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미더머니 – 블랙넛과 김수영 그리고 비와이
페이스북이 인생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 (일정 부분 나의 무책임한 남의 담벼락에 똥 싸지르기 탓이지만... 반성한다...) 두어달쯤 비활성화를 했다가 필요성이 생겨 다시 로그인했다. 별 기대 없이 피드를 슥슥 내리는데 비와이의 쇼미더머니 영상과 이를 찬양하는 지인의 글이 많이 올라와있었다. 평소 언더그라운드 힙합에 별 관심이 없어 뵈던 분들도 글을 올리는 것이 상당히 흥미로웠는데, 이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어 쇼미더머니와 관련된 두 랩퍼에 대해 글로 써보려고 한다.
우선 블랙넛.
다들 아시다시피 본인은 쇼미더머니3 1차 탈락에 빛나는 본투비랩퍼 aka 힙잘알이다. (사진 참고) 그렇기에 블랙넛이 어떤 과정으로 현재의 위치까지 왔는지 초기부터 지켜봐 왔다. 초창기 그는 김콤비라는 이름으로 보이스웨어 프로그램에 가사를 집어넣어 보컬을 딴 후 비트에 얹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랩을 했다. 물론 자신의 목소리는 들어가지 않았다. 이런 괴상한 방법과 곡의 높지 않은 완성도에도 그는 힙합플레이야의 랩 컴퍼티션에서 수상을 하는가 하면 다이나믹듀오에 의해 언급이 되는 등 나를 비롯한 수많은 힙합팬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기대를 받았는데 이는 당시 언더그라운드 힙합씬과 확실히 차별점을 둔 병맛 가사와 능수능란한 기믹질 덕분이었다. (보이스웨어의 우스꽝스러운 톤도 매력 포인트였다.) 초창기 그의 가사와 펀치라인은 “인터넷 댓글 풍의 비속어로 범벅이 된 저열하고 (성)차별적이지만 당시 힙합씬의 핫한 랩의 패러디와 단어의 다의성에 기반을 둔 말장난”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당시 한국 힙합에 펀치라인을 최초로 도입했다고 자랑하던 스윙스의 재미없는 그것과는 수준 차이가 상당했다. 색다른 김콤비의 녹음물들은 당시 젠더 윤리에 대해 관심도 의식도 없었던 (오로지 대학 가는데만 관심이 집중되어있던) 나와 같은 어린 힙찔이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이런 가사들이었다. (뭐 지금 와서 보니 유치하긴 하지만... 시대를 감안하자. 당시 힙합씬엔 없던 새로운 것이었다.)
너는 인기를 횟집보다 더 날로 먹으려고 해
내 랩을 듣고 사람들은 말해 K-I-N-G is back
니 랩을 듣고 사람들은 말해 K-I-N you're so wack
세스코가 설치된 곳엔 쥐(G)가 없지 마치 너처럼
난 항상 니 뒤(D)에서 지켜볼게 그래 난 so K-I-N-D
우릴 향해 "찬양하고 경배를 외쳐라" ㅗ^_^ㅗ
PICE! (파이스라고 읽힌다.)
(가사 중 일부)
그리고 기믹에 있어서도 그는 김좆키와 김폭딸이라는 두 가상의 인물을 상정하고 이들 둘을 김콤비라 이름 지은 뒤 약간 다른 목소리의 보이스웨어로 녹음을 해 둘을 랩배틀 붙이기도 하고, 좆키와 폭딸이 같은 사람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에 랩으로 엿을 먹이기도 했다. 이런 흥미로운 결과물들로 말미암아 그가 속한 쿠키즈 크루는 버벌진트가 주도하던 크루 오버클래스의 행보와는 또 다른 개성 있는 모습을 과시했었다.
나는 그의 팬이었기에 대학에 들어와서도 그가 어떻게 되었나 궁금해서 자주 검색을 했다. 얼마간의 공백 후 그는 MC기형아로 이름을 바꾼 뒤 실제 자신의 목소리로 랩을 해서 힙합플레이야 게시판에 곡을 올리기 시작했다. (자신이 김콤비라는 언급을 한 적은 없지만 모두 가사를 보고 대충 짐작은 했고, 나중에 인정했다.) 랩을 엄청 잘한다고는 보기는 힘들었지만 역시 가사가 일품이었다. 특히 MC기형아의 가사는 과거 김콤비의 것에서 확실히 한 단계 발전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신은 내게 명령했지 너는 이 씬에서
한자처럼 '획'을 긋고 그걸 '부수'랬어
현재 내가 서있는 위치는 아마추어지만
조만간에 골룸처럼 '프로도' 견제해
내 Rap 농구 점수처럼 '이점'은 있지만 '오점'은 없어
(가사 중 일부)
와 같은 기존의 일차원적 말장난에서 한 단계 발전된 (이차원적이랄까...?) 펀치라인과 더불어, 뜬금없는 비속어와 공허한 섺쓰, 보지자지 타령만 하던 과거와 달리
너흰 내가 좆도 없어보여 병신같은 년들아?
