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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작가 Apr 09. 2024

어머니, 당장 집에서 나오셔야 합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합니다.

우리 반 윤지(가명)의 가방 속에는 아주 뚱뚱하고 큰 필통이 하나 있다. 그 속에는 메이크업 아티스트 뺨치는 화장품들이 가득하다. 윤지는 페이크오버를 위해 미라클모닝을 하는 친구다. 하지만 미라클모닝에 실패한 날에는 그 뚱뚱하고 큰 필통을 가방에 넣고 학교에 와서 쉬는 시간마다 조금씩 다른 얼굴을 만들어 낸다. 내 눈에는 쌩얼도 너무 예쁜데 윤지는 내 말을 믿지 않는다.


윤지의 교복 치마는 반쯤 실종되어 있다. 처음부터 짧은 치마를 사기도 했고 허리 부분을 돌돌 말아 더 짧게 입는다. 돌돌 마는 부분만큼 더 자를 순 없다. 거기까지는 아빠가 허락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무서운 아빠의 불호령을 피해 매일 저녁 집으로 들어가기 직전 엘리베이터 안에서 치마를 내리고 화장을 지운다.


이런 윤지에게는 심각한 고민거리가 있다. 바로 진로문제다. 헤어, 메이크업, 패션 등에 관심이 많고 잘 알기에 전문계 고등학교 패션과 에 진학을 하고 싶은데 부모님의 반대가 심하고 부모님과 대화를 하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더 큰 문제는 윤지가 부모님과 대화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바쁜 저녁을 보내고 있어 미처 확인하지 못한 문자를 뒤늦게 보았다. 윤지였다.

"쌤~ 저 진짜 심각한데, 내일 쌤이 저 상담 좀 해주시면 안 돼요?"

"내가 문자를 이제 봤네. 내일 5교시에 내가 수업이 비는데 너는 그 시간이 미술이네? 미술 선생님께 먼저 양해를 구하고 괜찮다고 하시면 그때 이야기 하자."

"미술 정말 하기 싫어요. 그때 꼭 해요."

헤어, 메이크업, 패션을 좋아하는 아이가 미술이 정말 싫다니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 내일 물어봐야지 하고 잠들었다.


다음 날 5교시 미술시간. 모두가 미술실로 가 텅 빈 교실에 윤지와 나는 마주 앉았다. 

"쌤, 엄마가 저한테 카톡으로 뭐라고 했는 줄 알아요?"

라며 카톡을 보여주는데, 나는 솔직히 충격이었다. 이것이 정상적인 엄마와 딸 사이의 대화인가? 엄마의 평범한 질문에 단답으로 답하는 딸, 그리고 그런 대화에 화가 난 엄마의 욕설과 비하.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윤지 어머니께서는 윤지의 진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으셨던 것 같은데 결국은 딸의 미래를 짓밟는 말로 끝이 나 있었다. 


사실 그전에도 윤지는 여러 번 나에게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예전에 사이가 좋았을 때의 이야기, 진로 문제로 몇 번 부딪힌 적이 있다는 이야기 등. 그런데 이 정도로 사이가 나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날은 윤지의 마음을 다독여주고 윤지가 인정하는 윤지의 잘못을 짚어주고 상담은 끝을 냈다. 아이들이 모두 하교한 후 나는 윤지의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윤지 담임교사입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학교에 한 번 방문해 주실 수 있을까요? 어머니와 윤지에 대해 이야기 좀 하고 싶어서요."

윤지 어머니는 좀 부담스러우셨는지 두세 차례 핑계를 대셨지만 나는 어머니를 꼭 만나야겠다는 일념으로 어머니 퇴근하실 시간까지 학교에서 기다릴 테니 꼭 와주셨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렇다. 어머니는 나의 이런 전화가 부담스러우셨을 것이다. 코로나19로 대면 상담을 아예 하지 않는 시기였고 더군다나 어머니가 원하는 상담이 아닌 교사가 원하는 상담이라니.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며칠 후 저녁 7시경 윤지 어머니와 우리 반 교실에서 만났다. 어머니는 윤지 책상을 한 번 보시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윤지의 진로와 관련한 이야기로 상담은 시작되었는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머니와 윤지의 관계에 대해 많이 답답함을 느끼고 계시다는 것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그러다 어머니께서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저는 솔직히 윤지 관련 이야기가 아빠 귀에 들어가는 것이 무섭습니다. 선생님과의 상담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꺼렸던 이유는 윤지 아빠에게 뭐라고 말하고 학교에 방문해야 할지 모르겠어서였어요. 현재 윤지 아빠와 시부모님과 제가 함께 일을 하고 있고,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기 때문에 제가 자유롭게 어디 다니기가 힘듭니다. 특히 윤지 문제로 학교에 간다는 말은 절대 할 수 없어서 오늘도 거짓말을 하고 왔어요."


