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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집단은 있는가에 대하여

그게 하필 시댁

by 고민베어 이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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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의 형제자매 가족들의 존재는 사실 나에게 커다란 문화적 충격이었다. 따뜻하고 보드랍고 선한데 능력 있고 똑똑한 사람들만 모여있는 집단을 태어나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세상에서는 능력이 있든 없든, 똑똑하든 무지하든 사람들은 감정적이고 욕심에 가득 차있고 자기 말만 했다. 집이건 학교건 직장이건 서울이건 시골이건 다 똑같았다. 그런 사람들이 잘 살아남았다. 우리 가족들이 공부를 한 이유는 자격지심이 컸다.


그래서 기다려봤다. 언젠가는 본성을 드러낼 거야. 남의 식구인 나를 언젠가는 함부로 대하고 깎아내리겠지. 마냥 선한 사람들이, 피해의식도, 과잉자의식도 없이, 그런 강력한 동기 없이 어떻게 저렇게 높은 위치에 올라갔겠어?


가족 모임에 가서 10년 넘게 예, 아니오 말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이 돌보느라 바쁜 척했다. 어떤 사람들인지 파악하기 전에 함부로 나를 드러내면 안 될 것 같았다. 아이와 남편이 아프다는 이유로 몇 년간 가족모임에 참석하지 않기도 했다. 행사에 빠졌으니까 언젠간 나를 미워할 거야.




시아버님 형제자매 가족 중에는 내 예상에 딱 들어맞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욕심 많고, 시기하고, 의심했다. 가족행사에서 아프시다며 누워계시던 작은 어머님이, 내가 한복 치마를 입고 있다 바지로 갈아입자 갑자기 벌떡 일어나 뛰쳐나오셨다.


“어머 쟤 다리 좀 봐, 마른 줄 알았는데 완전 코끼리 다리네~ 대단하다 얘~”


오히려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아, 이게 내가 아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사는 인간의 모습이지.


“아픈 남편이랑 아이 먹여 살렸죠 이 튼튼한 다리로 장사해서요~^^”


반갑게 너스레를 떨었다. 작은 어머님을 처음 만난 날이 기억난다.


“너네 엄마 이대 나온 거 맞니? 나랑 같은 과인데 졸업앨범에 아무리 찾아도 없던데?”


그래 맞다. 이래야 이대 나온 여자다. 이대 나온 나는 이대 나온 시어머님과 눈을 마주 보며 씩 웃었다. (모교 폄하하는 거 아닙니다)


한 시간쯤 후에 작은 어머님이 만들어오신 디저트를 한 입 먹으며 너무 맛있다고 어떻게 만드셨냐고 호들갑을 떨었더니 날 괴물 보듯 소스라치며 보시더니 다시는 말 걸지 않으셨다. (디저트는 나 말고 아무도 손도 대지 않았다)


이후, 다시는 만날 일이 없어졌다. 가장 이기적이었던, 올가미처럼 며느리 시집살이 시키던 시할머님이 돌아가시면서 모임 자체가 사라졌다.




그래서 시어머님 쪽 식구들도 한 명쯤은 본성이 드러나길 기다렸다. 13년 차다. 그런데 아직도 여전히 아픈 남편과 아이 때문에 귀촌해 악착같이 사는 나를 불쌍히 여기고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아이 손에 용돈을 쥐어준다. 이유 없이, 어려울 때 손을 내밀어 주신다.


내가 해드린 것도 없는데. 나는 남인데. 잘 될 가능성이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데.


이쯤에선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천사집단도 세상에 존재함을. 능력 있고 똑똑해도 따뜻하고 선할 수 있다는 것을.

피해의식도, 과잉 자의식 없이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그냥 날 때부터 완성체인 인간도 존재한다는 것을.

좀 억울하다. 여태 내가 본 세상은 왜 그렇게 치사하고 악랄하며,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과장된 자기를 드러내지 못해 안달 내는 곳이었을까.






젊은 식구들끼리 신이 나서 논문이니 교육이니 하는 주제로 수다를 떨고 있으려니 20분가량 조용히 이쪽을 바라보고 계시던 열댓 명의 어른분들이 함께 일어서시더니 말씀하신다.


“여러분, 나이가 들면 일찍 자야 해. 우리는 이미 너무 피곤해서 눈이 가물가물하거든. 이제 좀 집에 가는 게 어떨까? 일찍 자야 건강을 지키고...”


저녁 7시 40분이었다. 만난 지 2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단단하고 좋은 사람들은, 타인이 필요하지 않다.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누군가를 험담할 일도 없고, 과거의 명성도, 요즘 잘 나가는 자기 자랑, 자식 자랑을 할 이야깃거리도 없다. 그냥 자신 그 자체를 충분히 스스로 받아들이고 인정할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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