내게도 한마디만 건네줄 순 없는 걸까
왜 난 자꾸 느껴질까 너와의 먼 거리감
니앞에 나를 놔두고 넌 자꾸 어딜 봐
아냐 이건다 내잘못이란 걸 알아
거울을 볼때마다 느껴 내가 진짜 남자인가
매력없는 얼굴, 말라비틀어진 몸
보잘 것 없으면서 맨날 여자들 앞에서 잡는 폼
개들 머릿속에 난 딱 찌질한 놈으로 박혀있겠지
나도 그렇게 느껴
너희들의 이상형 조건 속에 내가 가진건 아무것도 없잖아
그래서 여자들한테 관심없는 척하면서
우습게 봤지 난 펜을 들고
보지가 어쩌고 저쩌고하며 가사를 쓰고
혼자서 낄낄대 그래놓곤 여자들 앞에선
아무말도못해 이런 내가 너무 찌질해
TV속 멋진 연예인들을 보며 다짐해
바로 바닥에 엎드려 운동을 하지만 작심삼일이네
귀찮아서 포기해도 딸은 맨날 쳐
모두 변명인 거 알아 난 노력을 하지않아
진짜 절실하다 느끼면 아마 난 쓰지 않았겠지 이딴 가사를
대신 당장 나를 가꾸는데 시간을 쓰겠지
(MC기형아 여자사귀고싶다 중)
와 같은 가사를 쓰기 시작했다. 여성 혐오적 태도가 짙게 배어있음을 감안하고도 이 가사가 의미 있었던 점은 다수의 여성들과 쉽게 가진 섹스를 자랑하며 남성성을 과시하는 (역시 여성 혐오적 태도가 짙게 깔린) 당시 대다수 랩퍼들의 태도와 달리 찌질한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온전히 드러내는데 있었다. 아마 김콤비라는 기믹을 벗고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랩을 하면서 드러나는 스스로의 모습이 반영된 것이리라. 그리고 사실 이런 모습은 그의 랩을 듣고 있는 나를 비롯한 수많은 힙찔이들의 거울 속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있지 않나.
그렇기에 나는 성차별적 가사를 비롯한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그의 팬이자 가능성을 매우 높게 봤었던 사람 중 하나였다. (물론 나 역시 최근 대두된 페미니즘 운동 덕분에 스스로 여성 혐오적 태도를 지니고 있음을 인지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당시에는 큰 문제로 여기지 않았다. 부끄러워서 지워버렸지만 나 역시 과거에 여성 혐오적 작업을 한 적도 있고...)
혐오스러운 스스로를 온전히 정직하게 드러내려는 태도. 이것은 사실 김수영의 시가 견지하는 태도와 일치한다.
罪와 罰
남에게 犧牲을 당할만한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殺人을 한다
그러나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
우리들의 옆에서는
어린놈이 울었고
비 오는 거리에는
四十명가량의 醉客들이
모여들었고
집에 돌아와서
제일 마음에 꺼리는 것이
아는 사람이
이 캄캄한 犯行의 現場을
보았는가 하는 일이었다
---아니 그보다도 먼저
아까운 것이
지우산을 現場에 버리고 온 일이었다
시의 화자는 "여편네"를 길거리에서 때려눕혔음에도 누가 그 장면을 보았을지만을 걱정하는, 우산을 버리고 온 것만을 아까워하는 못난 자신을 스스로에게 폭로하고 그 저열한 모습을 발가벗긴 채 정직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그것을 당당하게 생각하거나 자랑스러워하지 않고 부끄러워한다. 이 태도는 김수영 시학의 핵심이자 MC기형아의 가능성이었다. (김수영의 초창기 시 “공자의 생활난”에서도 그의 “바로 보려는” 결기가 잘 드러난다.) 그리고 정직하게 스스로를 바라보려는 이 태도는 아무나 쉽게 가질 수 없는 용감하고 가치 있는 것이다.
