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뽀미누나 Apr 18. 2020

사소하거나 혹은 가장 살뜰한 기록 #4

  믿음에 대해 생각한다. 믿는 마음, 믿고 싶은 마음, 믿어야만 하는 마음, 절로 믿게 되는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그런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존재를 생각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수한 관계를 맺는다. 가족, 친구, 연인, 직장 동료 등. 보이지 않는 이 관계를 지속하게 하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 보이지 않는 감정은 늘 불명확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확인받고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닐까. 당신은 얼마큼 나를 지지해? 나를 얼마큼 사랑해? 나를 얼마큼 이해해? 정량되지 않는 마음을 통장에 찍힌 액수처럼 명확하게 직시하고 위안받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닐까. 감정은 어떠한 의례가 아니라서 그것을 구체적으로 수치화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하다. 그래. 우리는 오 년지기 친구니 너와 나는 서로를 향한 오십 정도의 믿음과 지지가 있겠구나. 십 년이 된다면 백 정도로 채워질 거야.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기표와 기의의 관계를 이야기한 소쉬르처럼, 언어는 자꾸 미끄러진다. 중요한 건 서로 공유하는 감정, 가치가 아닐까. 무릇 아이는 당장 눈 앞에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울음을 터뜨린다. 하지만 엄마가 "곧 올게. 우리 00이 착하지. 마트 금방 갔다 올게." 등의 지속적인 확신을 주고, 다시 온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고 나서야 인지한다. 어머니의 온정과 손길, 감정을 느끼며 아이는 이를 체화하는 것이다. 잠깐 문 밖에 나간 엄마는 영영 사라지는 것이 아닌, 이내 자기 곁으로 돌아올 것임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된다.

  

  인간은 근원적으로 허기와 결핍을 느끼는 존재다. 하지만 그이를 둘러싼 사회적 지지 체계로, 가치를 부여한 것들로 조금씩 자신의 삶을 채워나간다. 오랜만에 본 단짝 친구도 마치 어제 본 것처럼 살갑고 정겨우니까. 외국에서 공부하느라 혹은 일하느라 자주 보지 못했던 부모도, 자식인 나를 언제까지고 그 자리에서 기다리며 사랑해줄 것을 아니까. 서로 공유하는 감정, 믿음, 가치에 대해 생각한다. 나를 나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중심에 대해 생각한다. 이번 주엔 그리운 이들이 있는 학교에 가야겠다. 일을 하느라 자주 못 챙겼던 후배에게 밥을 사주고, 온라인 강의로 이어지는 캠퍼스 라이프를 들어주려 한다. 함께 걸었던 교정, 나눴던 시간, 언어의 온도를 되새기고 싶다. 떨어져 있어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마음이 있다.  

작가의 이전글 사소하거나 혹은 가장 살뜰한 기록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