윤지에게는 성인이 된 친오빠가 있는데 오빠가 학창 시절에 전문계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안 좋은 길로 빠져 부모님이 학교에 불려 가시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했다. 그래서 윤지 아버지는 학교 일이라면 굉장히 예민하셨고, 윤지도 학폭 사건에 휘말린 전적이 있어 윤지 어머니는 더 이상 윤지 아버지께 학교 이야기를 할 수 없으셨던 것이다. 게다가 같이 일을 하고 계시니 아버지 눈을 피해 학교를 방문하기도 어려우셨던 것.


그런데 나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는데 윤지와 어머니의 사이가 안 좋고, 심지어 욕설과 비난이 오고 가는 대화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윤지 어머니는 시부모님 그리고 남편과 잠시도 떨어져 있는 시간이 없다. 윤지 어머니 자신, 본인만의 시간이 1분 1초도 없는 것이었다. 직장에서 하루종일 함께 하고 퇴근을 했는데 또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야 한다니. 그것만으로도 어머니의 심리 상태는 모두 파악되었다.

"어머니, 윤지 보다 어머니 본인을 한 번 들여다봐야 할 것 같아요. 온전히 어머니만의 시간이 있으실까요?"

"아니오. 있을 수가 없지요."

"어머니, 당장 집에서 나오셔야 합니다."

"네?"

"당장 집에서 나오셔야 해요. 어머니 지금 너무 힘드세요. 제 말은 가출과 같은 의미가 아니라, 어머니만의 시간을 만드셔야 한다는 거예요. 퇴근 후 저녁 시간에 뭐라도 하러 나오세요. 공원 걸으면서 운동도 하고 사색을 해도 좋고요, 처녀 시절 배우고 싶었는데 결혼과 육아로 놓친 것이 있다면 문화센터 하나 등록해도 좋아요. 주말에는 예쁜 카페에 가서 책을 읽어도 되고요."

어머니는 내 말을 듣는 내내 눈물을 흘리셨다.

"제가 어떻게 그래요. 시부모님과 남편 식사 차려드리고 나면 뒷정리도 해야 하고."

"어머니, 뒷정리는 세 분 순서 정해 돌아가면서 할 수 있어요. 그런 저런 걱정하면서 평생 이렇게 사시면 어머니의 자아가 건강하지 못하고, 윤지와의 관계도 좋아질 수 없어요. 어머니의 자아가 건강해야 윤지와의 관계도 좋아지고 윤지의 자아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어요."


어쩌면 나는 그날 윤지 어머니의 아픈 가슴 한편을 건드린 것일지도 모른다. 족히 10년은 어린것 같은 내가 주제넘은 말들을 늘어놓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도 윤지 어머니에게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기에 이 기회로 윤지 어머니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길 바랐다.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났을까. 윤지 어머니에게서 문자 통이 왔다. 

"선생님, 그날은 너무 마음이 좋지 않아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습니다.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제가 그동안 잘 못 살고 있었더라고요. 선생님 말씀대로 가족들에게서 조금 떨어져 저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많이 어색하고 가족들의 도움도 필요하지만 제 얼굴에 생기가 도는 것이 느껴집니다. 감사합니다."

'그래, 이거지! 정말 다행이다.'

윤지가 등교하자마자 달려와 이야기보따리를 늘어놓았다.

"쌤, 저 주말에 엄마랑 카페 갔거든요? 그런데 엄마가 또 진로 이야기를 꺼내는 거 있죠?"

"윤지야, 너 왜 엄마랑 카페 같이 갔어?"

"엄마 간다는데 저도 가고 싶어서요."

"윤지야, 다음부터는 절대 따라가지 마. 엄마도 엄마만의 시간이 필요한 거야. 네가 같이 가는 건 도움이 안돼. 다음에 엄마가 같이 가자고 하면 그때 따라가."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 엄마가 건강해야 아이도 건강하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 사진 출처: 픽사베이

- 이야기 속 학생 이름: 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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