(약간 옆길로 새자면 나는 살면서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을 참 많이 경험했다. 특히 나이를 먹으면서 그러한 태도를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은 느낌이다. 그 형태는 크게 위선과 위악 그리고 자기과시와 자기기만 네 가지로 나타나는 것 같다. 위선적인 태도를 겪은 경험으로는 SNS나 대외적인 자리에서 정치, 윤리적으로 바른 언행을 하면서 개인적인 자리에서는 차별적 태도를 드러내는 모습들이 있다. (나는 유달리 이런 사람을 겪은 경험이 많은데 내가 좀 만만해 보여서 그런 것 같다...) 자기 과시는 허세다. 그리고 자기기만은 자신의 피해의식을 거짓말을 통해 외면하려는 모습이다. (자기기만을 하는 사람의 경우 싫은 것도 있지만 최근 들어 좀 불쌍하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위악은... 나다... 나는 이런 태도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을 가까이하지 않으려고 하고, 스스로도 그런 태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쉽지 않지만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최근 듀나의 “한국영화 남자 주인공들 자아도취, 이대로 괜찮나” 라는 글을 읽고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http://www.entermedia.co.kr/news/news_view.html?idx=4588) 듀나의 글은 항상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만드는데 ‘여태 나 역시 이런 자아도취에 빠져있지 않았나’ 하는 반성이 많이 됐다. 그리고 이런 듀나의 입장에서 김수영의 “죄와 벌”을 바라본다면 이 시의 화자는 어쩌면 부끄러워하는 스스로에게 자아도취 된 상태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지 못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시적 화자의 태도는 그의 후기 시까지 이어지는데, 특히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스스로의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지점까지만 가는데 그친다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 (이러한 모습을 작품으로 만들었기에 자아도취라는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실제 김수영 역시 그의 부인을, 더 나아가 여성을 대하는 태도에서 이와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그의 한계이자 당대의 한계다. 요즘 말로 하면 한남이고, 몇 발자국 나아가면 찌질미로 미화되는 남성화자의 글과 가사에 자주 등장하는 태도다. (십센치의 노래 가사에 낭만적으로 변형되어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블랙넛의 문제는 좀 더 심각하다. 블랙넛은 MC기형아 시절 가능성을 인정받은 후 스윙스가 이끄는 저스트뮤직에 들어가 몇 곡을 낸 후 쇼미더머니4에 나가 주인공이 되었다. 그는 방송 내내 여혐과 일베 논란, 아다 (성관계를 경험해 본 적 없다는 의미를 내포한 일본어 “아다라시”에서 변형된 비속어입니다.) 기믹 탓에 논란의 주인공이 되었고, 그 와중에도 앞서 언급한 매력으로 준결승까지 살아남았다. (악마의 편집도 이런 매력을 살려주는 방식으로 작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방송이 끝난 후 스스로의 태도를 유지한 채 종횡무진하며 여러 곡을 내고 있는데 평단의 혹평이 이어지고 있다. 혹평의 주안점은 대부분 가사가 지니고 있는 혐오적 태도이다. 가사를 직접 쓰지 않는 랩퍼를 가짜로 칭할 만큼 랩에서 가사의 가치는 매우 높은 것이기에 나는 이러한 혹평이 온당한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블랙넛은 이러한 혹평에 맞서 자신이 옳다고 랩으로 반론하는데 (어그로를 끄는 방식이 참 영리하다.) 그 근거로 자신의 높아진 인기와 많은 팬, 올라간 수익, 그리고 자신이 미국 랩퍼들의 거친 힙합정신을 계승하고 있음을 들고 있다. (후술 하겠지만 그건 힙합정신이 아니다.) 여기서 그의 한계가 드러난다. 못난 자신을 벌거벗기고 스스로에게 폭로하고 부끄러워하던 그는 오히려 퇴행하여 반성이 결여된 채 결국 스스로를 사랑하고 옳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현재 그의 모습을 봤을 때 태도의 변화는 요원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그에 대한 평단의 비판은 반성 없는 자기애적 모습도 포함하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나는 그의 팬을 그만두게 되었다. 하지만 정직성이라는 높은 가치의 가능성을 보여줬던 랩퍼이니 꼭 훗날 반성하고 변화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비와이
비와이는 나도 안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올해 초 유튜브 서핑을 하다가 듣게 되었는데, 랩의 독특한 플로우와 속도감이 인상적이었으나 좀 부담스럽기도 하고 예수 찬양을 하는 가사가 좀 병맛이기도 하고 (지저스! 예수님! 으로 추임새를 넣었다... 흠좀무...) 그래서 지속적으로 듣지는 않았다. 내 호오와는 상관없이 비와이는 높은 수준의 랩 작업물로 점점 힙합 팬 사이에서 인기가 높아져 갔고 랩을 워낙 잘했기에 나는 그 기대감이 틀린 것이라고 보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는 쇼미더머니5에 나갔고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며 문자투표로 우승했다. (쇼미더머니 최초로 결승전을 생방송 문자투표를 진행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비와이를 우승시키려는 엠넷의 의도를 간파했다.)
