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30대 후반에서야 알게 된 ADHD

마음 문제가 아니었다니

by 고민베어 이소연
image.png


난 내가 ADHD인지, 30대 후반에 알았다.


어이없는 건, 20대에 정신과에서 일했는데도 나도, 동료들도 교수님도

아무도 눈치를 못 챘다는 거다.


초등학생 때, 애들이랑 친구집에 놀러가 소리지르며 뛰어놀고 있을 때

나는 구석에 앉아 만화책을 읽고 있었다.

한 친구가 나를 부르며 몇 번을 외쳤는데 나는 전혀 듣지 못했다.


친구가 내 눈앞에 얼굴을 들이밀어 나는 잠에서 깨어나듯이 "응?"하며 고개를 들었고,

친구는

“야, 너 뭐야?? 집중력이...... 미쳤네”

하며 어이없다는 듯 한참 쳐다봤다.


그때부터 조금씩 느꼈다. 아, 나는 뭔가 앞뒤가 안 맞는 사람인가 보다.






집중력이 반토막일 때도 있고, 반대로 어떤 날은 과잉으로 폭주했다.

자극에는 과민한데 또 자극을 찾았고, 중독에는 취약하지만 ‘논리’와 ‘목표’가 있어야만 허락했다.

정서도 논리로 번역해야 이해할 수 있었고, 자기 기준은 높은데 타인에게 기대하는 기준은 또 낮았다.


하지만 진짜 어려웠던 건 내가 누구인지 끝내 정리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집중력, 기질, 감정은 서로 따로 노는 것 같고 내가 가진 능력은 통합되지 않으니까

나는 어떤 사람인지, 뭘 할 때 행복한지, 어디에 힘을 써야 하는지 전혀 감이 없었다.


그래서 심리학을 공부했다.

하나하나 끼워 맞추듯 나를 이해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삶의 치트키’를 만들었다.


식사, 출퇴근, 외부 일정은 전부 다른 소리로 알람

책상 앞에는 이번 주 할 일을 적은 포스트잇

벽에는 종이 달력, 폰에는 노션 캘린더(1시간 단위 알람)

공부는 내 머릿속 구조대로 재정리한 노트 한 권

자료는 노션에 모아서 언제든 수정

아이디어는 AI에 던져넣어 정리시키기

강의는 빠른 속도로 두 번 듣기(오프라인은 녹음)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모든 전략이 ADHD 대처법과 거의 동일했다.

나는 이미 최선을 다해 ‘나를 조절하는 방식’을 스스로 개발해서 살아왔던 거였다.





그럼에도 나는 오랫동안 이 문제를 ‘정서’ 탓으로만 돌렸다.

자존감 낮고, 불안 높고, 먹는 걸로 풀고, 노력한 만큼 안 되는 건 전부 정서적인 문제, 그래서 내가 내 집중력을 통제하지 못하고, 불안 조절을 하지 못해서 라고 믿었다.


어릴 때 정서적 결핍, 정서적 학대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주저없이 심리학과를 갔고, 게다가 우리 대학교 심리학과는 정서/애착 분야가 주였다. 그래서 나는 십여 년 동안 오로지 정서만 팠다.


그러다 지쳐 심리학을 떠났고, 30대 후반에 다시 돌아왔을 때 비로소 ‘다른 문제’가 보였다. 뇌기능, 호르몬의 문제.


그럼 나는 그동안 뭘 하고 있었던 걸까? 헛수고였나?

콘서타 하나면 해결되는 문제였던 걸까?


그래서.. 과연 나는 그 약을 먹었을까, 안 먹었을까?





참고로 나는 행동과잉은 없었다.

초내향인이고, 책임감도 높아서 정말 중요한 일은 문제없이 '미리' 했다. 물론 지각과 준비물 잊기는 일상이었지만.

그 모든 모순을 안고 살아온 끝에서야 나는 나를 이해할 실마리를 찾았다.

그제야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브레이크가 고장난 꿈을 꾼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