매를 위해 살을 빼는 거라고 오해들을 한다.

……
환자의 몸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거식증은 육체적인 질병치고 외모와 놀라우리만치 별개로 움직인다. 당연히 처음에는 정상적인 다이어트처럼 시작되지만, 금세 마음의 병으로 돌변한다. 내 경험상 거식증에 걸리면 육체와 정신이 완전히 분리된다.

-'하루에 사과 하나' 중



거식증의 경우 통제, 음식 섭취, 신체상과 같은 여러가지 문제 외에도 또 한가지 문제가 되는 것이 엄청난 수준의 자기기만이다. 누가 봐도 뻔한 사실이라 나도 안다. 내가 치유되지 않는 이유는 ‘간절히’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하루에 사과 하나' 중




먹는다는 게 이렇게 이해가 안 되고, 말로 설명할 수 없을만큼 복잡한 행위인 줄은 몰랐다. 뭘 먹으면 주접스러워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일단 먹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을까 봐 걱정이 된다. 무엇보다도 난 뭘 먹을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같다.
 -'하루에 사과 하나' 중






거식증은 중독이자 충동이고, 뇌 질환이자 버팀목이다. 아무 생각 없이 중독이라는 단어를 쓴 게 아니다. 내 경우는 분명 굶주림 중독이다. ......달리기는 내 목숨 줄이자 천연 두통 치료제였다. 5년 전부터 담배를 대체한 중독이었다. 




먹는 양이 줄어들 수록 먹는 것에 점점 더 겁을 내게 된다고. 굶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속이 깨끗하게 빈 듯한 쾌감에 점점 더 중독이 된다고. 거식증이 내게 선물하는 것이 무엇이며, 이 쾌감의 정체는 무엇일까?

거식증에 걸리면 엔도르핀과 아드레날린이 충만해진다. 깨끗하고 건강해진 느낌, 신바람, 성취감과 통제력이 느껴진다. 허기는 마약과 같다. 코카인은 무슨, 엑스터시는 무슨. 내가 아는 한 허기의 쾌감이 최고다. 이론상으로는 배가 고프면 힘들고 무기력해져야 한다. 그런데 거식증은 그렇지 않다. 더 빨리 달리고, 더 멀리까지 자전거를 타고, 더 늦게까지 잠을 안 자고, 더 많이 책을 읽고, 더 적게 먹을 수 있다. 굶을수록 거식증에 걸리면 슈퍼맨이 된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내가 그 오랜 세월 동안 무슨 기운으로 달렸는지 모르겠지만, 피곤한 느낌이 없었다.
 -'하루에 사과 하나' 중




폭식증도 폭식만 하는 것이 아니다. 

굶다가 참다가 폭식을 한다. 


굶는 것도 중독이고, 폭식 자체도 중독이고, 구토도 중독이며, 화학조미료 덩어리와 지방 덩어리들도 중독이 된다. 그러니 섭식장애는 일종의 중독질환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위험한 상황에서 몸은 도파민, 엔돌핀, 아드레날린과 같은 호르몬을 내보낸다. 굶을 때도, 폭식할 때도, 구토할 때도 호르몬이 분출된다. 그래서 중독되는 것이다. 


그래서 벗어나기를 마음먹기가, 낫기를 마음먹기가, 간절히 원하기가 사실은 쉽지 않다. 

내 삶을 통째 잡고 휘두르고 있는 중독이므로.


이 중독에서 우선 벗어나는 것이 첫번째 해야 할 일이다.

마음의 이야기도, 상처들도, 썩어서 곪아터진 감정들도 중요하지만,

우선 함께 건강한 식사 패턴을 억지로라도 만들어서 중독상태에서 벗어나야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해진다.






거식증은 안전하고 예측한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자유를 선물한다. 이렇게 종잡을 수 없는 세상에 알맞은 생활방식이다. …… 솔직히 말해서 내 기준에 따르면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무절제하다. 그리고 바로 이게 나의 가장 큰 문제다. 모든 걸 통제하려는 심리와 포기에 따른 두려움. 음식이 내게는 위험한 요소이자 깜빡이는 빨간 불이자 조금도 방심하면 안되는 순간이다. -'하루에 사과 하나' 중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이슈는 통제감이다.

굶거나 먹고 토하면서 통제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먹지 않는 것을, 먹고 나서 없애는 것을 통제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사실은 통제하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먹는 것에, 먹지 않는 것에 휘둘려 끌려다니고 있을 뿐.

이런 착각을, 잘못된 사고 방식을 이 책은 솔직하게, 당사자의 입장에서 공감을 끌어내어 통찰하도록 만든다. 


폭토와 거식의 반복적인 행동이 내 몸무게를 그나마 유지해준다는 착각을 하고 있다면 

그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사실을 차근차근 공부해나가야 한다.


섭식문제로 인해 스스로의 몸이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같은 행위를 반복하고,

그럼에도 아름다운 몸이 목표라는 말도 안되는 논리 위에 서 있다면,

내가 무엇을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 어디에 오류가 있는지 찾아낼 필요가 있다. 


그러니 아는 것이 힘이고, 아는 것이 회복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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