그럼 비와이의 인기를 실감하기 위해 그의 기사에 달린 네이버 베스트 댓글 몇 개를 소개한다.
힙알못인 나 조차도 입을 벌리고 침을 흘리며 보게 되는 비와이 무대. 개인적으론 누군가 표출하는 분노를 굳이 음악으로 듣고 싶지 않아 힙합엔 정이 안 갔는데 비와이는 그러지 않아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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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는 비와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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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종교에 대해 생각하고 , 신이 나를 이땅에 보내신 이유가 뭘까...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어요.이제서야 신께 귀의합니다. 이번 수능 잘 칠수 있을꺼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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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것들이 있다. 특히 흥미로운 지점은 평소 한국 힙합을 싫어하거나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 그를 좋아한다는 것인데 이는 내가 앞서 말했던 페이스북에 언더그라운드 힙합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이던 사람들이 그를 좋아한다는 글을 올린다던지 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나는 이 상황을 보면서 그 사람들의 변화의 근거가 두 가지 정도 있지 않나 생각했다. 우선 그중 하나는 나의 예전 기억과 연관이 된다.
내가 고등학교를 아직 꾸역꾸역 다니고 있을 시절, 빛과 소금이라는 기독교 동아리를 한번 들어가 본 적이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거기 가면 예쁜 선배가 많다는 풍문이 있기도 했고, 당시 최하위권을 고수하던 내신에 대한 고통을 하나님께 의지해보려는 것도 있었고... 사실 뻥이고 그냥 궁금해서 가봤다. 사람들이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하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흥미로워 몇 번 주일예배를 가기도 했고, 밥 먹기 전에 기도 하는 것도 멋있어 보여서 몇 번 연기해보기도 하고 그랬다. (신자 친구들이 좋아해주더라.. 태어나서 처음 받아보는 ㅆㅏ랑.... 크...) 그러던 중 좀 놀라운 사건이 있었다. 별로 친하지는 않았지만 같은 반이던 동아리 여자애와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갑자기 박주영이 멋있다며 박주영 찬양을 막 하는 것이다. 멋있다는 것에 근거는 없었다. 평소 스포츠에 아무 관심도 없어 보였던 친구였기에 그 모습이 굉장히 의외였다. 그리고 박주영이 딱히 인기 있을만한 매력적인 외모는 아니지 않나... 당시 축구를 잘하긴 했지만... 아무튼 이런 의외의 기억이 있었고,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흥미가 떨어져서 동아리를 나왔다.
나는 최근 비와이에 대한 인기의 일정 부분이 내 기억 속의 사건과 비슷한 것으로 느껴졌다. 아마 지금 와서 추정해보자면 그 동창은 교회에서나 주변 신자들에게 신실한 크리스천임을 골세레머니 등으로 당당히 드러내는 박주영에 대한 칭찬을 들었으리라. 그렇기에 스포츠나 축구에 대해 별 관심이 없음에도 박주영을 좋아한다고 나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다녔던 것은 아닐까? (물론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현재 비와이의 인기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것도 어쩌면 힙합에 별 관심이 없지만 뜨거운 믿음을 드러내는 그의 모습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크리스천들은 아닐까? (크리스천 투데이가 신나서 비와이 기사를 나르고 있는 것을 보라.)
종교적 이유로 인기가 많은 것은 문제가 아니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에서 매우 바람직한 사태다. 그렇다면 두 번째 이유를 고찰해보자. 댓글에서도 볼 수 있듯 힙합에 관심 없고 별로 안 좋아하던 사람들이 비와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분노를 드러내거나 허세를 부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비와이의 음악은 그 이유에 합당한 가치를 지니는가를 따져보자.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고
안 뵈는 것의 증거니까
니 머리 아닌 영혼이
가는 대로 가
기대하고 기다리는
자에게 비가 내리는 법이야
축복은 내가 벌린 입만큼
들어오는 거니까
(DAY DAY 중)
산 증인의 삶 그 삶을
위한 권능을 원해
스물넷인 난 매달 십일조 봉투에
100만 원을 100장씩 넣을 거야
(FOREVER 중)
최근 차트 상단을 휩쓸고 있는 그의 쇼미더머니 음원 가사이다.
오랜 힙합팬이자 대구외고와 서강대를 대표하는 랩퍼 MC LEVI로서 나는 최근 힙합이 차트를 싹쓸이하고 있는 상황이 내심 반가운 동시에 본질과 정신은 사라진 채 껍데기만 남은 힙합 음악이 인기를 얻는 현 상황에 문제가 있음도 느낀다. 나는 힙합의 본질적 가치는 저항의식에 있다고 본다. 그 뿌리가 게토에 거주하는 아프리칸-아메리칸의 그들을 억압하는 공권력과 불합리한 구조를 공고히 하는 백인 주류사회에 대한 저항의식에 있기에, 그래미를 비롯한 평단에서는 폭력적 차별이 줄어든(것처럼 보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캔드릭 라마를 위시한 역사성과 저항정신을 가사에 담는 컨셔스 랩퍼들의 가치를 높게 매긴다. (뿌리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에게 영화 'Straight Outta Compton'을 추천한다.)
댓글에서처럼 비와이의 가사에서 허세와 분노는 찾아볼 수 없다. 그 대신 상당히 직접적으로 (거의 CCM급으로) 자신의 믿음을 드러내고 있는데, 그의 확고한 신념에서 의심의 여지는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이는 저항정신이 결여된 가사다. 결국 힙합으로 간증 및 전도하는 것인데, 이는 본질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가 만난 형국이라고 본다. (캔드릭 라마의 무대를 완전히 고대로 베껴온 의상과 무대, 그리고 미국 힙합씬에서 유행하고 있는 헤어스타일인 FADE 헤어를 한 것도 문제가 있다. 뭐 이건 100% 비와이의 탓 만은 아니겠지만...)
우리나라 힙합에서 이유 없는 불편한 분노가 자주 느껴지는 것은 앞서 말한 힙합의 정신이 왜곡된 까닭이다. 백인 주류사회에 대한 분노와 비판이 한국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라임과 같은 기술적 요소만 남았고, 오갈 데 없었기에 증발되어버리고 남은 저항정신의 찌꺼기가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한국 힙합의 방향 잃은 분노다. 나도 이는 잘못된 것이라고 본다. (힙합 문화가 우리나라에 넘어오게 된 계기가 강남 중상류층 집안의 유학생들이 한국에 귀국하며 가져온 것이기에 저항정신이 사라졌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와이의 종교적 신념에 대한 무비판적 가사가 옹호되는 것도 아니다.
그의 예전 곡 가사를 보자.
여성의 동성애는 분명 나로 인해 감소
왜냐면 내 Flow에 흥분하거든 레즈비언도
(F5 중)
믿음에 대한 의심이 없기에 드러나는 기독교의 반동성애 성향이다. 이는 쇼미더머니 음원에서의 가사와 달리 문제가 되는 차별적 발언이고, 저항정신이 지워졌기에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모습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비와이의 음악은 달달한 사랑 타령 랩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산이가 레이나와 달고나를 부르는 것을 보고 욕하는 것은 랩을 못해서가 아니다. (물론 랩도 예전보다 못함) 그가 예전에 부르짖었던 힙합 본질에 대한 추구와 당시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수장 격이었던 버벌진트를 대놓고 까버리는 저항정신, 반골기질 등이 모두 변질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 소수자를 대변하는 정신 같은 건 없긴 했다. 있었다면 아이돌 뮤직에 빼앗긴 차트를 언젠가는 차지하겠다는 각오? 사람들이 무시하는 힙합 정신의 고수에 대한 의지? 정도가 있겠다.) 인기를 얻기 위해 사랑 노래를 부르는 랩퍼를 만장일치로 욕하던 힙합 팬들도 비와이에게는 너그러운 걸 보면 확실히 한국의 힙합은 본질적 가치가 사라져 버린 채 껍데기만 방송가와 멜론 차트 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는 것 같다. 뭐...문화를 만드는 CJ에서 제작되는 쇼미더머니가 한국 힙합으로 대변되고 있는 판국에 너무 기대가 큰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쇼미더머니로 주목을 받은 두 랩퍼 생각을 하면서 그럼 현재 씬에서 힙합 본연의 의식을 지키며 성공적으로 랩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는 랩퍼가 누가 있나 따지고 보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버벌진트는 끝났고, 다이나믹듀오도 변했고... 이센스 정도가 맞을까? 평단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화지나 넉살, 딥플로우, 제리케이 등은 내 귀에는 안 맞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